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고성진 기자] 

정부 김장물가 잡기 총력
산지·도매시장은 체감 못해
되레 도매가격 하락 요인 걱정
근시안적 가격 인하책 도마

정부가 대형유통마트 등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김장재료의 할인지원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김장철을 앞두고 정작 도매시장에 출하되는 배추와 무 시세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어 상반된 분위기가 감지된다. 산지와 도매시장에서는 김장물가 안정 지원에 대한 정책 수혜는커녕 되레 도매가격 하락을 부추겨 산지 피해가 가중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다른 한편으로는 물가 잡기에 초점을 맞춘 정부 정책이 계속될 경우 생산 기반 약화로 이어지고, 이는 장기적으로 물가 불안이 상시화되는 등 소비자에게 ‘부메랑’이 될 것이라는 걱정도 크다.

“대형마트에서 1포기당 ‘900원대’ 배추를 판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는데, 도매시장에서 배추를 사려는 사람들이 늘겠어요?” 이달 들어 이마트가 정부의 할인지원 혜택(20%)을 더해 김장배추 1포기에 ‘950원’ 가격(1망 3포기에 2850원)으로 판매한다는 소식을 접한 한 가락시장 유통인의 얘기다.

정부는 역대 최대 규모인 총 245억원을 투입해 김장물가를 낮춰 소비를 활성화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산지와 도매시장에서는 체감이 크지 않다는 반응이 나온다. 본격적인 김장철을 앞두고 배추와 무의 도매시세가 살아나지 않자, 이 같은 정부 정책이 수혜는커녕 되려 도매가격 하락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들이 거론된다.

11월 가락시장의 배추와 무 시세 동향을 보면, 평년 수준을 밑돌고 있는 시세가 계속되고 있다. 배추(10㎏ 상품)는 김장배추가 본격 출하되고 있는 상황과 맞물려 11월 13일 5111원, 14일 5485원, 15일 6105원, 16일 7400원, 17일 9424원의 흐름을 보인다. 17일을 제외하고는 생산비에 못 미치는 가격이다. 가락시장 대아청과 관계자는 “17일 가격이 ‘반짝’ 오른 것은 16일 전국적으로 비가 내리면서 산지 작업을 하지 않아 도매시장으로 들어오는 물량이 줄어든, 날씨에 의한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무(20㎏ 상품) 가격 흐름은 더 심각하다. 가락시장 월평균 시세는 9월 1만3942원, 10월 1만1061원, 11월(1~17일 평균) 7391원으로, 김장철인 11월 시세가 10월 대비 33%나 떨어져 생산비도 건지지 못하는 ‘바닥권’ 수준까지 내려앉았다.

시세 부진 이유 중 하나로 도매시장에선 9월부터 ‘김장대란’ 우려를 쏟아낸 언론 보도를 언급한다.

가락시장 유통 종사자는 “김장철 훨씬 이전부터 김장물가가 비싸다는 보도들이 쏟아졌고, 이에 맞춰 정부가 배추 비축물량을 시장에 방출해 시세에 영향을 미쳤다. 시세가 살아나지 않자 산지에서 출하를 미루고, 이렇다 보니 김장철 물량이 몰려 시세 하락을 부추기는 상황이 되고 있다”고 했다. 정부의 방출 대책에 대해, 또 다른 유통 관계자는 “무의 경우는 10월 한 달 동안 저품위의 정부 생산약정제 물량이 물밀 듯이 도매시장에 출하한 것이 시세 하락의 한몫을 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대형마트를 중심으로 추진되는 할인지원 정책에 대해서도 소비자 물가 안정에만 초점을 둔 근시안적 접근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강원도 지역의 배추 생산자는 “대형마트에서 배추 1포기를 1000원에 파는 것은 ‘미끼(PB)상품’으로, 가격 인하 정책이 당장은 소비자에 좋을지 몰라도 근본 대책이 될 수 없다. 기준가격인 도매시장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면 피해는 농가들이 입게 되지만, 장기적으로 생산 기반이 축소되면 김장물가 우려는 일부 언론의 호들갑이 아니라 해마다 상시화되는 부메랑처럼 소비자들에게 더 큰 부담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산지 유통인은 “김장배추 구매와 관련해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절임배추가 56%·신선배추는 41% 비중인데, 정책 예산을 투입하려면 절임배추 작업을 하는 산지나 전통시장에 대한 지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는데, 대형마트 위주의 지원 편중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