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농촌재단, 신용호 선생 영면 20주기 추모행사
'농의 가치 확산과 교육의 역할' 심포지엄 등 열어

[한국농어민신문 김선아 기자] 

대산 신용호 선생 영면 20주기를 맞아 대산농촌재단은 지난달 24~25일 충남 천안 계성원에서 추모행사를 개최했다. 지난 32년간 대산이 추진하는 공익사업과 다양한 인연을 맺은 참석자들이 행사장을 찾았다. 사진=대산농촌재단 제공
대산 신용호 선생 영면 20주기를 맞아 대산농촌재단은 지난달 24~25일 충남 천안 계성원에서 추모행사를 개최했다. 지난 32년간 대산이 추진하는 공익사업과 다양한 인연을 맺은 참석자들이 행사장을 찾았다. 사진=대산농촌재단 제공

교보생명 창립자인 대산 신용호 선생(1917~2003)은 시장 개방의 파고가 높아지던 1991년, 우리나라 민간 최초의 농업·농촌 지원 공익재단인 대산농촌재단(이사장 김기영)을 설립했다. “농촌은 우리 삶의 뿌리요, 농업은 생명을 지켜주는 산업”이라는 철학을 실천으로 구체화하기 위해서였다.

지난 32년간 대산농촌재단은 선생의 뜻을 이어 △농업인 역량 강화와 자긍심 고취, △농업·농촌의 미래 핵심인재 양성, △농업·농촌의 공익적 가치 공유 등을 목표로 다양한 공익사업을 펼쳐 왔다. 그 과정에서 총 450억원의 예산이 투입됐고, 15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대산농촌상 수상자로, 대산농업연수자로, 농업연구자로, 농업전문언론장학생으로, 농촌체험 참여자로 대산농촌재단과 다양한 인연을 맺었다.

지난 8월 24~25일 충남 천안시 계성원(교보생명 연수원)에서는 대산 신용호 선생 영면 20주기를 맞아 ‘대산의 유산, 지속가능한 농을 위한 연대’를 주제로 다양한 추모행사가 열렸다. 전국 각지에서 대산과 인연을 맺은 200여명의 사람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김기영 이사장은 “대산 선생은 매우 독창적인 사업가이자, 곤궁하고 피폐했던 국가와 민족을 사랑했던 리더였고, 교육의 중요성을 일찍 인식하고 실천하셨던 교육 지도자였다”면서 “오늘의 행사가 대산 선생의 뜻을 이어서 지속가능한 농업·농촌을 위한 새로운 여정의 첫걸음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급격히 추락한 농업의 ‘정치력’ 회복 급선무

양승룡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양승룡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1부 기념식에서 ‘농의 사회적 가치와 대산농촌재단’을 주제로 기조강연을 맡은 양승룡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대산농촌재단 이사)는 “농업은 인류 문명의 토대로, 인류가 가진 거의 모든 것의 역사다. 현재도 그렇고 미래도 그럴 것”이라고 강조하고, “식량 생산이라는 농업의 산업적 가치는 2022년 기준 34조5000억 원으로 전체 산업대비 1.7%에 불과하지만, 시장에서 보상받지 못하는 농의 공익적 가치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연간 263조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양 교수는 이어 “환경보존, 국토균형발전, 경제활성화, 어메니티 제공 등 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유지하고 확대하는 것은 정부의 당연한 역할임에도 이를 지원하는 정부의 직불금 예산은 공익적 가치의 0.9%에 불과한 것이 우리 농업의 현실”이라면서 “우리 농업이 이렇게 어려워진 것은 시장 실패와 정부 실패의 결과물”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농업을 살리려면 농업계 스스로 급격하게 추락한 농업의 정치력을 키워야 한다”고 제언하고, 특히 “1991년 설립 이후 30년 넘는 세월 동안 ‘농의 가치’를 알리는 일에 한결같이 성심을 다해 온 대산농촌재단과, 그 후원을 받은 15만명의 사람들이 우리 농업의 정치력을 키우는데 엄청난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농업문명 전환운동에서 희망 찾아야

