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숙정 한국농촌사회학회 운영이사

[한국농어민신문] 

심각하게 앞당겨진 ‘생태용량 초과의 날’
성장중독·소비중독이 기후위기 가속화
탈성장 실천 주체로 소농 가치 재평가를

올 여름은 폭염과 폭우가 번갈아 나타나 농민의 고통이 심했다. 온열질환자가 2689명에 이르고 사망자가 31명이나 된다. 이제는 기후 위기를 부정하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인간의 과도한 생산과 소비 활동이 기후 위기의 주요 원인이라는 점에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지구 생태용량 초과의 날(Earth Overshoot Day)’이라는 것이 있다. 세계 환경단체인 지구 생태발자국 네트워크(Global Footprint Network)에서 매년 1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생태용량(Biocapacity)을 계산하고, 그 용량을 넘어서는 날짜를 ‘생태용량 초과의 날’로 지정한다. 이 날을 기준으로 생태용량을 넘어서는 ‘생태적자’ 상태가 된다.

그런데 이날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1971년에 12월 25일이었는데, 2022년에는 7월 28일로 당겨졌다. 우리나라의 생태용량초과의 날은 매우 심각하게 앞당겨져 있다. 2022년에 4월 2일을 기록하고 있으니, 우리나라에서는 3개월만에 1년치 탄소를 다 써버리는 셈이다. 경제 성장과 발전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 아래 생태적 부채가 쌓이고 있는 것으로, 그 엄청난 대가를 눈으로 지켜보면서도 우리는 생산, 발전, 성장을 멈추지 못한다. ‘성장중독’, ‘소비중독’ 때문이다.

기후위기를 가속화하는 중독적 패러다임의 대안으로서 ‘탈성장’ 논의가 활발하다. 대표적 탈성장 이론가인 세르주 라투슈는 성장과 발전 지상주의, 경제 패권주의, 세계의 서구화, 생활양식의 일원화를 통렬히 비판한다.

그는 탈성장은 유한한 지구와 결코 양립할 수 없는 무한한 개발과 발전, 인류 자멸로 귀결되는 절대성장, ‘성장을 위한 성장’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벗어나, 다른 사회를 조직하고 구성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탈성장을 실천하는 주체로서 소농의 가치가 재평가되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소농은 소규모 가족농을 말한다. 규모 측면에서 볼 때 통상 1ha 이하를 소농으로 본다. 공익직불제 지급 기준을 정하면서 정부는 ‘0.5ha 이하’를 소농의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설정했는데 이는 정부의 재정 여건 등을 고려한 기준이었다. 우리나라는 농가의 74%가 1ha 미만의 소농이고, 0.5ha미만은 약 64%에 해당한다. 삶의 양식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소농은 경지 면적이 적을 뿐 아니라 경영 방식에서도 가족 노동력을 중심으로 하고, 자본, 기술 등의 측면에서 볼 때 시장에서 주변적이다.

소농은 따라잡기식 개발주의에서 벗어나 삶의 터전인 지역사회에서 공생의 토대를 만든다. 소농은 교환가치보다 사용가치 생산을 중요하게 여기며, 먹고 사는 일로써 농사에 주력하고, 가족, 친인척과 이웃의 먹거리를 우선적으로 생산한다. 또한 가족을 돌보고 이웃의 일을 거들고 마을을 가꾸는 일에도 능동적이다. 소농의 실천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하는 생산활동이자 농촌사회를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사회활동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또한 모두가 한탕주의에 빠져 부동산 투기에 몰려들 때, 소농은 농지를 지킴으로써 식량주권과 생태환경 보전에 기여해왔다.

1990년대 이후 농업 구조의 변화를 소농의 몰락이라는 말로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농가 인구는 1990년 715만명에서 2022년 216만명으로 줄었다. 농가 인구는 전체인구 대비 4.2%에 불과하며 농가 인구 중 65세 이상 비중이 50%에 달한다. 소농의 삶을 유지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자급적 관점을 지닌 소농이라도 완전한 자급은 어려운 실정으로, 필수생계비를 쓸 수밖에 없는데,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농가소득 1분위(하위 20%)부터 3분위(하위 60%)까지는 소득과 상관없이 1500만원 내외의 생계비가 지출되고 있었다. 농산물 가격이 보장되지 않고, 기후재난이 일상화되는 현실에서 농사 적자를 감당하면서, 불안정한 겸업과 약간의 공적 이전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소농의 기본적 소득을 보장하는 제도로 연간 120만원을 지원하는 소농직불금이 있다. 소농직불금은 소농의 공익적 가치를 인정하고, 소농을 육성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별도 지원책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 일부 학자들은 소농직불금이 농업 경쟁력 향상에는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정부에서 헛돈을 쓰는 것이라는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이러한 주장은 제도 취지에 대한 오해에서 나온다고 본다. 농업농촌공익직불법에 따르면 직불제는 ‘농업ㆍ농촌의 공익기능 증진과 농업인등의 소득안정을 위하여’ 마련된 제도이지 더 많은 생산을 위한 것이 아니다.

요컨대 소농은 우리 사회의 희망이다. 생태 용량이 한계에 다다르고 눈앞에서 기후재난을 맞이하는 시대, 생태적 삶의 대안을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나는 소농에게서 기후위기 시대 희망을 발견한다. 파괴적인 생산과 소비자본주의적 생활양식을 멀리하고 탈성장을 실천하고 있는 소농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빈곤의 위험 없이 소농의 삶을 선택하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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