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최영진 기자] 

지향하는 가치의 수준은 낮추지 않는 대신 가격과 만족도를 꼼꼼히 따져 합리적으로 소비한다는 ‘가치소비’. 탄소중립을 통한 기후위기 극복 등 지구환경에 도움을 주는 친환경 소비는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트렌드다. 작년 한국소비자원의 조사에선 소비자 10명 중 9명이 더 비쌀지라도 친환경 제품을 구입하겠다고 응답할 정도로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그런데 ‘의식주’의 하나로, 우리 곁에 가장 가까운 먹거리인 친환경농산물은 정작 이런 흐름에서 벗어나 있는 형국이다. 이는 지난 11일 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가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나타났다. 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가 11월 30일~12월 7일까지 전국 13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소비자 10명 중 8명은 친환경농산물을 구매하는 이유로 영양과 건강을 꼽았다. ‘환경보전’ 효과를 구매 이유 1순위로 꼽은 비율은 고작 12.3%. 친환경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영양과 건강이라는 안전성이 소비자들의 구매를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선진국은 어떨까.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학계 연구결과를 보면 유럽연합(EU)의 소비자 10명 중 7명가량은 유기농산물을 구매하는 이유로 지구 환경을 보존하기 때문이라고 응답했다”며 “유기농산물에 대한 가치로 안전성을 1순위로 꼽는 우리와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온실가스 저감과 생물다양성 증진 등 유럽과 우리의 유기농업은 같은 환경적 기여 효과를 지니고 있지만, 소비자들의 인식에서 사뭇 다른 광경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는 홍보 부족, 일반 농산물 대비 비싼 가격, 제한적인 거래처 등 다양한 이유가 있다. 그렇지만 잔류농약 무검출을 우선시 한 규정이 주요한 원인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동안 이를 통한 홍보에 편중해 왔고 지나치게 까다로운 규정으로 인해 친환경농업을 희망하는 농업인은 줄었기 때문이다. 이는 가격 상승, 접할 기회 감소 등으로 나타나 소비자의 구매 저항을 불러일으켰다는 게 중론이다. 실제로 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 조사에서도 63.5%가 가격을 이유로 친환경농산물을 구매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다행인 건 정부가 관련 법을 안전중심에서 환경보전적인 방향으로 일부분 선회하기로 한 점이다. 그동안 농가를 옥좼던 잔류농약 미검출 규정은 일반 농산물 잔류허용기준(MRL)의 1/20까지는 허용해 공급을 확대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안전성을 부각하기보단 환경적 가치를 더하는 게 핵심이다. 이에 더해 소비자들이 안전성에서 환경보전적 가치로 인식을 전환할 수 있는 사업도 내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첫 술에 배부를 순 없겠지만 이런 정책적 변화가 농가와 소비자 모두 상생하는 친환경 농업으로 거듭날 수 있게 하는 단초가 되길 기대한다. 

최영진 농산팀 기자 choiyj@agrinet.co.kr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