2부 심포지엄에서는 ‘농의 가치 확산과 교육의 역할’이라는 주제 아래 세 명의 전문가 발표와 패널들의 열띤 토론이 펼쳐졌다.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1주제 ‘신자유주의 개방화 시대 30년, 농업·농촌·농민의 변화와 과제’를 발표한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는 “1990년대 WTO(세계무역기구) 출범과 함께 30년 이상 지속돼 온 신자유주의 시장 개방으로 농민들의 삶은 갈수록 팍팍해졌고, 농촌은 소멸위험으로 내몰리고 있다. 농업의 수익성이 계속 낮아지고 있음에도 이나마 버티고 있는 것은 대부분 농민이 자가 노동비를 비용으로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농지가격과 빈번해진 폭우, 폭설, 우박, 냉해 등 기후변화도 농사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는 요인으로 꼽았다.

윤 교수는 “2016년 은퇴 후 고향인 양양으로 귀촌해 사과 농사를 지으면서 얻은 가장 큰 문제의식은 정책과 현장이 너무 괴리돼 있다는 점”이라며 “최근 기후위기 극복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는 자본집약적인 첨단기술농업은 우리 농업의 미래가 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일부 생산성 향상에는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르나 대규모 시설비가 소요되는 자본집약적 농업은 결국 일부 대농과 기업농을 장려하고 육성하는 꼴이 될 우려가 높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우리 시대와 미래에 필요한 농업은 기후·환경·생태를 살릴 수 있어야 하고, 농민과 농촌이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지속가능한 농업이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사려깊은 선구자나 농민·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새로운 농업문명 전환 운동에 주목하자”고 제안했다. 친환경 유기 생태농업, 토종종자 보급, 로컬푸드, 파머스마켓, 지역공동체 활성화, 마을만들기, 공동체 지원농업(CSA), 사회적 농업 등이 그것이다.

그는 “지금은 작아보일지 모르지만, 인류와 농업·농촌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꼭 가야할 길”이라면서 “공룡같은 거대한 신자유주의 이념에 저항할 수 있는 위대한 날갯짓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농업·농촌에 관한 대국민 ‘문해교육’ 필요

마상진 농경연 선임연구위원
마상진 농경연 선임연구위원

제2주제로 ‘지속가능한 농업농촌을 위한 미래세대 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발표한 마상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은 “대국민 농업·농촌교육이 필요하다”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사회 여론 주도층이나 정책 입안자인 국회의원 다수가 비농촌 출신이다. 그러다보니 생산자의 관점보다 소비자의 관점에서 농업 문제를 접근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또한 농업·농촌에 무지한 소수 엘리트층의 왜곡된 견해가 대중매체를 통해 과장되어 나오는 있는 것도 큰 문제다.”

이에 마 연구위원은 미국의 농업문해교육(Agriculture in the Classroom)을 예로 들며 “농촌에 살지 않더라도, 농업에 종사하지 않더라도 농업·농촌에 대한 기본적 이해를 가질 수 있도록 청소년기부터 농업·농촌 관련 교육을 체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경제계의 경우 기획재정부 지원하에 2009년 경제교육지원법을 제정, 교과서 및 교재개발, 프로그램 개발, 전문인력 양성, 교사직무연수 등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밖에 참여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은 ‘농촌 유학’ 활성화와 농촌활동가 육성 전문과정인 ‘농촌청년 아카데미’ 운영, 일본의 지역부흥협력대를 벤치마킹한 ‘농촌 후계자’ 개념 도입 등도 제안했다.

 

재농화·식농교육 통해 ‘먹거리 시민’ 양성을

김철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김철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연대-농의 가치 확산’을 주제로 세번째 발표를 맡은 김철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최근 신림역 인근에서 묻지마 흉기난동을 벌인 피의자가 ‘남들도 불행하고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는 보도를 보고 굉장히 섬뜩했다”면서 “한국 사회가 막다른 골목에 와 있다고 본다”며 말문을 열었다.

