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시장 마르쉐×의성군×내일의 식탁
‘지속가능한 미식을 위한 동아시아 포럼’

[한국농어민신문 김선아 기자] 

지난 9일  경북 의성 최치원문학관 대강당에서 열린 '지속가능한 미식을 위한 동아시아 포럼'. 농부시장 마르쉐와 의성군, 내일의 식탁이 함께 준비했다. 
지난 9일  경북 의성 최치원문학관 대강당에서 열린 '지속가능한 미식을 위한 동아시아 포럼'. 농부시장 마르쉐와 의성군, 내일의 식탁이 함께 준비했다. 

지역의 먹거리를 중심으로 도시와 농촌을 연결, 지속 가능한 농업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한국과 일본, 대만의 민간 활동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앞으로의 지역-더 맛있는 삶’을 슬로건으로 지난 9일 경북 의성 최치원문학관에서 열린 ‘지속가능한 미식을 위한 동아시아 포럼’은 농부시장 마르쉐가 의성군, 내일의 식탁과 함께 준비한 자리다.

이날 포럼에는 일본 도쿠시마현 카미야마에서 ‘지산지식(地産地食)’을 원칙으로 소규모 식품 생태계 구축에 나서고 있는 ‘푸드허브프로젝트’ 공동대표 타이치 마나베(Taichi Manabe), 유기농 농부시장에서 시작해 친환경 외식의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가고 있는 대만 ‘그린다이닝가이드’의 공동설립자 타라 호(Tara Ho), 지역의 토종곡물 생산자를 발굴, 도시와 농촌을 잇는 다양한 식경험을 디자인하는 공주 곡물집의 천재박 대표가 함께했다.
 

로컬푸드, 지역의 허브가 되다(카미야마 푸드허브시스템)

인구 4820명, 고령화율 50%를 넘어선 카미야마는 일본 내에서 스무 번째로 소멸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됐던 전형적인 과소화 마을이다.

타이치 마나베 씨는 2014년 이곳으로 이주했다. 푸드허브프로젝트는 ‘지방 재생전략’의 일환으로 2016년 시작됐다. 다른 젊은 이주자들과 지역의 고령농들로부터 인계받은 4.5ha의 땅에서 30여종의 제철 채소를 재배하고, ‘지산지식(지역에서 생산하고 지역에서 먹는다)’을 테마로 지역에서 식당과 빵집, 직판매장 등을 운영하고 있으며, 학교급식과 음식교육 등도 진행한다.

타이치 마나베 씨는 “대량 생산, 대량 소비의 푸드시스템은 어디서나 쉽게 접할 수 있지만 기업만 배부르게 되는 구조”라면서 “우리가 추구하는 지산지식은 지역의 생산자와 연대, 먹거리를 중심으로 세대와 세대를 잇고 그곳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을 연결, 지역에 대한 애착과 정체성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생산에서 식탁까지, 매력적이지만 힘겨운 여정(대만 그린다이닝가이드)

2012년부터 타이완 국립대학 근처에서 유기농 농부시장을 오픈, 시민과 농부의 만남을 추진해 왔던 타이 호 대표는 2018년 그린다이닝가이드를 창립했다. “더 많은 유기농 식품이 더 많은 소비자에게 갈 수 있도록”하기 위해서였다.

친환경 식당을 중심으로 ①유기농 및 친환경 식재료 우선 구매 ②현지 및 제철 재료 우선 사용 ③생태 및 해양 지속가능성 원칙 준수 ④화학첨가물 사용 최소화 ⑤채식요리 제공 ⑥자원 고갈 및 낭비 줄이기 등 6가지 원칙에 동참하도록 독려하고, 이들과 유기농 농장을 매개하거나 소비자들에게 홍보하는 일들을 추진 중이다.

타이 호 대표는 “친환경 외식 생태계를 구축하는 일은 매력적이지만 매우 힘든 여정”이라면서 “그렇지만 우리는 지속가능한 식품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소비자에게 신뢰할 수 있는 외식가이드를 제공, 녹색 소비를 촉진하고 친환경 식단을 장려하는 일에 더 힘을 쏟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역의 먹거리로 재탄생하는 토종씨앗(공주 곡물집)

충남 공주에 있는 ‘곡물집’은 토종 곡물을 소재로 식경험을 디자인하는 곳이다. 천재박 대표는 “토종 곡물은 특정 지역의 기후와 토양에 적응해 오랫동안 살아남아 정형화, 규격화는 어렵지만, 개인의 취향과 선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는 현재, 다양성이 본질인 토종 곡물을 주목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말한다.

곡물집은 쇼룸과 카페, 오픈키친, 작은 서점 등이 들어간 공간에서 토종 곡물을 소재로 커피와 잼, 스프레드 등의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곡물 경험 워크숍’ 등을 열어 도시에서는 만날 수 없는 다양한 식문화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천 대표는 “스스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고민이 자신과 이웃, 지역사회에 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고 믿는다”며 “지속가능한 미식 경험을 디자인해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교육기관으로 성장하고 싶다”고 말했다.

 

'소비되는 농촌'이 되지 않도록 새로운 전략 짜야

이날 ‘도시와 농촌의 융합상생을 위한 먹거리 전략’을 주제로 기조발제를 맡은 황영모 전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도시와 농촌의 교류가 과거와 같이 도시의 필요를 위해 농촌이 일방적으로 소비되는 방식으로 추진되어선 안된다”면서 “여러 사례들처럼 사람과 물적 자원의 이동과 교류에 그치지 않고, 먹거리를 매개로 함께 상생하는 관계시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새로운 전략을 짜야 한다”고 제언했다.

행사를 주관한 농부시장 마르쉐 이보은 대표는 개회사에서 “농업의 지속가능성, 지역의 재도약을 위한 논의와 프로그램이 넘쳐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는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역의 식탁에 둘러앉는 사람이 늘어날 때 그 지역의 내일이 있다는 점이다. 이번 포럼이 그 식탁의 모습을 보다 구체적으로 상상해 보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마르쉐는 프랑스어로 ‘장터, 시장’이라는 뜻으로, ‘돈과 물건의 교환만 이뤄지는 시장’ 대신 ‘사람, 관계, 대화가 있는 시장’을 목표로 2012년 10월 혜화에서 첫 농부시장을 연 이후 올해로 11년째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김원일 내일의 식탁 이사장은 “지속가능한 먹거리,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민간의 활동이 동아시아 나라 곳곳에 있다. 오늘 포럼은 이들 사례를 교류하고 상호지지, 연대하기 위한 자리”라며 “이번에 함께하는 동아시아 기관, 단체, 개인들과 함께 지속가능 먹거리 민간연대를 확산하고자 한다. 정부의 국제교류에 의존하지 않고 민간의 적극적인 연대로 오늘의 위기에 대처해 나가자”고 밝혔다.

김선아 기자 kimsa@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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