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석준 상명대 교수

[한국농어민신문] 

“안팔리는 냉장고 재고만 가져다가 비싸게 팔고 있는 대리점이 있어요. 무슨 일인지 조사해 주세요.”

국내 대기업 냉장고 부문 컨설팅을 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가전제품은 유행이 빨라 재고 상품은 잘 안팔린다. 그래서 재고 상품은 할인을 많이 해서라도 어떻게든 판매하려고 한다. 그런데 한 대리점이 신규 상품은 안 팔고, 유행지난 재고 냉장고만 모아서 비싸게 판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남들은 한 달에 10대도 못 파는 냉장고를 그 대리점은 몇 백대씩 팔고 있었다. 본사의 요청으로 해당업체 인터뷰를 갔다. 그리고 현실에 적용되는 판매의 심리학 원리를 하나 확인했다.

그 당시 유행이 지난 냉장고들은 거의 판매되지 않았다. 그것은 프레온 가스의 사용 중단 규제 때문이었다. 프레온 가스는 기존에 냉장고 등에 많이 쓰였던 냉매다. 오존층에 구멍을 내는 문제가 생겨 몬트리올 의정서에 의해 10년 전 쯤 전 세계적으로 생산과 판매가 중단되었다. 당연히 국내 가전회사들은 프레온가스를 대체할 냉매를 개발했고, 이 새로운 냉매를 활용한 냉장고를 환경친화적 냉장고라고 광고했다. 그래서 소비자들은 광고를 보고 프레온 가스를 쓰지 않는 새로운 환경친화적 냉장고를 대부분 선택했다. 그리고 기존에 프레온 가스를 사용하던 기존 냉장고는 철저히 외면당했다. 혹시 고장이라도 나면 프레온 가스를 재충전해야 할 수도 있는데 이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프레온 가스의 생산과 판매가 중단되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많은 대리점들이 안 팔린 프레온 가스 냉장고 재고로 머리가 아팠다.

하지만 이 대리점은 달랐다. 인터뷰를 가보니 그 대리점은 고객들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프레온 가스 냉장고가 훨씬 좋습니다. 왜 프레온 가스를 지금까지 썼겠습니까? 프레온 가스가 냉장도 잘되고, 전기도 아껴줍니다’, ‘혹시 냉장고에 프레온 가스 재충전해본 적 있으세요? 프레온 가스 부분은 고장나지 않습니다’, ‘프레온 가스를 사용하는 냉장고 이제 몇 대 안남았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기회입니다’를 외쳤다.

그 대리점 소비자들은 설득 당했다. 첫째, 대체라는 것은 대부분 원래의 것보다 좋지 않다. 즉, 프레온 가스가 더 좋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둘째, 대부분의 고객들은 냉장고가 고장나 본 경험이 없었다. 냉장고에서 프레온 가스가 새면 재충전이 안된다는 불안은 의미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지막으로 이런 효율적인 냉장고를 이제는 영영 살 수 없다는 것이 끌렸던 것 같다. 이것을 심리적으로는 ‘희귀성의 법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희귀한 것, 두 번 다시 살 수 없는 것임을 인식하면 바싸게라도 기꺼이, 더 많이 구매한다는 것이다. 판매 전략에서 흔히 효과적으로 사용되는 이론이다.

요즘 일본의 방사능 오염 처리수 방류로 세상이 떠들썩하다. 때문에 우리 어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물론 일부 건어물과 소금 사재기가 일어나고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수산물들은 수요도 가격도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사태가 얼마나 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 어민들은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지금 이 ‘희귀성의 법칙’을 활용해보는 것은 어떨까?

방사능 오염 처리수가 한국에 도달할 때까지 최소한 6개월 이상은 걸린다고 한다. 그것은 앞으로 방사능 오염 처리수와 관련 없이 수산물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이 6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는 뜻이 아닐까? 바로 지금 먹는 계절 수산물이 인생의 마지막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이라고 하면 희귀성의 법칙에 따라 비싸게 판매해도 더 많은 소비자들이 사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필자도 어제 좀 고급 어종의 회를 먹으러 갔다왔다. 마지막 먹게되는 회라고 하니, 수산물이긴 하지만 같이 가시는 분도 쉽게 이해를 해주셨던 것 같다.

추석이 코앞이다. 올 추석엔 김영란법이 개정되어 농축수산물이 30만원까지 선물이 가능해졌다. 시름이 깊은 수산물 관계자 분들께 올 추석에는 가격을 더 높여도 판매가 원활한 “희귀성의 법칙”을 활용한 판매 전략을 제안해 보고 싶다. 이 전략을 전면적으로 활용한다면 앞으로 6개월은 아마 더 비싼 가격에 더 많이 판매할 수 있을 것이다. 6개월 이후에는 어떻게 하냐고? 그건 그때 또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삶이 늘 그래왔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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