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농부시장포럼

[한국농어민신문 김선아 기자] 

지난 15일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강당에서 코로나19로 멈췄던 2023 농부시장포럼이 4년만에 열렸다. 세계농부시장연합 전략 책임자를 맡고 있는 로빈 문 박사가 방한, 의미를 더했다.
지난 15일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강당에서 코로나19로 멈췄던 2023 농부시장포럼이 4년만에 열렸다. 세계농부시장연합 전략 책임자를 맡고 있는 로빈 문 박사가 한국을 방문, 함께 해 의미를 더했다.

농부시장 마르쉐가 2012년 10월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첫 시장을 연 지 올해로 꼬박 11년이 지났다. 이후 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근거로 한 ‘얼굴있는 농부시장(얼장)’, 천주교 서울대교구 우리농운동본부의 ‘명동 보름장’, 양평의 ‘두물뭍 농부시장’, 당진의 농부시장 ‘당장’, 파주 헤이리의 ‘햇빛장’, 제주 생산자들이 주축이 된 ‘All(올)바른 농부장’과 ‘자연그대로 농민장터’ 등 저마다 다른 색깔을 지닌 농부 시장들이 지역 곳곳에 장을 열었다.

클릭 한 번이면 이튿날 새벽 집 앞까지 물건이 도착하는 시대에, 이들은 왜 굳이 ‘농부시장’을 열고, 사람들은 왜 기꺼이 이곳을 찾는 걸까. 여전히 농부시장 운영자들을 괴롭히고 있는 ‘안정적인 공간 확보’의 문제와, 복잡한 규제로 얽힌 소규모 농가 가공의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이건 비단 한국만의 문제일까. 세계의 농부시장들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까.

오래 묵은 숙제들을 각자의 자리에서 따로 고민해 오던 농부시장 기획자들과 생산자들, 연구자들이 지난 15일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강당에 모였다. 코로나19로 인해 멈췄던 <2023 농부시장포럼>이 4년 만에 열린 덕분이다.

이번 포럼엔 세계농부시장연합(World Farmers Markets Coalition, 이하 WorldFMC)의 전략책임자, 로빈 문(J. Robin Moon) 박사가 함께 해 의미를 더했다. 참석자들은 농부시장의 지속가능성과 확장성을 위해 이제는 구체적으로 해결방안을 내고 액션을 할 때가 왔다"는 데 공감했다.


#농부시장이 만들어가는 세계

로빈 문 WorldFMC 전략책임자
2005년 미 카트리나 재난때
가장 먼저 연 것이 ‘농부마켓’
지역경제 회복 등 성과 확인
세계적으로 증가 추세 뚜렷

로빈 문 세계농부시장연합 전략책임자
로빈 문 세계농부시장연합 전략책임자

WorldFMC는 국제연합(UN) 식량농업기구(FAO)의 지원을 받아 2021년 7월 출범한 국제기구다. 현재 6대주 58개국이 회원국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세계 각지의 2만개가 넘는 농부시장과 20만에 달하는 농가, 3억명 이상의 소비자가 연계돼 있다.

한국계 미국인인 로빈 문 박사는 중학교 때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대, 콜롬비아대, 하버드 대학에서 화학과 국제학, 공중보건학을 전공했다. 사회역학자이자 공중보건 분야 전문가로, 민간은 물론 공공부문에서 다양한 협업과 파트너십을 주도하고 있으며, 이번에 마르쉐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로빈 문 박사는 주제발표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제도 중 하나인 농부시장은 단순한 시장, 그 이상이라고 믿고 있다”며, 2005년 초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상륙, 엄청난 재난을 당했던 미국의 뉴올리언스의 예를 들었다.

문 박사에 따르면 당시 전력 공급이 두절되면서 모든 것이 멈춰섰던 뉴올리언스에서 텐트를 치고 발전기를 연결해 가장 먼저 문을 연 것은 ‘농부시장’이었다. 농부시장 특유의 기민한 대응력으로 상거래를 재개, 평소엔 이름도 몰랐던 이웃들이 서로의 생사를 확인하고 음식을 나누면서, 지역 공동체의 연결고리로서 주민들의 일상 회복을 도왔다는 것이다.

문 박사는 이를 계기로 2006년부터 미국 전역은 물론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농부시장의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영향력을 측정하는 연구를 하게 됐고, 덕분에 팬데믹이 터지면서 출범한 WorldFMC의 전략책임자로 활동하는 특권을 얻게 됐다고 설명했다.

현재 미국 전역에서 운영되는 파머스마켓은 1만개에 달한다.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은 이탈리아의 경우에도 1200개가 넘는다. 회원국 중 하나로 FAO와 WorldFMC의 지원을 받고 있는 방글라데시에서는 지난해 15주만에 16개의 농부시장이 문을 열었다고 한다.