김 교수는 “국가 주도의 압축적인 근대화와 세계화 이후 진행된 신자유주의적 경제발전으로 한국 사회의 지속가능성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세계 최고의 자살률, 세계 최저인 출산율이 그 증거”라면서 “30년간 개인 안에 내면화된 산업중심주의, 돈제일주의, 도시중심주의에서 탈피, 개개인과 공동체가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게 진정한 발전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선 도시농업이나 텃밭 등을 통해 농사를 일상화하는, 재농화 전술과 공동체지원농업(CSA)이나 로컬푸드형 사회적 시장 등의 도농상생 프로그램, 먹거리를 매개로 한 식농교육 등이 필요하다는 제안이다.

그는 “점점 더 소수자가 되어버린 농민들을 정치적으로 강화하려면 도시소비자들과의 사회적 연대가 필요하다"면서 "학교급식, 공공급식, 요리프로그램, 공동체형 식당, 마을부엌 등을 활용한 식농교육을 통해 단순히 상품으로서 먹거리를 구매하는 소비자가 아니라 먹거리에 대한 권리와 책임을 갖고 농식품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실천에 참여하는 ‘먹거리 시민’을 만들자”고 강조했다.

 

농업계, 도시민과 함께하는 '열린 리더십' 필요

박은우 서울대 명예교수가 좌장을 맡아 진행한 종합토론. 사진제공=대산농촌재단
이어진 종합토론에서 패널들은 '농의 가치' 확산을 위한 다양한 제언을 쏟아냈다. 사진제공=대산농촌재단

박은우 서울대 명예교수가 좌장을 맡아 진행한 종합토론에서는 ‘농의 가치’ 확산을 위한 다양한 제언이 나왔다.

김현대 전 한겨레신문 대표이사는 “정부에서도 정치권에서도 언론에서도 농업·농촌정책은 이미 오래전부터 변방으로 소외됐다. 결과적으로 농업에 대해 잘 모르는 정부 관료, 정치인, 언론인이 농정을 이끌어가는 게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라면서 “전 국민이 도시민이 된 현실에서 농업계의 힘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는 뚜렷하다. 도시민과 함께하는 농업계의 열린 리더십을 키우는 운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태양 농산어촌교육협동조합 이사장은 “정부가 주도해 농업·농촌을 바꾸려 했던 수많은 정책사업의 실패 사례를 너무 많이 경험했다. 이제 면단위, 리단위 주민자치를 통해 주민들이 직접 정책에 참여하고 의제를 발굴해 실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민철 젊은협업농장 이사는 “농업과 농촌에 대해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는 마지막 세대가 지나가고 있다. 이제 단순하게 농업은 중요하고 농촌은 의미가 있다라는 결론적 이야기로는 사람들을 설득할 수 없을 것”이라면서 “다만 극단적인 도시화로 인해 나타나는 여러 병리적 현상을 도시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지 않겠나. 그렇다면 그 대안은 도시가 아닌 농촌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농촌은 그것을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정 이사는 “특정한 공간에서 기술교육만 열심히 받은 청년들이 온다고 농업의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고 꼬집고, “농업은 물론 마을과 농촌의 생존가능성을 동시에 고민하는 농민, 농촌 활동가의 육성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농촌지역 자체를 교육기관화 시켜내는 게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보은 마르쉐친구들 대표는 “우리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남기 위해 농촌이 존재해야 하며, 도시가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땅과 씨앗, 자연에 대한 경험과 지식을 가진 농민이 존재해야 한다”고 짚고, “지난 10년간 농부시장인 마르쉐에 참여하고 있는 작은 농부들의 삶을 통해 그 가능성을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땅. 이 대표는 “농업에 새롭게 진입한 소규모 농부들의 경우 땅과의 접근이 너무 어려워 많이 좌절한다. 우리 사회가 이에 대해 어떤 대답을 내놓을 것인지 고민해야 할 때”라고 주문했다.
 

