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가 소득안정 바탕, 생명원리의 농적사회로

[한국농어민신문 이상길 논설위원·농정전문기자] 

무역자유화와 글로벌화의 진전이 브라질, 호주, 뉴질랜드 같은 신대륙 형 농업 외에 유럽연합(EU)나 미국조차 국가의 지원 없이는 농업이 성립될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일본과 같이 협소하고 기복이 심한 자연조건을 가진 나라는 아무리 생산성을 향상시킨다 해도 이들 국가 같은 가격경쟁력을 갖출 수는 없다. 이는 일본과 유사성이 많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본 농협 신용사업 연합조직인 농림중앙금고의 연구소(농림중금총합연구소)에서 오랜 연구활동과 함께 농사를 실천해 온 저자 ‘쓰타야 에이치’(농적사회디자인연구소 대표)는 ‘미래를 경작하는 농적사회’를 통해 일본의 미래를 제시하고 있다.

그는 “인간은 물론 생명체 모두는 태양과 흙과 물 없이 존재할 수 없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망각한 결과 살기 어려운 사회, 관리사회, 격차사회, 분단사회를 초래했다”고 진단한다. GDP(국내총생산) 신앙으로 상징되는 공업원리에 미래는 없으며, 다시 생명원리로 돌아가 농적사회(Agro-society)를 창조하는 것 외에는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농적사회란 농민은 순환·지속성과 함께 생물다양성을 존중하는 농업을 전개하며, 소비자와의 교류를 존중해 나가고, 도시 소비자도 다소라도 농업에 참여하고 생명에 접촉하는 개념이다. 이러한 ‘국민개농’, ‘시민개농’에 의해 생명원리를 최우선으로 하는 사회, 즉 ‘농적사회’를 지역에서 실천하고 만들어 가자는 것이다. 

그는 농업은 지원이 있어야 유지된다고 강조하고, 경쟁 일변도, 산업정책에 편중된 농정에서 탈각해야 한다고 한다. “생산성 향상에 의한 가격인하 노력은 필요하지만, 어차피 이것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국가가 식량을 지킨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정책지원을 강구해야 한다”는 견해다.

△풍부한 지역성· 다양성 △ 극히 수준 높은 농업기술 △고소득이면서 안심·안전·건강에 민감한 소비자 △도시와 농촌의 가까운 시간 거리 △뛰어난 경관 △풍부한 숲과 바다, 물 등 일본 농업의 특징을 살리자는 것이다. 

그는 농적사회의 기본은 가족농업이고, 그 힘을 지역농업으로 전개해 가려면 농가가 재생산이 가능하도록 소득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2010~2012년 민주당 정권에서 시행된 ‘농업인 호별소득보상제도’를 자민당 정권이 축소 폐지하면서 2019년부터 도입한 ‘수입보험제도’를 비판하고, 호별소득보상제도를 확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수입보험제도의 최대 문제는 과거 5년간의 평균 수입을 기준으로 한다고 하지만, 농산물 수입개방 확대로 농산물 가격 자체가 계속 하락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농업경영 안정화를 보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농업인 호별소득보상제도’는 농산물 가격이 생산비에 못 미칠 경우 그 차액을 보전하고, 농가에 10a당 1만5000엔의 정액을 지불하는 것으로, 농산물 가격 하락 속에서도 재생산을 가능케 하는 정책으로 평가된다.

그의 이러한 진단은, 최근 우리나라의 농가 경영안정 논의에 시사하는 바 크다.    

저자는 이 책에서 애덤 스미스, 칼 마르크스, 우네 유타카 등 대가들의 농업관을 분석하고, 농적사회의 실현을 위한 지역의 실천을 소개한다. 올해 75세인 저자의 시각은 한국의 고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의 생태사상과 농본주의, 그리고 순환과 공생의 지역 만들기를 추구하는 지역재단의 취지와 겹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책을 번역한 전찬익 박사(경제학, 농협경제연구소 농정연구실장 및 본부장 역임)는 “저자의 시각은 제레미 다이아몬드의 ‘문명의 붕괴’, 마크 비트먼의 ‘동물, 채소, 정크푸드’ 같이 환경파괴를 경고하고 농생태학을 강조하는 저작과 일치 한다”면서 “환경파괴와 경쟁에서 벗어나 생명원리를 바탕으로 가족농업, 지역농업 중심의 농적사회를 추구해야 한다는 게 대가들의 공통된 결론인 것 같다”고 말했다.

쓰타야 에이치 저(전찬익 역), 한국학술정보, 334쪽/ 2만원

이상길 농정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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