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농폐기물에 몸살 앓는 농촌

[한국농어민신문 최영진 기자] 

두진완 군산친환경작목반 회장은 마을마다 멀칭필름을 수거하는 거점이 있지만 고령 농업인의 경우 운반하기 어려워 무단으로 버려진 경우도 상당하다고 설명한다. 
두진완 군산친환경작목반 회장은 마을마다 멀칭필름을 수거하는 거점이 있지만 고령 농업인의 경우 운반하기 어려워 무단으로 버려진 경우도 상당하다고 설명한다. 

영농폐기물로 농촌이 몸살을 앓고 있다. 매년 발생하는 영농폐기물만 30만여 톤에 달한다. 특히 농작물을 재배할 때 경지토양의 표면을 덮는 ‘멀칭필름’은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다. 잡초 억제, 지온 조절 등 농업에 필수적인 자재지만 사용 후 투기되거나 재활용이 곤란해서다. 이에 민관이 함께 개발한 제품이 PCR(Post Consumer Recycled) 멀칭필름이다. 폐비닐을 재활용해 친환경적으로 자원순환을 꾀할 수 있는 데다 사용 농가의 만족도도 높다. 하지만 높은 가격과 재활용 제품은 안 좋을 것이라는 부정적 인식에 가로막혀 보급에 난항을 겪고 있다. 부정적 인식을 해소하고 농촌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PCR 멀칭필름에 대한 지원이 강화돼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는 이유다. 
 

연간 영농폐기물 30만 톤‘주요인’ 멀칭필름 재활용 급선무

‘멀칭필름’ 폐기물 연간 25만톤 
흙 따위 이물질 묻거나 삭아
재활용 어렵고 해외 수출 의존

한국환경공단에 따르면 농촌에서 영농활동으로 발생하는 폐기물은 연간 30만 톤을 상회한다. 한국환경공단 자원순환처 자원순환통계부를 보면 최근 5년간 영농폐기물량은 2021년 31만9194톤 △2020년 30만7159톤 △2019년 31만153톤 △2018년 31만8775톤 △2017년 31만4475톤으로 집계됐다. 

영농폐기물은 크게 하우스용 LDPE, 멀칭용 LDPE, HDPE, PVC를 비롯한 기타로 나뉜다. 이중 멀칭필름은 멀칭용 LDPE와 HDPE로, 두 종의 배출량은 2021년 기준 25만여 톤에 달한다. 멀칭필름이 영농폐기물의 대부분(78%)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최기형 한국환경공단 자원순환처 자원순환통계부 과장은 “멀칭용 LDPE와 HDPE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멀칭필름”이라며 “농업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다보니 농촌 영농폐기물 문제는 멀칭필름인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멀칭필름은 수거되더라도 재활용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가정에서 배출되는 비닐이나 농업용 하우스 필름과 달리 수거와 세척 등에 따른 ‘고비용·저품질’ 구조 탓이다. 이로 인해 매년 20만톤에 달하는 멀칭필름이 수거되지만, 이를 처리하는 데도 애로를 겪고 있다.

최 과장은 “하우스용 필름은 깨끗해서 민간 수요가 있는 데 반해 멀칭필름은 찾는 곳이 없다”며 “흙 따위의 이물질이 묻거나 삭은 멀칭필름은 재활용이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 환경공단에서 수거를 하고 해외 수출에 의존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재활용이 까다롭다보니 민간 업체의 수거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자원순환통계부의 집계에 따르면 매년 5만톤에 가까운 멀칭필름이 무단으로 버려지거나 방치된다. 그렇다보니 영농폐비닐 발생량보다 수거량이 많은 역전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실제 2021년에는 HDPE 필름 발생량은 9만6000여 톤이었지만, 수거량은 10만여 톤을 웃돌았다. 전년도에 버려진 필름이 흙속에 파묻혀 있다가 다음해에 거둬지는 일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최 과장은 “농촌이 고령화되다보니 농업인들이 수거거점까지 안 갖고 가고, 재활용 또한 어려워 다른 비닐과 달리 적극적으로 회수하는 업체들이 없다”면서 “민간 수요가 생길 수 있도록 멀칭필름을 재활용할 수 있는 제품 개발에 환경공단이 나선 이유”라고 설명했다. 

대안으로 재생원료42%·신재58%의 PCR멀칭필름 개발

환경공단 등 개발 ‘PCR 멀칭’
전체 수량의 30%만 대체해도
연간 3만톤 이상 폐비닐 줄여 

한국환경공단 등이 개발한 ‘PCR 멀칭필름’.
한국환경공단 등이 개발한 ‘PCR 멀칭필름’.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 PCR 멀칭필름이다. 사용한 멀칭필름을 수거하도록 유도하고 재활용해 자원순환은 물론 농촌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다. PCR 멀칭필름은 사용 후 버려진 폐비닐을 파쇄, 세척, 분쇄, 압축 등의 공정을 거쳐 생산한 재생원료 42%와 신재 58%가 더해져 만들어진 제품이다. 제품 개발에는 한국환경공단과 전라북도, 농협중앙회 전북지역본부, DL케미칼 등이 참여했다. 

품질도 일반 멀칭필름 대비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PCR 멀칭필름은 총 3차례의 기술개발과 품질개선 작업이 이뤄졌으며 노동력 절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KOTITI 시험연구원이 실시한 물성평가에서는 두께가 0.03mm로, 기존 제품 대비 인장강도가 10% 향상된 것으로 분석됐다. 

