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상 농정연구센터 이사장·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원장

고 이정환 GS&J인스티튜트 이사장을 보내며

이정환 GSnJ 인스티튜트 이사장이 2023년 10월 15일 향년 77세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인은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을 졸업하고 일본 훗카이도 대학에서 농업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1980년부터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수석연구위원, 부원장을 거쳐 제9대 원장(2002~2005년)을 역임했습니다.

2005년 공직생활을 마친 고인은 사재를 털어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자유로운, 독립적 연구”를 표방하며 GSnJ 인스티튜트를 설립합니다. GSnJ는 지난 18년간 곳곳에 흩어져 있는 학자와 전문가들을 연결하는 농업분야 민간 싱크탱크로, 농업계의 현안과 쟁점에 대해 뜨겁게 토론하고 논쟁하며, 다각적인 해법을 모색하는 데 큰 역할을 수행해 왔습니다.

이에 <한국농어민신문>은 ‘기록해야 기억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학자로서 고인의 삶과 인간적인 면모를 가까이서 지켜 본 선후배, 동료들의 추모 기고를 받아 싣습니다.

늘 그 자리에 있을 줄만 알았는데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나고서야 그 빈자리가 갈수록 사무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정환 이사장의 빈자리도 그럴 것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개원 45주년 기념식 참석을 위해 지난 3월 31일 내원한 전임 원장들과의 기념사진. 이 사진이 이정환 이사장의 마지막 연구원 방문 사진이 되었다. 사진 뒷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최정섭(10대), 김홍상(15대), 김창길(14대), 이정환(9대), 허신행(5대), 정영일(6대), 강정일(8대) 원장.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개원 45주년 기념식 참석을 위해 지난 3월 31일 내원한 전임 원장들과의 기념사진. 이 사진이 이정환 이사장의 마지막 연구원 방문 사진이 되었다. 사진 뒷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최정섭(10대), 김홍상(15대), 김창길(14대), 이정환(9대), 허신행(5대), 정영일(6대), 강정일(8대) 원장. 

지금까지 나의 연구자의 삶에 두 분의 소중한 멘토가 계신다. 대학교 은사이자 평생 농업·농촌 관련 연구의 지도교수 역할을 해주시는 정영일 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님과 이제는 고인이 되신 GS&J인스티튜트의 이정환 이사장님이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확신한다.

이정환 원장님은 1993년 농정연구센터의 전신인 농정연구포럼 설립시 발기인 겸 운영위원으로 함께 참여하셨고,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근무하는 동안 선배 연구자이자 부서장, 원장으로서 나의 삶을 챙겨주시고, 변화의 시점마다 선생님 역할을 해주셨다. 무엇보다 농업 관련 국책연구자로서 냉철한 이성과 논리에 기반한 성실한 연구, 전문가로서 아젠다를 선도하려는 깊은 고민과 강한 열정, 성향을 떠나 모든 연구자들에 대한 애정과 열린 마음, 반듯한 자세와 연구자로서 철저한 자기관리 등 연구자로서 삶을 영위하는 데 중요한 지침을 행동으로 보여주셨다.

이정환 이사장님과의 인연은 독특하다. 1992년 말 정영일 교수님과 나는 농산물 시장 개방이 본격화되고, 농업·농촌의 위기적 상황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연구 및 사회적 대화 공간으로서 ‘농정연구포럼(농정연구센터의 전신)’이라는 민간연구조직 설립을 추진하였다. 58학번이신 정영일 교수님께서 함께 참여할 동년배를 찾아볼 테니 60∼70년대 학번의 농업계 인사를 찾아보라 하셨다. 나는 학계, 국책연구기관, 농업관련기관 등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시거나 하실 분들을 다양한 지인들을 통해 물색하였다. 농과대학 학계 인사로 서울대학교 강봉순 교수님, 사회과학대학 학계 인사로 충남대학교 박진도 교수님, 국책연구기관 전문가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이정환 박사님, 농업관련기관 인사로 농협조사부의 고영곤 박사님을 추천하였다.

강봉순 교수님은 서울대학교 교수로서 정영일 교수님과도 잘 알지만, 나의 국민(초등)학교와 중학교 선배로 이미 잘 알고 있었고, 박진도 교수님은 정영일 선생님과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동문으로 농업문제연구회에서 함께 활동하였으며, 고영곤 농협조사부 차장님은 농협조사부에 근무하는 지인들과 몇 번 만난 적이 있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이정환 박사님은 노동력 및 농업구조 관련 논문 등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지인들은 “농경연의 비주류이면서 자기만의 길을 가시는 분”, “깔끔한 신사 분위기”, “진정한 연구자의 길을 걸으면서 장래 큰 역할을 하실 분” 등과 같은 평을 해주셨다. 정영일 선생님께서도 “이정환 박사를 몇 번 만난 적도 있고, 논문도 몇 편 보았는데, 인상적이었고, 농경연의 보배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고 하시면서 추천 인사들과 함께 하자고 하셨다.

