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인 소장(마을연구소 일소공도)

[한국농어민신문] 

지자체 행정개혁 유도할 시그널 중요
민간주체 육성 위해 체계적 전략 수립
주민자치회의 가능성에 더 주목해야

올해 들어 농촌정책 분야에서 두 가지 중요한 법령이 통과되었다. ‘농촌공간 재구조화 및 재생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농촌공간계획법)’과 ‘농촌 지역 공동체 기반 경제·사회 서비스 활성화에 관한 법률(이하 농촌사회서비스법)’이 그것이다. 법률 제정 취지로 전자는 농촌의 난개발을 예방하면서 농촌다움을 복원하자는 것이고, 후자는 농촌에 부족한 경제·사회 서비스를 주민참여와 공동체의 연대·협력으로 극복하자는 것이라 설명한다. 지금은 시행령 제정 작업을 진행 중이고 내년 3월과 8월이면 각각 시행될 것이다.

필자는 누구보다 법률 제정의 취지가 잘 실현되기를 기대하고 이미 본 지면을 통해 여러 차례 의견을 제시한 적이 있다. “농촌의 생활서비스 제공,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2023.7.4.), “농촌공간계획법의 마을보호지구와 주민협정 제도가 성공하려면”(2023.4.14.), “농촌공간계획법의 실효성, 도입취지 달성하려면”(2023.3.17.), “농촌공간계획법 법률 제정 논의에 바란다”(2022.11.11.) 등이다. 하지만 지자체 현장을 다니며 공무원이나 활동가를 만나보면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제정될 때까지 모두 ‘손 놓고’ 기다리는 상황이다. 아니면 어떤 새로운 공모사업이 등장할지 기대하는, 혹은 우려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정도다. 전문가들의 학술세미나에서 일부 토론이 되고 있다는 소문이 들리지만 논쟁 자체는 거의 없어 보인다.

새로운 두 법률이 현장에서 실효성을 가지고 효과를 발휘하자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토론과 논쟁이 필요하다. 특히 지자체 현장에 있는 공무원과 활동가, 주민 목소리를 더 많이 담으려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책임도 함께 짊어지고 문제 해결을 위해 서로 협력할 수 있다.

항상 법률 제정은 어렵지 않게 이루어지지만 현장 실정과 맞지 않게 몇 가지 공모사업을 시행하기 위한 제도적 근거에 그치는 경향이었다. 또 법률에 명시된 기본계획(법정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용역기관이 동원되고, 보고서만 남발되는 폐단도 다시 반복될 수 있다. 주민 목소리는 일회성의 공청회나 위원회에서 형식적으로 짧게 다루어질 뿐이었다. 이런 뻔해 보이는 시나리오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은 정말 없는 것일까? 지금까지와는 다른, 무언가 새로운 제도적 전제장치가 마련되어야 이번 법률도 제정 취지를 구현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두 법령의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적어도 다음과 같은 점은 공통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정책의 전달체계 측면에서 행정의 담당부서 상황을 잘 반영해야 한다. 현장에서 민관협치가 잘 작동되기 위해서는 행정의 정책 책임성과 전문성이 꼭 필요하다. 현재 농식품부 농촌정책국에 배치된 4개 과, 1개 팀 업무가 기존 방식대로 광역과 기초 지자체로 전달되면 처음부터 협력구조가 가능하지 않게 된다. 당장 지자체마다 두 법률의 담당부서가 다르고, 그래서 협력 자체를 기대하기 어렵다. 거의 예외 없이 농촌공간계획법은 주무 팀도 아닌 하드웨어 사업부서가, 농촌사회서비스법은 주무 팀이기는 하나 사업 가짓수가 지나치게 많은 취합부서가 담당한다.

여기에 공무원 순환보직제란 고질적인 문제까지 고려하면 정책 전문성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법정계획이라 의무적으로 수립해야 하는 기본계획도 예전 방식대로 흘러갈 것이다. 물론 이런 부분의 개선은 하나같이 쉽지 않다는 것을 오랫동안 충분히 경험하고 있다. 하지만 농식품부 차원에서 ‘정책적 신호’를 분명히 발신하지 않고 “지자체 스스로 결정할 일”이라 내버려두면 법률 제정 취지 자체가 사라진다는 점도 분명하다.

둘째, 민간주체 육성에 훨씬 더 강력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농촌재생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민간일 수밖에 없고, 행정은 이를 지원하는 역할이 기본이다. 그래서 기존의 집합식 교육 프로그램 방식을 개혁하여 실천학습(액션러닝) 관점으로 과감하게 전환해야 한다. 농촌신활력플러스사업에서 축적해온 ‘액션그룹 발굴 및 육성 프로세스’에서 배울 점은 아주 많다. 이를 통해 전국 모든 읍면마다 농촌정책의 비영리 전문법인이 적어도 하나씩은 설립되어야 한다.

또 시군마다 행정 파트너가 될 수 있는 네트워크 법인도 하나 이상 설립되어야 중간지원조직의 민간위탁도 가능하다. 작지만 지자체에 밀착된 연구소도 하나씩은 있어야 각종 법정계획도 역량강화사업도 지역으로 선순환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두 법령에서 명시한 ‘지원기관’도 당연히 기존의 중간지원조직과 통합형으로 설치해야 효과적이다. 이처럼 민간이 성장하는 과정에 더 많은 기회가 주어져야 하고, 이런 방향의 체계적인 전략이 꼭 반영되어야 한다.

셋째, 정책 칸막이 극복과 주민주도성을 기대하자면 현재의 읍면 주민자치회에 크게 주목해야 한다. 농식품부는 행안부 사업으로만 치부하는 경향인데, 적어도 읍면 단위의 주민자치회는 농촌정책과 바로 직결되는 조직이다. 농촌의 마을과 마을이 모여 읍과 면을 구성하는 것이고, 읍과 면이 법령에 명시된 농촌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기존처럼 정책사업별로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사업완료 후에 해산되는 방식을 반복한다면 주민주도성 자체를 기대하기 어렵다. 자치분권이 시대적 흐름이고, ‘주민 주도, 상향식’을 실질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주민자치회란 실체를 농식품부도 인정해야 한다. 전국의 주민자치회가 주도하는 의제발굴과 주민총회 결과만 보더라도 두 법률이 지향하는 취지의 내용을 모두 담고 있다.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지방자치법에 제도적 근거가 명시되는 법정단체가 될 것이 명확하고, 이런 주민조직의 성장과정을 체계적으로 지원해야 두 법률이 지향하는 목적도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

지면 부족으로 세 가지만 제안해보는데, 이런 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으면 예전처럼 몇 가지 공모사업을 시행하는 것에 그치게 될 우려가 크다. 농촌재생이란 절박한 과제 앞에서 정책 시스템 자체를 바꾸어야 두 법률이 지향하는 근본 가치도 실현된다. 그런 절박감이 없이 기존처럼 관행을 반복한다면 실패하는 시나리오가 명백하게 그려지는 셈이다. 시행령 제정과정에서 공론장을 통해 토론과 논쟁이 활성화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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