무엇보다 영농폐비닐 처리와 탄소중립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란 기대가 높다. 환경공단 전북환경본부는 연간 멀칭필름 사용수량의 30%를 PCR 멀칭필름으로 대체 사용 시 연간 3만 1175톤 가량의 영농폐비닐 재고 절감 효과를 거둘 것으로 내다봤다. 또한 재생원료를 사용함에 따라 신재 대비 약 30% 탄소저감 효과가 있고 ‘2050 탄소중립 추진전략’ 및 ESG경영 이행 강화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최태범 한국환경공단 전북환경본부 환경서비스처 자원순환사업부 과장은 “탄소중립 추진과 자원순환 등이 중요 정책으로 떠오르면서 한 번만 사용하고 버려지는 멀칭필름을 재활용할 수 있는 친환경적인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과제였다”며 “PCR 멀칭필름 개발은 온실가스 감축 효과와 지속가능한 순환경제를 구축할 수 있게 됐다는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사용 농가 만족도 높고 탄소절감 기여도 기대

인장강도 높아 농작업 수월
내구성 뛰어나 일손 절감도
재배기간 긴 마늘·양파에 제격

PCR 멀칭필름을 밭에 깐 모습. PCR 멀칭필름은 일반 멀칭필름을 재활용해 만들어져 탄소중립과 친환경적인 제품으로 평가 받는다.
PCR 멀칭필름을 밭에 깐 모습. PCR 멀칭필름은 일반 멀칭필름을 재활용해 만들어져 탄소중립과 친환경적인 제품으로 평가 받는다.

한국환경공단은 PCR 멀칭필름을 정식으로 상용화하기 전 농업인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진행했다. 전북농업기술원, 군산시친환경작목반 등이 참여했으며 PCR 멀칭필름을 사용한 농가들의 만족도도 높다. 지난해 PCR 멀칭필름을 보급 받은 군산시친환경작목반 회원들은 한목소리로 인장력이 강하고 노동력 절감에도 도움이 된다고 평가했다. 

두진완 군산친환경작목반 회장은 “작년 6월에 PCR 멀칭필름을 받아 올해 8월에 피복했는데, 0.015~0.02mm 정도인 일반 멀칭필름 대비 두께가 두꺼워서 햇볕에 노출돼도 잘 삭지 않았다”면서 “인장력이 강해서 피복할 때도 찢어지지 않다보니 농작업이 수월했다”고 말했다. 

오세란 군산친환경작목반 총무도 “농작업을 하다보면 파묻혀 있는 멀칭필름이 간혹 나와 그럴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는데 PCR 멀칭필름은 일반 멀칭필름을 재활용한 제품이라서 친환경적이라는 점이 좋았다”며 “PCR 멀칭필름은 환경문제를 해소한다는 장점이 있는데다 내구성이 뛰어나 일손을 더는 효과도 있다”고 높게 평가했다. 

특히 PCR 멀칭필름은 생분해성 멀칭필름과 일반 멀칭필름의 중간다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크다. 생분해성 멀칭필름은 일정기간 동안 햇볕에 노출되면 자연스럽게 녹아 사라지는데, 이로 인해 재배기간이 긴 작목에는 활용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생분해성 멀칭필름 대신 재활용 제품인 PCR 멀칭필름을 사용하면 친환경적인 농업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햇볕에 녹아 없어진 생분해성 멀칭필름. 농가들은 일반 멀칭필름을 재활용한 친환경적인 PCR 멀칭필름이 재배기간이 긴 작목을 재배할 때 유용하다고 말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햇볕에 녹아 없어진 생분해성 멀칭필름. 농가들은 일반 멀칭필름을 재활용한 친환경적인 PCR 멀칭필름이 재배기간이 긴 작목을 재배할 때 유용하다고 말한다.

두진완 대표는 “생분해성 멀칭필름은 4개월 정도면 녹아서 사라지기 때문에 재배기간이 긴 마늘과 양파 등의 농사엔 적합하지 않다”면서 “이런 경우에 PCR 멀칭필름 사용을 장려하면 탄소절감, 농촌 환경 개선 등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가격’, “친환경자재인 만큼 보조 이뤄져야”
“차액보조·사용 장려 등 통해 농가 부담 덜어야”

하지만 현재 PCR 멀칭필름이 원활하게 보급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일반 멀칭필름과 비슷한 가격 때문이다. 재활용 제품은 새 제품보다 저렴해야 한다는 게 대중적인 인식으로 자리 잡고 있어 농민들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PCR 멀칭필름에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두진완 대표는 “일반 멀칭필름 대비 가격차이가 거의 없어 농가들이 PCR 멀칭필름을 구매할 이유를 잘 못 찾는다”면서 “재활용한 원료가 들어있다 보니 ‘중고제품’이라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런 인식을 개선하고 친환경자재 보급을 위해 PCR 멀칭필름 구입 시 지원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제품을 보급하는 필름업체에서도 지원이 이뤄지면 ‘규모의 경제’로 가격을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정근우 일신하이폴리 이사는 “수요가 늘어나면 대량생산 체제에 돌입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기기 때문에 일반 멀칭필름 대비 저렴하게 판매가 가능하다”며 “현재로서는 수요가 적기 때문에 설비를 확대하기에는 애로가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PCR 멀칭필름을 보급하고 멀칭필름 재활용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정책이 투트랙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영농폐기물과 관련해 연구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신산업연구실 서대석 실장은 “환경보호와 자원절약, 탄소배출 절감 차원에서 자원순환이 이뤄질 수 있도록 재사용을 장려하는 것에 정부가 노력을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멀칭필름이 다른 산업군에서 재활용될 수 있도록 신제품 개발에 정부 지원이 이뤄져야 하고, 현재 개발된 PCR 멀칭필름을 농가들이 사용하는 데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차액보조나 친환경 제품 사용을 장려하는 사업을 환경부와 농식품부 등이 전개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최영진 기자 choiy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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