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고성진 기자] 

8월 하순과 9월 초순, “추석 장보기 겁난다”·“추석 장바구니 물가 비상”·“과일값 급등” 식의 ‘추석 물가 급등’을 우려하는 보도가 주요 언론에서 일제히 쏟아졌다. 기사에 근거로 쓰인 ‘소스’는 한국농촌경제연구원,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등 정부 기관의 수급 또는 가격조사가 있었고, 한국물가정보나 소비자단체 등 민간에서 매년 발표하는 ‘차례상 비용’ 조사도 나오기 시작했다.

즉각적인 정부 대응이 눈에 띄었다. “역대 최대 규모의 성수품 공급계획 수립”을 강조하면서, 성수품 할인행사 지원 등에 670억원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재정 당국과 농림축산식품부 고위 공무원들의 물가 점검 행보도 연일 계속되고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민심’을 ‘물가’로 잡겠다는 당국의 의지라는 분석도 나왔다. ‘역대 최대 규모’의 대책을 마련할 정도로 농축산물 가격은 심각한 상황인 걸까.

추석 성수기(추석 2주 전)를 맞아 주요 농산물의 출하 동향과 시세 등을 취재하면서 산지 농민, 도매시장 관계자, 농업 관련 단체 관계자들의 얘기를 들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추석을 10일 앞두고 농산물 출하가 본격화되면서 도매시장 가격은 빠르게 안정되고 있다. 오히려 전년(추석 성수기) 대비 가격이 하락했거나 앞으로 하락할 품목들이 적지 않은 실정이다.

과일 중에는 이상기후 피해로 생산량이 감소한 사과를 제외하고, 배(신고 7.5㎏ 상품, 가락시장)는 전년(3만2000~4만원대)과 비슷하며, 샤인머스켓은 두 배 가까이 떨어진 상황이다. 채소 품목은 하락세가 심각하다. 추석 제사상에 탕·국용으로 소비되는 무(20㎏ 상품)는 최근 1만3000원대 시세를 보여 전년 추석 성수기 대비 ‘반토막’이 난 상황이다. 배추(10㎏ 상품, 세포기)도 마찬가지다. 최저 1만1000원에서 최대 1만6000원 수준으로 전년(2만~2만2000원) 대비 절반 수준이다. 쪽파와 대파도 하락세 또는 전년과 비슷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애호박·시금치 등도 하락 폭이 두드러질 전망이다.

소비자 가격(소매가격)이 즉각적으로 도매시세와 연동되지 않은 데다 소매 유통 단계의 비용과 마진이 더해져 농민이 받는 도매가격과 틈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 격차는 추석이 가까워질수록 더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도매시장으로 출하 물량이 몰려 도매시세는 하방압력이 세지는 반면 소비자 가격의 변동 폭은 미미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생산 농가들의 생산비를 보전하는 도매가격이 대목장에서조차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면, ‘추석 물가 급등’ 우려에 대한 처방은 공급 물량 확대나 할인행사 등 소비 지원에 그칠 것이 아니라 생산비 보전 등 ‘생산기반 안정’이라는 방향에서도 논의돼야 한다.

기획재정부는 9월 17일 자료에서 “20대 추석 성수품 평균가격은 전년 추석 전 3주간 평균 대비 -6%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가격 안정에만 초점을 맞춘 근시안적 접근은 단기간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몰라도 농업을 이탈하는 현 추세를 더욱 가속화시킬 것이다. 나아가 최근 이상기후의 피해를 체감하는 이들이 많아지는 것처럼, 농사를 지을 사람이 없는 위기 상황이 부메랑처럼 되돌아올지도 모를 일이다. 

고성진 유통식품부 유통팀 기자 k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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