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진 중앙대 교수

옷 입히고 미용으로 단장하고 음식까지  
인간처럼 대하는 게 과연 좋은 걸까
사람 아닌 동물 생리적 특성에 초점 둬야

반려동물산업이 꾸준히 성장하면서 반려동물용 사료에 대한 관리법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반려동물 관련 여러 시민단체와 협회들뿐만 아니라 대한수의사회도 반려동물 사료의 무분별한 유통 또는 보조사료 과대광고 등 현행 법률의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상황이다. 또한 현행 사료관리법 하에서 발생하고 있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려동물 사료의 제도적 기반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노력들로 인해 얼마 전 사료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으로써 반려동물은 물론 가축 사료의 유통기한을 준수하도록 하는 근거가 마련되기에 이르렀다. 

이렇듯 우리 사회가 동물을 보호하고 동물의 복지를 개선하려는 노력들이 점차 가시적인 성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간들의 삶이 힘들면 동물을 배려하기 쉽지 않은데, 우리 사회가 동물을 배려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것은 반대로 보면 우리 인간의 삶 또한 더 많이 배려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반려동물 산업의 성장과 제도적인 보완이 있는 것과 별개로 반려동물을 이해하려는 우리의 노력은 이에 이르지 못하다는 점 또한 지적하고 싶다. 

사람이건 동물이건 복지의 가장 기본은 자유의지라고 할 수 있는데,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행복과 복지의 기본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곁에 있는 반려동물이 자기의 자유의지를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지 살펴보면 나는 대부분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반려동물은 인간과 함께하기 위해 동물 고유의 본능을 상당 부분 억압받고 있다는 사실을 반려인들이 모르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강아지가 사람을 잘 따르고, 신발이나 소파를 물어뜯지도 않고 배변훈련이 잘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낯선 사람을 보고 짖지도 않는다면 참으로 좋은 강아지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개는 우리 인간이 정한 사회적 규범과는 반대로 마음껏 뛰고, 짖고, 필요하다면 언제든 배변하고 물고 뜯는 것을 더 좋아한다. 아파트에서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반려동물은 태어나자마자 인간의 규범에 길들여지기 때문에 저러한 자유를 경험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저런 자유가 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는 경우도 많다. 맹인 안내견이나 경찰 수색견 또는 군견 등은 철저한 훈련을 받고 제대로 훈련이 되었다면 일평생 그 훈련 받은 질서를 지켜낸다. 그것 또한 동물의 자유의지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 

또한 반려동물 종사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반려동물을 “우리 아이”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고, 방송에서 조차 다들 그렇게 호칭하고 있다. 동물을 사람처럼 격상시키고, 의인화 하는 것이 얼핏 동물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우리 곁에 있는 반려동물을 가족과 동일하게 사랑하고 배려하는 것이 문제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행복을 느끼는 기준이라면 동물들도 행복할 것이라 착각하는 것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미용실에서 이쁘게 단장하고, 이쁘게 촛불 케익으로 장식된 펫푸드를 먹고, 생일잔치를 하는 반려동물이 불행할리는 없겠지만, 그것은 반려동물보다는 오히려 사람이 더 좋아하는 일이다. 그것보다 그런 비용과 시간을 아껴 반려동물을 넓은 자연에서 마음껏 뛰고, 마음껏 짖고, 마음껏 구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더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반려동물을 사람의 수준에 맞는 음식을 주고, 옷을 입히고, 미용으로 단장하고, 가슴에 안고 다니거나 유모차를 태우는 것은 인간이 좋아하는 행위이지 반려동물이 좋아하는 행위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이가 많지 않을 것 같다. 개나 고양이는 발이 4개인 동물로써 사람의 가슴에 안기거나 유모차를 타기보다는 아파트를 벗어나 들판을 마음껏 달리고 싶어 한다. 반려동물을 안고 다니는 것은 결코 동물을 사랑하는 올바른 길이 아니라는 것쯤은 이제 알아야 한다. 즉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길은 우리가 좋아하는 행위가 아니라 동물이 좋아하는 행위를 마음껏 발산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동물과 인간의 생리적 특성과 기호도가 다르다는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인간과 동일시하는 이러한 행위가 반려동물 산업 전반으로 확대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반려동물용 미용이나, 옷, 장식품 또는 반려동물 전용 요리와 같은 꾸미기 산업이 성장하기 보다는 오히려 반려동물이 마음껏 뛸 수 있는 더 나은 생활 환경조성, 동물의 생리에 가장 적합한 펫푸드의 개발, 반려동물 관련 에티켓 교육 등 반려동물을 조금 더 배려할 수 있는 방향으로 산업이 성장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우리의 주거 형태는 아파트가 압도적으로 높은데, 다가구 주택은 사실 반려동물을 위한 좋은 환경이 결코 아니다. 우리나라보다 반려동물 산업과 문화가 훨씬 앞서 발전된 미국에서도 아파트에서 개를 곁에 두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부동산 회사가 많은데, 그 이유는 반려동물에게 적합하지 않은 환경일 뿐만 아니라 이웃들과의 민원 발생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이 기뻐하는 것을 해주고자 노력 한다. 같은 이치로 반려동물을 사랑한다면 반려동물과 사람 모두가 좋아하는 것을 해주고자 노력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우리가 반려동물을 곁에 두는 이유는 반려동물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반려동물을 통해서 내가 기쁨을 얻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다고 생각된다. 앞으로도 반려동물 산업은 계속 성장할 것이고, 그 숫자도 증가할 것이고, 이에 따르는 법률적 조치도 이를 따라가야만 할 것이다. 반려동물 관련된 제도와 법률을 준비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게 무엇이든 간에 동물과 사람을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하지는 말아야 한다. 사람들의 생활에 문제가 발생되지 않고 함께 할 수 있는 선에서 동물 고유의 생리와 습성을 잘 이해하고 거기에 맞는 법률적 조치의 마련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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