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주량

[한국농어민신문] 

우크라이나 전후 재건사업과 연계해
양질의 곡물 엘리베이터 추가 확보 필요
저금리 대출 등 기업 유인책 모색해야

곡물 엘리베이터는 옥수수와 대두 등 곡물을 수출입하는 시스템의 핵심이다. 농가로부터 곡물을 매집해, 창고에 건조·저장·분류한 뒤 선박이나 기차 등 운송수단에 실어 옮길 때 승강기처럼 들어 올린다고 해서 엘리베이터라는 명칭이 붙여졌다. 외형은 우리의 미곡종합처리장(RPC)과 유사하게 생겼다. 

곡물 엘리베이터는 위치와 역할에 따라 산지, 강변, 터미널, 수출 엘리베이터로 구분된다. 산지 엘리베이터는 비교적 작은 규모로 인근 농가의 곡물을 매집·저장한다. 강변엘리베이터는 산지 엘리베이터의 곡물을 모아 선박으로 운송해 초대형 수출 엘리베이터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터미널 엘리베이터는 선박 대신 트럭이나 철도 등 육로를 이용해 수출 엘리베이터로 전달한다. 

미국 전역에는 2,500개 법인이 소유한 8,600여개의 곡물 엘리베이터가 있다. 2,500개 법인 중에는 ABCD로 불리는 ‘아처 대니얼스 미들랜드(ADM)’, ‘벙기(Bunge)’, ‘카길(Cargill)’, ‘루이 드레이퓌스(Louis Dreyfus)’ 같은 곡물 메이저 기업도 있고 농가들이 직접 출자한 농업회사도 있다. 예를 들어 농업회사인 우르사 파머스 코왑(社)는 미주리주와 일리노이주의 4,800여호 농가들이 직접 출자한 조합으로 미시시피강을 따라 10개의 곡물 엘리베이터를 운영하고 있다.

ABCD는 각각 수십에서 수백 개의 엘리베이터를 소유하고 있다. 일본 자본인 젠노와 CGB도 120여개의 엘리베이터를 확보하고 자국으로 곡물을 공급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하림이 미국 워싱턴주에 1개를 보유하고 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미국이 아닌 우크라이나에서 운영하고 있을 뿐이다.

곡물 엘리베이터의 수익은 초기투자비와 회전율이 관건이다. 프리미엄을 주고 비싸게 샀는데 곡물가격이 하락하거나, 운영노하우 부족으로 회전율이 저조해지면 기약 없는 적자에 허덕여야 한다. 곡물 엘리베이터의 수명은 60년에서 100년 정도이다. 농업 물류망이 촘촘한 미국은 신규 엘리베이터 수요보다 노후화된 엘리베이터의 교체 수요가 대부분이다. 신규 엘리베이터의 강점은 ‘자동화’와 ‘첨단화’에 있다. 새로운 시설이 오래된 시설의 생산성을 압도하는 장치산업의 특징이 그대로 적용된다.

한국은 지구상에서 곡물을 가장 비싸게 수입해 오는 나라이다. 그렇게 된 원인중 하나는 곡물 엘리베이터처럼 곡물 수입에 필요한 인프라를 거의 전부 빌려 쓰기 때문이다. 곡물을 적정한 가격에 조달하고 위기상황에도 안정적으로 수입하기 위해서는 곡물 엘리베이터를 충분히 확보해야 하지만 곡물 엘리베이터는 프리미엄은 높고 가격 리스크가 크며 개수도 한정되어 있다. 미국처럼 정치적, 군사적으로 안정된 나라일수록 프리미엄은 과도해 진다.

현재 상황에서 한국이 양질의 곡물 엘리베이터를 추가로 확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크라이나 전후 재건사업과 연계하는 것이다. 전후 복구과정에서 우리의 산업 기반기술이나 자재 등을 지원하고 반대급부로 곡물 엘리베이터 우선 구매권을 받는 것이다. 곡물 엘리베이터는 비즈니스의 영역이라 기업이 확보해야 한다.

대신 정부는 식량안보 차원에서 곡물 엘리베이터를 확보하려는 기업에게 장기 저금리 대출을 지원하고 일정기간 곡물사업 리스크를 보증한다면 강력한 유인책이 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국회의 입법지원도 당연히 동반 되어야 한다. 한국의 곡물 수입량과 국력에 걸맞도록 충분한 곡물 엘리베이터를 확보하는 것이야 말로 식량안보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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