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날로 불안정해지는 국제 식량수급 상황을 생각하면, 쌀이야말로 식량위기 시대에 전국민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는 전략작물이 아닐까? 오히려 정부가 재정지출을 감내하더라도, 벼 재배면적을 유지하는 것이 식량위기 시대에 해야 할 선택이 아니냐는 얘기다.

ㅣ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내년도 예산안이 나왔다. 농림축산식품부 예산은 18조 3330억원 규모로, 2023년 예산 17조 3573억원에 비해 5.6% 증가했다. 국가 전체 예산 증가율 2.8%보다 높은 수치이다.

그리고 농업직불금 규모도 증가했다, 2023년 2조 8400억원에서 내년에는 3조 1042억원으로 증가할 예정이다. 소농직불금이 120만원에서 130만원으로 인상되는 것도 눈에 띈다.

국가재정이 어려운 속에서도 농림축산식품부 예산이 증가한 것은 긍정적이다. 행여나 국회 예산심의과정에서 삭감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려스러운 대목도 눈에 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논콩과 가루쌀 등 전략작물직불금 단가를 ha당 100만원에서 200만원으로 인상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논콩의 경우에는 올해 수해피해가 심각해서 농민들이 항의하고 있는 실정이다.

농민들은 ‘정부가 쌀 생산을 줄인다면서 무리하게 타작물 전환을 지원하고 있는데, 물을 저장해서 벼를 기르던 논에 배수가 원활해야 할 밭작물을 심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한다. 배수로를 판다고 해서 갑자기 밭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논콩을 확대하는데 많은 예산을 쏟아붓는 것이 적절한 것일까?

정부는 쌀 과잉생산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최근의 국제적인 상황을 보면, 그렇게만 볼 일은 아니다. 이상기후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해 세계 식량수급사정은 계속 불안정한 상황이다.

인도정부는 쌀 수출을 일부 금지하는 등 수출 제한조치를 취하고 있다. 인도는 세계 최대의 쌀 수출국이다. 그리고 국제적으로 쌀 가격은 상승하고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7월 세계 쌀 가격 지수는 129.7로 2011년 9월 이후 최고치이며 작년보다 19.7% 상승했다.

인도 만이 문제가 아니다. 주요 쌀 생산국들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 엘니뇨의 영향도 크다. 동태평양의 바닷물 온도가 평소보다 높은 상태가 지속되는 엘니뇨 현상은 농사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세계2위의 쌀 수출국가인 태국에서는 가뭄과 물부족으로 인해 쌀 생산이 부진하다. 인도네시아도 엘니뇨의 영향으로 쌀 생산이 부진할 전망이다.

지난 7월 17일 러시아가 흑해곡물협정 탈퇴를 선언하면서 우크라이나의 곡물수출도 차질을 빚을 상황이다. 장기화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언제쯤 끝날지 알 수가 없다.

이처럼 국제적인 곡물수급 상황은 매우 불안정하고 급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곡물자급률이 20%에도 미치지 못하는 대한민국은 단기적인 상황판단도 잘 해야 하고, 중ㆍ장기적인 대책도 잘 수립해야 하는 상황이다.

쌀과 관련해서도 착시 현상이 있다. 우선 연간 40만톤 정도 수입되는 쌀을 고려하면, 대한민국의 쌀 자체가 과잉생산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쌀 생산량은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줄어든 상태이다. 2004년 500만톤이던 쌀생산량은 2022년 376만톤으로 줄었다. 벼 재배면적도 대폭 감소했다. 벼 재배면적은 2004년 100만 1159ha에서 30만ha 가까이 감소했다. 올해 벼 재배면적은 70만 8041㏊에 불과하고, 작년에 비해서도 1만 9013㏊ 줄어든 상황이다.

물론 그보다 더 빨리 쌀 소비가 줄어들었기는 하다. 육류 등 다른 소비가 늘어난 영향이다. 그러나 쌀 소비감소 추세도 언젠가는 바닥을 찍게 될 것이다.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2022 양곡연도(2021년 11월∼2022년 10월)에는 1인당 쌀 소비량이 56.7㎏으로 전년보다 0.4% 감소하는 데 그치기도 했다.

오히려 날로 불안정해지는 국제 식량수급 상황을 생각하면, 그나마 자급기반을 가지고 있는 쌀이야말로 식량위기 시대에 전국민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는 전략작물이 아닐까? 오히려 정부가 일정한 재정지출을 감내하더라도, 벼 재배면적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 식량위기 시대에 해야 할 선택이 아니냐는 얘기이다. 게다가 현실에 맞지 않는 정책으로 농민들에게 피해를 주고 혼란을 초래하며 예산을 낭비해서야 되겠는가?

따라서 지금은 무조건 타 작물로 전환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능사가 아닌 상황이다. 위기상황일수록 탁상공론식의 정책이 아니라 현실타당한 정책이 필요하다. 또한 늘 고려해야 할 것은 기후위기가 낳을 식량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최소한의 국내 자급기반을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의 예산심의 과정에서라도 심도있는 논의와 검토가 이뤄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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