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반발 커지는 배추 비축물량 방출

[한국농어민신문 우정수·고성진 기자]

고랭지배추 주산지의 출하량이 감소하면서 정부가 비축용 배추를 가락시장으로 방출하고 있다. 그러나 배추 수급에 문제가 없는데도 비축용 배추 방출이 이어지자 배추 출하자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고랭지배추 주산지의 출하량이 감소하면서 정부가 비축용 배추를 가락시장으로 방출하고 있다. 그러나 배추 수급에 문제가 없는데도 비축용 배추 방출이 이어지자 배추 출하자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정부가 농가들 다 잡겠다는 거지, 이게 뭡니까.”

정부가 수급 및 가격안정을 위해 배추 비축물량을 쏟아내기 시작하면서 배추 생산 농가와 산지유통인 등 출하자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가격이 높거나 수요 대비 물량이 부족한 시기에 방출하는 것은 일정 부분 이해할 수 있지만 기준 없이 밀어내기식으로 도매시장에 반입시키는 것은 시장 혼란과 출하자들의 어려움만 가중시킨다는 게 이들의 지적이다.

도매가 급등 맞나 예상했던 ‘출하감소’로 가격 올랐지만 비축물량 방출 후 내림세

최근 주요 일간지에서 배추 도매가격이 2만 원(10kg 한 망, 상품 기준)을 넘어서며 한 달 전보다 2배 이상 급등해 가계 부담이 커졌다는 보도를 연이어 내놓고 있다. 과연 그럴까?

가락동 농수산물 도매시장에서 고랭지배추 가격은 7월 내내 1만 원을 넘기 힘들었다. 7월 28일 이전까지 배추가격이 1만 원 이상이었던 날은 단 4일. 배춧값이 오르기 시작한 7월 28일 이후 시세를 모두 합한 월평균 가격이 8097원이었다. 이는 ‘농산물 수급조절 매뉴얼’의 안정기(8413원 미만)에 해당하는 가격이다. 7월 8일의 경우 오히려 수급 매뉴얼 상 시장격리를 고려해야 하는 가격 하락기의 ‘심각 단계(3686원 이하)’인 3233원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이랬던 배추가격이 7월 28일 1만3992원을 기록한 이후 이틀을 제외하고는 8월 10일까지 1만3000원대 이상의 상승세가 이어졌다. 7월 말부터 강원도 고랭지배추 주산지의 출하량이 줄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7월 말부터 8월 중순까지 고랭지배추 출하량 감소는 도매시장과 산지에서도 어느 정도 예상했던 부분이다. 주요 산지 물량이 추석을 앞둔 8월 말과 9월 상·중순에 맞춰져 있어 상대적으로 8월 중순까지는 출하량이 감소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관측기관에서도 올해 추석 성수기인 9월 상·중순에 출하량이 집중돼 상대적으로 8월 출하가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급작스럽게 도매시장 반입량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자료에 따르면 실제로 7월 말 이전 300톤 중반에서 400톤 중반을 오가던 가락시장 1일 반입 물량은 7월 26일 이후엔 평균 290톤 수준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출하량 감소에 대비해 온 정부가 8월 3일부터 하루 100톤 이상 배추 비축물량을 방출하고, 7일 이후엔 하루 평균 200톤 넘게 내놓으면서 가락시장 배추 반입량은 평균 474톤까지 증가했다.

정부의 비축물량 방출에 7월 말부터 상승곡선을 그리던 배추가격도 내림세로 돌아섰다. 한반도가 6호 태풍 ‘카눈’의 영향권에 들어 출하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8월 9일과 10일 1만7640원, 2만633원을 기록했던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1만1000원대를 넘지 못했다. 이 이틀을 포함한 8월 평균가격은 17일 기준, 1만3590원이다. 한 가락시장 관계자는 “가격이 오르기만 하면 언론에서 금 배추 얘기를 하는데, 언론 보도처럼 그렇게 심각한 상황은 아니다”라며 “언론 보도 때문에 배추 소비가 줄지는 않을까 오히려 걱정된다”라고 언급했다.

기준 없는 비축물량 방출 수급조절 매뉴얼상 가격 ‘경계단계’ 아닌데도 방출 

정부는 여름에 소비가 이뤄지는 고랭지배추 공급 부족에 대비하기 위해 봄배추를 비축하고 있다. 올해는 특히 지난해와 같은 여름 배추 공급량 부족에 대비하기 위해 역대 최대 규모인 봄배추 1만 톤을 비축했다.