3부 네크워킹 토크쇼에서는 대산과 인연을 맺고 '농의 가치' 확산에 일조하고 있는 6명의 사례발표가 이어졌다.  사진=대산농촌재단 제공
3부 네크워킹 토크쇼에서는 대산과 인연을 맺고 '농의 가치' 확산에 일조하고 있는 6명의 사례발표가 이어졌다.  사진=대산농촌재단 제공

3부 네트워킹 토크쇼에서는 대산농촌재단의 다양한 지원사업을 받아 각자의 장에서 ‘농의 가치’ 확산에 일조하고 있는 6인의 사례가 소개됐다.

▶강원 영월에서 토종 다래를 키우고 이는 곽미옥 샘말농원 대표는 2018년 토동다래 가공제품 및 분말소재 개발‘로 대산농촌재단 농업실용연구과제 지원을 받았다. 지역 농민들과 ’영월 토종다래 연구회‘를 만들어 다래 재배와 가공기술을 연구하는 등 활발한 협력활동을 하고 있다.

▶전남 담양 두리농원의 김두리 사무국장은 제26회 대산농촌상 수상자인 두리농원 김상식 대표의 맏딸로 현재 농장교육 및 운영 책임을 맡고 있다. 두리농원은 대산농촌재단의 ‘나를 바꾸는 밥상’, ‘청촌맛여행’ 등 소비자대상 사업의 운영기관으로, 도시민에게 농업과 농촌의 다원적 가치를 알리는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원혜덕 평화나무농장 대표는 2017년 ‘상생·협력으로 지속가능한 농업-호주, 뉴질랜드’ 연수자로 대산농촌재단과 인연을 맺었다. 포천에서 남편(김준권)과 함께 평화나무농장을 운영한다. 유기농업의 최고봉으로 인정받는 생명역동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CSA(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로 소비자와 연대하며 농의 가치를 확산하고 있다.

▶이나라 FAO한국협력연락사무소 부소장은 대산장학생 13기다. 건국대와 예일대를 졸업하고, 미국 NGO를 거쳐 산림청에서 산림 전용 및 황폐화 방지사업의 전문관으로 근무했다. 2020년부터 유엔식량농업기구(FAO) 한국 협력연락사무소 부소장으로서 한국의 경험과 기술을 개도국과 공유하는 일을 지원하고 있다.

▶이동현 농업회사법인 (주)미실란 대표는 제24회 대산농촌상 농업기술 부문을 수상했다. 2005년부터 전남 곡성에서 농업회사법인 (주)미실란을 운영하고 있다. 2019년 UN 식량농업기구(FAO) 모범농민 표창을 받았다. 발아현미와 발아현미가공품을 생산하면서 미실란을 복합문화 공간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생태책방 ‘들녘의 마음’ 운영과 ‘작은들녘음악회’ 등 지역과 농촌을 가치를 높이는 다양한 문화활동도 꾸준히 펼치고 있다.

▶조형진 전주MBC PD는 대산장학생 14기, 대산농업전문언론장학생 1기다. 전주MBC PD로 13년째 일하고 있다. 지역MBC 16개사가 공동기획하는 <농업이 미래다>에서 농업교육편을 시작으로 다양한 농업 관련 프로그램을 꾸준히 제작하고 있다. 2020년 농식품부와 공동으로 <두근두근 팜팜>을 제작했고, 2022년부터 현재까지 <마녀들의 포레스트>로 청년 여성농민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토크쇼 진행을 맡은 신수경 대산농촌재단 사무국장은 “대산 선생의 어록 중에 ‘일하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일한다’는 말이 있는데, 여러분들이야말로 그 말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분들이 아닌가 생각한다”면서 “대산농촌재단이 도시와 농촌과의 거리를 좁히고, 농의 가치를 확산하는 일에 나설 수 있는 것은 바로 현장을 지키고 계신 여러분 덕분이다.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해 더 넓게, 더 많이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김선아 기자 kimsa@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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