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살리는 농사를 생각한다> 출간기념 북토크
당사자인 ‘농민의 시선’으로 기후 위기를 말하다

[한국농어민신문 김선아 기자] 

서울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에서 지난 14일 '모두를 살리는 농사를 생각한다' 출간기념 북토크가 열렸다. 늦은 시간인데도 기후 위기와 먹거리에 관심있는 독자들이 자리를 꽉 메웠다.
지난 14일 서울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에서 '모두를 살리는 농사를 생각한다' 출간기념 북토크가 열렸다. 늦은 시간인데도 기후 위기와 먹거리에 관심있는 독자들이 자리를 꽉 메웠다.

지난 14일 늦은 7시. 서울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플랫폼P)에서 <모두를 살리는 농사를 생각한다> 출간 기념 북토크가 열렸다.

‘17인의 농민이 말하는 기후위기 시대의 농사’ 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기후 위기와 농업을 둘러싼 수많은 논의에서, 정작 당사자인 농민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같은 고민을 안고 있던 녹색연합의 이다예·황인철 활동가와 충남 홍성의 금창영 농민, 도시농부이자 프리랜서 기자인 이아롬 씨가 의기투합했다. 2022년 6월부터 2023년 1월까지 8개월간 전국 각지를 돌며 17인의 농민들을 만났다.

유기농과 관행농, 시설농업과 노지농사, 대농에서 소농까지, 다양한 방식과 지향을 지닌 농민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부터 어떤 방식의 농업이 옳거나 대안이라는 의미로 접근하지 않았고, 농민들이 하고 싶은 말을 있는 그대로 듣고자 했다”는 게 저자들의 설명이다.

책에는 농업 현장에서 기후위기를 어떻게 체감하고 있으며, 어느 정도 위기라 느끼고 있는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앞으로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어디서도 듣지 못한 농민들의 목소리가 오롯이 담겼다.
 

#농민의 삶은 언제나 위기였다

40도가 훌쩍 넘는 하우스 안에서, 50일이 넘는 긴 장마를 겪으며, 상습화된 냉해로 떨어지는 사과꽃을 보면서, 농민들은 그야말로 온몸으로 기후 위기를 경험하고 있었다.

하지만, 농민들은 기후 위기에 대해 생각보다 담담했다. 굳이 기후 위기가 아니더라도 농민들의 삶은 언제나 ‘위기’였던 탓이다. 폭등락을 반복하는 농산물 가격과 급등하는 생산비로 많은 농민들은 이미 농사 규모를 줄여야 할지, 아니면 아예 농사를 접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책의 인터뷰이 중 한 명으로 이날 북토크를 위해 경북 상주에서 올라온 농민 김정열 씨도 같은 고민을 토로했다.

“저도 사실 생각보다 빨리 농사 규모를 줄이고 몇 년 뒤에는 농사를 접으려고 그래요. 지금 상황에서 노지 밭농사를 짓는 거는 정말로 제 몸을 갉아먹는 행위거든요. 아마 10년 안에 농민 숫자는 지금의 절반으로 줄어들 겁니다. 그러면 국내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은 거의 없을 거라고 봐야죠. 식량 위기는 곧 옵니다. 농민들이 점점 농사 짓기를 포기하고 있으니까요.”

책의 저자로 참여한 충남 홍성의 금창영 농민도 ‘현재 대한민국에서 농민으로 산다는 건’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라고 못박았다.

“우리나라 농민들 정말 악착같이 일합니다. 죽을 것처럼 일해요. 고창에서 만난 한 젊은 농민은 6만 평에서 벼농사를 하는데, 트랙터가 6대에요. 바쁘니까 트랙터마다 다른 부속기구를 달아놓고 바꿔타면서 농사를 짓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뭘 더 해서 지금의 낮은 농산물값을 유지해야 할까요. 저는 지금의 위기가 기후 위기나 식량 위기가 아니라 농민의 어려움에 공감하지 못하는 감성의 위기라고 봅니다.”
 

책의 인터뷰이 중 한 명인 경북 상주의 김정열 농민(사진 맨 왼쪽)과 공동 저자 중 한 명인 충남 홍성의 금창영 농민(가운데). 그리고, 공동 저자이자 북토크 사회를 맡은 녹색연합 활동가인 이다예 씨.
책의 인터뷰이 중 한 명인 경북 상주의 김정열 농민(사진 맨 왼쪽)과 공동 저자 중 한 명인 충남 홍성의 금창영 농민(가운데). 그리고, 공동 저자이자 북토크 사회를 맡은 녹색연합 활동가인 이다예 씨.

 

#농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그렇다면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농사는 어떤 농사여야 할까. 저자들은 섣부른 해결책을 제시하기 전에, 농민들이 처한 현실을 들여다보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진단한다.

금창영 씨의 말이다.

“고령화든 농가소득이든 기후 위기든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부딪히는 문제들은 어느 것 하나 쉽게 대안을 찾기 어려운 문제에요. 알면 알수록 미궁에 빠지는 느낌입니다. 그런데, 제도나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농민들을 늘 쉽게 판단하고, 평가하고, 대상화하죠. 정작 당사자인 농민들의 목소리는 그 안에 들어갈 틈이 없어요. 일시에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완벽하지도 않겠지만, 농민들이 처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농민이 스스로 대안을 만드는 주체가 되어야 실마리를 풀 수 있다고 봅니다.”

김정열 씨도 같은 이야기를 전했다.

“농민을 기후 위기의 피해자로 위치시켜 놓고 측은해하는 것도 싫고, 그렇다고 온실가스 배출의 가해자나, 해결사로 호명하는 것도 많이 불편합니다. 사실 자본주의 소비구조 속에 사는 우리 모두가 다 기후 위기의 피해자고, 가해자고, 해결사 아닌가요. 농민들이 그동안 말을 안한 게 아니고, 그 말이 여러분에게 들리지 않았을 뿐이에요. 오늘 이 자리처럼 농민과 소비자, 기후운동가들이 만나 우리 농업의 현실을 들여다보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게 그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모두가 위기를 이야기하지만, 위기 뒤에 가려진 ‘현실’은 제대로 보려 하지 않는다. 농산물 가격엔 더 없이 민감하면서도, 왜 가격이 떨어지고 올라가는지에 대해선 아무 관심이 없다. 너도나도 ‘식량 위기’를 걱정하지만, 농사 포기를 고민하는 농민들의 심정은 주목하지 않는다.

‘놀라울 정도로’ 현재를 살아가는 농민들의 삶에 무지한 시대, 이 책에 담긴 ‘날 것 그대로’의 농사 이야기에 먼저 귀 기울여 보길 권한다.

김선아 기자 kimsa@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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