로빈 문 박사는 “팬데믹 이후 전 세계적으로 식량안보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최근 들어 나라마다 농부시장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면서 “농부시장은 농부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커뮤니티 전체를 위한 것으로, 취약계층의 먹거리 접근성 제고와 지역경제 회복에 기여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음을 가는 곳마다 확인하고 있고, 각국 정부도 다양한 지원에 나서고 있다. 한국도 그런 방향으로 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농부시장 전망은

김정섭 농경연 박사
대형 유통시스템에서 배제된 
소농·고령농 보듬는 ‘둥지형 시장’
공간 확보 문제는 지자체 권한
법 조항 삽입·조례 개정 등 필요

김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박사
김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박사

두 번째 발표를 이어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김정섭 박사는 “농부시장은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니라 ‘보이는 손’이 작동하는 시장”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상품과 화폐만 오고가는 게 보통의 시장이라면, 농부시장은 관계 맺기를 통해 소비자들의 감사와 기대가 농민들에게 전달되고, 농민들은 소비자들의 인정과 요구를 반영해 생산 과정을 재설계하거나 상품 생산에 정성을 쏟아 차별성을 획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김정섭 박사는 “이러한 관계 맺기는 일반시장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인데, 농부시장의 이같은 사회적·문화적 가치가 너무 간과되고 있다”면서 “참여하는 모두에게 편익을 만들어내는 ‘커먼즈’로서 농부시장의 특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과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대형 유통시스템에서 배제된 소농, 고령농을 보듬는 ‘둥지형 시장’으로서 농부시장이 갖는 중요성도 강조했다.

김정섭 박사는 현재의 상황에 대해 “아직 코로나19 여파가 남아 있다. 비대면이 자연스럽게 돼버린 가운데 온라인 시장 연구는 하지만, 농부시장 연구는 아무도 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안전이나 위생 측면에서 강화됐던 통제의 관성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도 문제”라고 진단했다.

이어 미흡한 관련 법령, 행정규제 위주의 법령 해석 등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행 농산물 직거래법에는 농부시장이 지니는 상품교환 이외의 사회적·문화적 기능과 관련한 내용은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면서 “결국 공간의 확보 문제는 지자체가 권한을 갖고 있는 만큼 지자체를 움직일 수 있는 조항을 삽입하거나, 조례 개정 등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 박사는 “법령을 정비하고 규제 위주의 관행을 바꾸려면 힘들어도 버티면서 정부 또는 지자체와 끈질기게 협상하고, 타협하고, 싸워나가야 한다”면서 “한편으로는 이러한 농부시장의 실천을 농민들과 시민들에게 노출하려는 노력 또한 매우 중요하다”고 제안했다.
 

#현장 운영진들의 목소리
'안정적 공간 확보ㆍ농식품 가공 규제' 가장 큰 걸림돌

이어진 토론에서 농부시장 마르쉐의 활동가 문소라 씨는 ‘공간의 불안정성’을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시장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정기적으로 개최 가능한 공간이 있어야 하고, 사용료가 적당해야 한다. 요리팀이 나오면 전기와 물을 있어야 하고, 다회용 그릇을 쓰려면 설거지 공간도 필요하다. 물론 배후 소비지가 있거나 소비자 접근성이 좋다면 금상첨화”라면서 “하지만, 공공 공간은 조리 및 가공품 판매나 상행위 등을 이유로 툭하면 문제 삼기 일쑤고, 민간 공간은 갑작스럽게 사업주가 변심을 하거나 비싼 대관료를 요구하는 경우가 왕왕 일어난다”고 호소했다.

제주 ‘올바른 농부장’의 문희선 대표도 “지난 5년 동안 알아보고 쫓겨나고, 알아보고 쫓겨나는 과정을 수없이 겪었다”면서 “다행히 최근 저희만의 공간을 마련, 한숨을 돌렸다”고 전했다.

문 대표의 가장 큰 고민은 ‘농부시장에서 무엇을 팔 수 있을까’다. 그는 “현재 식품위생법상 단순 건조만 허가되어 있고, 열을 가하는 것, 삶아서 데쳐서 양념을 넣어서 파는 것은 불법이다. 농민은 농산물만 팔든가, 스스로 제조업체가 되던가, 아니면 제조업체한테 OEM을 맡기라는 얘긴데, 대체 누구를 위한 법인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문 대표는  “함께 만드는 농부시장이 되려면 소비자와 생산자, 요리연구가들이 힘을 합쳐 다양한 먹거리를 판매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런 기회조차 만들기 어렵고, 불법을 저지르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다”면서 개선을 촉구했다.

얼굴있는 농부시장의 홍천기 대표는 “이대로 괜찮을까. 우리에게 내일이 있을까. 늘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각자도생해 왔던 것 같다”면서 “이제는 농부시장과 농부시장들의 연대를 고민해야 할 때다. 첫 번째 단계는 모이는 것이다.  느슨한 형태라도 만나서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지금 당면한 과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구체적 액션이 필요한 때

로빈 문 박사는 마무리 발언에서 “이번에 마르쉐를 비롯해 한국의 농부시장들을 둘러보면서 너무 많은 감동을 받았다. 미국시민이지만 한국인으로서 정말 자랑스럽고 많은 도움이 되고 싶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시장을 운영하면서 쌓아온 노하우와 매뉴얼, 다양한 성공사례 등을 연구 데이터로 축적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데이터가 없다는 것은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데이터가 있어야 파머스마켓의 영향력을 증명할 수 있다. 농부시장 운영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날 토론 진행을 맡은 문은숙 소비자정책연구소 대표도 이에 동의했다. 그는 “2011년 제정된 도시농업법 덕분에 도시텃밭 통계는 있는데, 농부시장 통계는 없다”면서 “농부시장이 창출해 내는 다양한 사회·경제적 가치를 제대로 측정하고, 이를 근거로 필요성에 대해 설득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서둘러 법적 검토를 진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미국에만 75개에 달하는 농부시장협회가 있다는데, 우린 왜 그런 그룹이 한 개도 없을까”라면서 “소비자 접근성을 허물면 확장성과 지속가능성은 해결될 거라고 본다. 공통의 문제를 공익적으로 알리고, 캠페인하고, 제도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그룹을 구체적으로 준비해야 할 때”라고 제안했다.

김선아 기자 kimsa@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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