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마을의 문제를 마을주민들보다 더 잘 아는 사람들이 있을까? 문제를 발견하고 협의의 과정을 통해 공유·합의하고 대안을 찾는 ‘마을자치, 주민자치’가 이뤄질 때 독특한 ‘품격과 매력’으로 지속가능한 마을만들기가 가능해지리라 생각한다.

ㅣ윤요왕 전 춘천별빛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고대했던 히가시카와 마을을 다녀왔다. 한국에도 번역된 책으로 보면서 ‘이게 가능하다고? 무엇이 이렇게 마을을 만들 수 있었을까’하는 호기심과 의구심이 있었다. 무슨무슨 개발사업과 무지막지한 보조금으로 반짝 특수를 노린 것 같은 마을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무엇보다 8000여명이 사는 작은 읍·면 정도의 시골마을에 이토록 멋진 아이디어와 마음을 끄는 일들이 어떻게 펼쳐지고 유지될 수 있을까 궁금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과장되지 않은 제대로 된 마을이었다. 짧은 기간 동안 모든 걸 다 볼 수는 없었겠지만 한국 교류원(이 마을에는 전 세계 20여개국의 교류원을 히가시카와정의 임기제공무원으로 채용하고 있다.)의 안내와 설명을 들으며 견학 한 곳곳은 진짜였다. 히가시카와정의 마을계획의 슬로건은 ‘일상의 매력’이었다. 수많은 일본과 해외의 견학, 연수, 관광객들이 이 마을을 찾지만 정작 마을에서 추구하는 가치는 그 마을 주민들의 일상에서의 행복한 삶이었다. 그것을 통해 내게 떠오른 것은 ‘품격과 매력’이라는 두 단어였다.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마음’의 실체였다. 대표적인 예로 이 마을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아주 예쁜 디자인(매년 전문 의자디자이너가 구상한다.)의 작은 의자를 선물로 준다. 아이의 이름과 생년월일 등 아이만의 의자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포스터에 ‘태어나줘서 고마워. 네가 있는 곳은 여기에 있어’라는 문구에서 말해주듯 마을의 어른들의 마음이 듬뿍 묻어있는 아이디어였다고 느꼈다.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이 감사한 마음을 또 어떻게 이해하고 추억할지 가슴이 뭉클해졌다.

또, 중학교 입학생 모두에게 선물하는 ‘배움의 의자’가 있다. 중학생들은 3년간 자기만의 이 의자에 앉아 공부하고 졸업 후에 가져간다고 한다. 이 마음의 선물이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의자, 가구 산업과 확장되어 있었다. 의자 장인이 회사를 차리고 목재산업과 가구산업으로 발전했다. 억지스럽게 꾸역꾸역 어울리지 않는 아이템을 찾아 기업을 유치하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주민들의 마음이 마을의 전통으로 연결되고 그것이 경제산업으로 이어지는 것은 우리가 깊이 고민해야 할 지점이 아닌가 생각된다.

내가 눈여겨 본 것 두 번째는 행정과 주민들의 소통과 참여 그리고 결정하는 과정이었다. 아무리 좋은 것이 떠오른다하더라도 주민들이 참여하지 않거나 행정에서 용인되지 않으면 폐기되고 갈등만 초래하게 되는데 히가시카와는 그렇지 않았다. 히가시카와 행정에 불문율 같은 원칙이 있는데 ‘3無(무)’라고 한다. 이 3無는 공무원들이 ‘예산이 없어서 못한다, 다른 지역 사례가 없어서 못한다, 우리지역에는 없다’라는 변명과 핑계가 없다는 뜻이다.

다양한 마을의 분과위원회가 있고 자생단체와 주민들의 의견이 제안되고 토론해서 협의하면 행정은 최대한 그것이 가능하도록 방안과 정책을 찾는다고 한다. 그러니 주민들의 효능감이 높아져 참여가 왕성하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그 마을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지역력을 높이는 것이며 품격과 매력적인 마을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런 품격과 매력의 마을 히가시카와는 ‘히가시카와 스타일’(히가시카와 다움)으로 일본국내와 해외에 팬들을 만들고 있다. 국제교류센터의 20개국 교류원들과 마을의 일본어학원의 200여명 해외유학생들은 이 마을의 팬이 되고 마을을 홍보하는 한편 자기 나라의 문화를 이 작은 일본 마을에 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정책이 경제와 산업으로 이어지고 지속가능하면서 행복한 마을을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마을의 품격과 매력을 어떻게 마을주민들과 행정이 함께 찾고 지속할 수 있을까 우리도 고민해봐야 한다. 전국 마을마다 사업이 들어가지만 거의 비슷비슷한 정책사업들이 펼쳐지고 몇 년 지나면 애물단지가 되거나 멈춰있는 사례를 보게 된다. 또, 지방정부의 권력이 바뀌면 하루아침에 폐기되거나 전혀 다른 준비되지 않은 방향으로 선회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구조로는 마을을 살릴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읍면동 단위 자치의 체계와 인식전환이 히가시카와 마을을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마을주민들이 자립, 자치 할 수 있는 권한과 체계를 만들고 행정이 함께 한다면 우리 마을 주민들의 행복과 매력적인 마을의 형태를 갖추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마을의 문제를 마을주민들보다 더 잘 아는 사람들이 있을까? 문제를 발견하고 협의의 과정을 통해 공유·합의하고 대안을 찾는 ‘마을자치, 주민자치’가 이루어질 때 마을마다 특성에 맞게 독특한 ‘품격과 매력’으로 지속가능한 마을만들기가 가능해지리라 생각한다.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