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통계방식을 바꾼다고 해서 농가의 살림살이가 펴질 수는 없다. 역사상 최저치를 기록한 농업소득률을 올릴 수 있는 길은 농산물의 교역조건의 개선에 있지, 규모화에 있지 않다.

ㅣ윤병선 건국대 교수

오래된 우화다. 전쟁터에서 선두에 선 한 장수가 강물과 맞닥뜨렸다. 장수는 참모에게 병사들이 강물을 무사히 건널 수 있는지 알아보도록 했다. 강의 깊이를 측정하고 돌아온 참모는 평균수심이 1미터가 안 된다고 보고했다. 병사들의 평균 신장은 170센티미터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장수는 도하를 명령했다. 그런데, 말을 탄 장수만 살아남았다. 잔잔한 강의 평균수심은 1미터였지만, 강 한복판은 2미터를 넘었던 것이다.

통계의 함정으로 자주 인용되는 이 우화는 통계 수치를 다룰 때 유의해야 할 점을 상기시켜준다. 무엇보다 표본(통계)이 모집단(현실)을 적절하게 반영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표본에서 왜곡이 발생한다면 아무리 정교한 통계분석을 하더라도 현실과는 동떨어진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현실을 보다 잘 담아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통계가 가지고 있는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표본추출에 대한 반복적 검토, 추세치를 통한 검토 등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래야 통계가 정책 결정의 기초자료로, 더욱이 정책 방향이 올바로 가도록 하는 나침반 역할을 한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통계청이 발표하는 '농가경제조사'가 도마 위에 올라왔다. 여야 국회의원이 이 조사를 근거로 2022년도 농업소득이 1000만원 아래로 추락한 점, 농업소득률도 역사상 최저치를 기록한 점 등을 지적하였다. 이에 대한 농식품부 장관 대답의 핵심은 농가 살림에 대한 이 조사의 표본이 잘못 설계되었다는 것, 그래서 농업소득률은 당연히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규모가 작은 농가들로 인해서 평균값이 낮아졌고, 따라서 전업농 또는 상층농을 추려내어 농업소득을 산출할 계획을 밝혔다. 

‘농가경제조사’는 가계동향조사와 함께 1962년부터 실시해 온 중요한 조사이고, 이 ‘조사’는 농업행정 및 농업정책 연구에서 기초자료로 활용되어 오고 있다. 최근의 농가소득, 농업소득 등의 조사치가 최악의 상황이라고 해서, 표본 농가를 전업농 또는 상층농 중심으로 바꾸는 것은 통계조사의 목적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모집단의 특성(규모, 전업농 또는 겸업농, 주작목 등)을 반영하여 표본의 보정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또 이런 이유로 통계청은 5년마다 이러한 표본의 보정을 통해서 오류를 줄이고자 노력해 오고 있다. 지형을 보고 지도를 그려지는 것이지, 지도에 맞춰져서 지형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통계는 불가능하므로 통계와 관련해서 항상 논란이 있어 왔다. 표본의 선정, 표본의 수, 설문의 방식과 조사 시점 등에 따라서 통계치가 달리 나올 수 있는 한계가 있다. 농가경제조사만 보더라도 통계청이 발표한 농가소득은 1인 가구 표본이 현실보다 적게 반영되어 농가소득이 실제보다는 많은 것으로 계상되고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본보, 2022. 5. 3. 보도). 이번 국회에서는 반대로 저소득집단이 과다하게 표집되어 농가소득이나 농업소득이 과소하게 계상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온 셈이다.

그렇다면 과연 상층농의 살림살이는 양호한가?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못하다. 2022년 조사결과를 보더라도 상층농의 살림이 좋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상위 10% 안팎에 해당하는 상층농(경지면적, 2~3ha)의 농가소득이 농가 평균보다 낮다. 농가소득에서 농업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을 보여주는 농업의존도도 25%에 미치지 못한다.

상위 0.9%에 해당하는 10ha 이상의 최상층 농가만이 농업소득으로 가계비를 충족하고 있고, 이들 농가도 농업의존도는 55%에 미치지 못한다. 또한, 전체 전업농의 농가소득은 3500만원인데 비해서, 농외소득이 농업소득보다 많은 2종 겸업농의 농가소득은 6000만원으로 그 차이가 크다.

통계방식을 바꾼다고 해서 농가의 살림살이가 펴질 수는 없다. 역사상 최저치를 기록한 농업소득률을 올릴 수 있는 길은 농산물의 교역조건(농가투입재의 가격수준 대비 농산물 가격수준, 교환비율)의 개선에 있지, 규모화에 있지 않다. 2003년 이후의 경지규모별 농업소득률(20년간 평균)을 보면 1.5~2.0ha 규모가 가장 높았고, 최악이었던 2022년의 경우에도 가장 높았다. 규모화가 능사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수치다.

또 하나는, 의미도 불분명한 농산업화를 내세우기보다는 농가소득 3400만원 수준인 65세 이상의 주업농가가 생활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 시급하다. 경지규모가 작은 농가에 대해서는 그동안 정부가 추진해 온 먹거리 선순환체계의 구축을 매개로 농업소득의 확대로 연결하는 정책이 지속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내년도 예산안을 보면 지역먹거리계획 관련사업도 대폭 축소되는 위기에 놓여 있다.

통계에서 핑계를 찾을 것이 아니라, 방책을 찾는 노력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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