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변화된 기후에 맞는 작물을 심는 것이 농업의 기후 위기 대응책이 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이는 적응하려는 노력일 뿐 적극적인 기후 위기 대응책이 될 수는 없다. 

ㅣ박진희 (재)장수군애향교육진흥재단 사무국장

며칠 전 공중파 뉴스를 보다가 뜨악했다. 사과를 테마로 해마다 열리는 모지역의 축제가 기후 위기에 따른 사과 흉작으로 사과 농가에게도, 소비자에게도 달갑지 않은 축제가 되었다는 내용의 뉴스가 나왔기 때문이다. 기후 위기를 염려하는 것인지, 사과가 흉작인데도 사과 축제를 여는 것을 비판하는 것인지 보도의 맥락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지역 축제 개최 이유가 농산물 판매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어서 개인적으로 뉴스의 관점 역시 동의하기 어려웠다.

그렇지만 이렇게라도 기후 위기가 농업에 미치는 영향이 뉴스에서 다뤄진다니 마음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날마다 정치, 경제 문제로 점철되는 뉴스에서 농업뉴스는 늘 재난뉴스이거나 물가뉴스였는데, 기후 위기와 흉작을 이야기하는 보도라니, 이제야 언론이 제 역할을 하나 싶기도 했다.

기후 위기의 흉작은 단순히 농사가 잘 안된 것이 아니라 그 작물이 지금의 기후 환경과 더 이상 맞지 않아 앞으로도 흉작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후 위기는 작물의 지도를 바꾸고 있다. 실제로 과수의 주산지는 크게 달라져왔다. 지난 3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사과의 대표적 주산지는 대구·경북이었다. 그러나 농촌진흥청의 자료에 따르면 대구·경북의 사과 재배면적은 지난 30년 사이 44%가 줄어들었다. 그리고 1990년대 사과를 심기 시작한 강원도의 사과 재배면적은 지난 30년 사이 무려 247% 늘어났다.

전북 장수는 대표적인 사과의 주산지이다. 최근 농촌진흥청은 홍천군과 군위군에 기후 위기에 따른 지역 맞춤형 사과 주산지를 조성한다고 밝히면서 그동안 지역 맞춤으로 사과를 재배해온 지역의 대표 사례 중 하나로 전북 장수 예를 들었다. 고랭지인 장수가 추석을 겨냥한 홍로 사과 생산지로 자리잡아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기후 위기로 사과 없는 사과 축제가 되고 있다고 언론에서 보도한 사과는 홍로이고, 지역은 장수이다. 기후 위기는 고랭지라고 피해가지 않는다. 현재 강원도의 사과 재배면적은 경북, 전북, 충북에 비해 적지만 특별한 대안 없이 기후 위기가 지금처럼 진행된다면 앞으로 사과는 강원도 일부만 재배가 가능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한다.

달라진 것은 사과뿐만 아니다. 복숭아도, 포도도 주산지가 달라져 왔다. 과수야 그렇다고 치고, 논밭 작물은 대한민국 어디서나 비슷비슷하다고 믿고 싶건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고랭지이고, 해발 520m 이상인 우리 마을에서는 요즘 동남아 채소인 공심채 농사가 된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고랭지에서 공심채 농사가 가능하다고 생각지 못한 일이다. 오래전부터 동남아시아 농업을 연구하는 내 친구는 십여년 전, 뭐 그런 연구를 하냐는 멸시를 받았다는데, 지금은 전국적으로 아열대 작물을 공부하고 심는 영농조직들이 생기고 있다.

그런데 변화된 기후에 맞는 작물을 심는 것이 농업의 기후 위기 대응책이 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이는 적응하려는 노력일 뿐 적극적인 기후 위기 대응책이 될 수는 없다. 기후 위기 속도를 작물 재배치와 식문화 변화가 따라잡을 수 있을까? 작물 재배치는 그저 씨앗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퇴비, 농자재와 같이 투입물 모두를 그에 맞게 변경해야 하고 농사법을 새롭게 익혀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자본 투입과 새로운 농사법 익힘이 고령화된 농촌에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식문화 역시 공동체가 무수한 세월 동안 이룩해온 것이기 때문에 어느 한 순간을 기점으로 하여 전면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가 없다. 심는 것을 바꾸는 것이 곧 먹는 것을 바꾸는 일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 기후 위기의 적극적인 대안으로 스마트팜이 부상하고 있다. 농사는 논이나 밭에 씨를 뿌리고 가꾸어 거두는 등의 농작물 재배 과정이다. 스마트팜도 가꾸고 거두는 농작물 재배 과정이다. 그러나 그동안 농사는 인류에게 수확물만 가져다 준 것이 아니다. 땅에서 이뤄지는 농사 행위는 가뭄과 홍수를 조절했고, 생물다양성을 유지하는데 기여하는 생태계의 큰 축이었다.

스마트팜이 가뭄과 홍수 조절은 못하더라도 생물다양성에 기여하며 생태계의 큰 축이 될 수 있을까? 돈과 규모 걱정 없이 누구나 다 스마트팜을 할 수 있을까? 기후 위기가 위협하는 건 식량 불안정성 뿐만 아니라 그동안의 식문화와의 단절, 생태 불안정, 자본력과 기술력을 앞세우지 못하면 차단되는 농의 가능성이다. 기후 위기는 먹거리 정의로움의 전제인 농의 근본적 가치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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