1994년 2월 농산물 시장 개방 확대에 대응한 새로운 농정 구상을 위해 대통령 직속 농어촌발전위원회가 출범하면서 나는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게 되었는데, 사무국이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마련되었다. 이를 계기로 나 역시 1994년 7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입사하게 되었다. 이정환 박사님과는 더 자주 만날 수 있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박사 공채 과정에서 나는 지대이론(地代理論)이라는 좀 독특한 영역의 토지문제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박사님께서 논문의 논점을 정확히 요약해 제시하면서 정책연구 적용 가능성에 대해 예리하게 질문을 던지시던 모습과 연구원 입사 이후 저녁을 사주시면서 보여주신 후배 연구자에 대한 따뜻한 배려가 생각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입사 전 농정연구포럼 월례 세미나에서 항상 진지하고 주요 논점을 명확히 제시하는 모습을 먼저 경험한 터라 박사님과 개인적으로 식사하는 자리가 좀 어렵게 느껴졌는데, 이를 고려하여 대학원을 가게 된 계기나 경제학과에 다니면서 농업 분야를 연구하게 된 이유, 경제학과 대학원의 분위기 등에 대해 궁금해 하시면서 일상적인 대화를 이끌어 가시고 당신의 경험에 대해 얘기하시면서 나를 편안하게 해주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연구원의 선배 연구자이자 부서장, 원장으로 계시는 동안 주요 논제에 대한 생각이 다를 경우 반복적으로 불러 토론하고, 서로가 접점이 생길 때까지 토론이 계속되던 일이 생각난다. 연구자로서 철저함과 성실함에 놀랐다. 당신의 논리와 주장을 이해 또는 수용할 때까지 끝을 보시는 듯한 모습이었다. 당시에는 후배 연구자로서 매우 부담스럽고 짜증(?)까지 날 정도였는데, 이후 연구자로서 일관된 성실한 모습에 과거 나의 태도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을 퇴임한 이후에도 GS&J인스티튜트를 설립하시고 주요 농정 과제들에 대해 연구과 자문을 꾸준히 해주시면서 후배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어주셨다. 특히 내가 농업·농촌·식품산업 발전계획 수립 연구를 총괄하면서 동료 및 선·후배 연구자들과 전체 내용의 밑그림을 준비할 때, 이정환 원장님을 통해 전문가 의견을 들어보자고 하면 대부분의 연구진들이 그렇게 해주시면 너무나 고맙다고 생각하는 분위기였다.

실제 내가 원장님께 연락드렸을 때 불러주어 고맙다고 하시면서 어떠한 권위 의식도 없이 후배들과 허심탄회하게 얘기 나누시고 고민을 공유하셨다. 오히려 후배 연구자들보다 구체적 현안에 대해 더 잘 아시고, 더 진지하고 깊은 고민을 드러내시는 모습에 항상 감복했고 나의 부족함에 부끄러움마저 느끼게 되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내가 2019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에 취임한 후 인사차 찾아뵙고, 국책연구기관으로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학회, 정책당국자, 시민사회단체만이 아니라 GS&J인스티튜트, 농정연구센터 등 민간연구기관들과 함께 매년 2∼3일에 걸쳐 대토론회, Research Fair를 개최하여 농업계만이 아니라 전 사회적으로 농업·농촌 관련 주요 정책적 과제를 구체화하고, 이를 국가적, 사회적 아젠다로 전환하는 작업을 해보자고 제의했을 때, “김 원장의 제의는 내 꿈과 같습니다”라며 너무나 해맑게 웃으시면서 한참 동안 내 손을 잡아주시던 모습이 선하다. 이듬해 초부터 본격화된 코로나 확산으로 행사를 개최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최근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 퇴임 후 민간연구조직인 농정연구센터 이사장을 맡게 되었을 때 민간연구조직인 GS&J인스티튜트의 이사장으로서 경험과 고민을 담아 애정 어린 충고를 해주시고, 코로나도 정리되었으니 하지 못한 숙제를 다시 협의해보자고 하셨다. 그러시고 갑자기 비보를 듣게 되니 너무나도 당혹스럽고 야속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마지막 순간까지 한국 농정의 주요 과제를 고민하시고, 마무리해야 할 일을 걱정하시어 편히 떠나시지도 못하셨을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큰 별이 사라진 느낌이다. 아픈 마음을 추스르고 당신께서 추진하려 하셨던 일을 부족하나마 챙겨가겠다고 약속하고자 한다. 이제는 그 깊은 고민의 끈을 놓으시고 편히 쉬시면서 후배들을 지켜봐 주시길 간절히 기원한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