문제는 정부가 비축한 배추 방출이 기준 없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비축 농산물을 방출할 때 가이드 역할을 하는 것이 정부가 마련한 농산물 수급조절 매뉴얼로, 가격 상승 시 ‘경계단계’에 들어가면 비축물량을 시장에 공급하도록 하고 있다. 8월 기준, 경계단계의 배추 도매가격은 1만3090원을 넘어서면서부터다. 이 시기 가격 안정을 위한 비축물량 방출에 대해서는 배추 생산 농가와 산지유통인 등 출하자들도 어느 정도 이해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최근에는 매뉴얼 상 경계단계가 아닌데도 기준 없이 비축물량 방출이 이뤄져 출하자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지난 7월, 정부가 가락시장으로 배추 비축물량을 방출한 횟수는 모두 12회. 반입량은 18톤 수준에서 최대 90톤 정도다. 이 중에서 경계단계 이상으로 가격이 형성된 시기에 방출이 이뤄진 건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8월도 마찬가지. 배추 도매가격이 매뉴얼 상 주의 또는 안정단계인 7559원~1만1586원까지 떨어진 8월 11일 이후에도 정부는 비축물량을 300톤 가까이 쏟아냈다.

강원도 정선의 배추 생산 농가는 “가격이 많이 오른 시기 비축물량 방출은 그래도 납득 할 수 있지만, 올해는 가격 상관없이 시장에 내보내는 것 같다”라며 “배추가격이 아니라 정부가 농민들을 다 잡겠다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정부는 계속되는 배추 비축물량 방출에 대해 참고자료를 통해 산지 출하량 감소에 따른 조치로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 부분도 유통 현장 분위기와는 상당한 온도 차가 있다. 산지 출하량이 줄긴 했지만, 배추 소비가 부진해 선제 대응할 만큼 수급에 어려움이 있는 건 아니라는 게 유통 현장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가장 큰 배추 소비처인 김치공장 수요 감소가 그 이유다. 한 가락시장 경매사는 “지난해 배추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던 김치공장에서 올해는 봄배추를 많이 저장해 뒀고, 이 봄배추가 공장에 아직 많이 남아있어 김치공장 입장에선 저장해 놓은 배추부터 소진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출하량 감소보다는 상품 배추 물량 비중이 낮은 것이 가격 상승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상품성 떨어지는 비축용 배추 반복되는 ‘품위 논란’가격·소비 부정적 영향 우려

품질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지적 받고 있는 비축용 배추.
품질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지적 받고 있는 비축용 배추.

정부 비축물량이 풀릴 때마다 반복되는 품위 논란은 이번에도 재현되고 있다. 가락시장에 방출하는 비축 배추는 정부가 지난 6월부터 저장창고에 보관해 온 것으로, 품질이 괜찮은 상품 물량도 있지만 일부에 불과하고 상당 비중이 중·하품 위주라는 게 방출 물량을 접한 시장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중·하품 중에서도 하품 비중이 많은 편이라는 설명이다.

중도매인 사이에서 일부 방출 배추의 품위가 기준에 못 미칠 정도로 좋지 않다는 얘기가 7월 중순 무렵 들리다 잦아들었는데, 최근 다시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8월 13일 가락시장에 들어온 방출 물량 중 일부는 한눈에 봐도 현저히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악취가 진동하고 병해충에 감염된 상태처럼 보여, 경매도 진행하지 않은 채 팔레트에 실린 그대로 경매장 한쪽에 버려져 있었다는 것이다.

배추 산지유통인 단체인 한국농업유통법인중앙연합회 이광형 사무총장은 “품질이 크게 떨어지는 비축물량, ‘썩은 배추’가 시장에 반입됐다는 소식이 충격적이다. ‘썩은 배추’가 유통될 경우 도매시장 가격이나 소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면서 “시장에 반입됐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저장 관리 소홀 또는 창고 출고 시 검수 여부 등의 지적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고 비판했다.

활력 잃어가는 산지 분위기 “생산비도 못건지는데농사 계속 지을 수 있겠나”

정부의 무차별적인 비축용 배추 방출에 도매시세가 꺾이면서 산지 분위기도 가라앉고 있다. 각종 병해충과 폭염에 망가진 배추가 많았던데다, 7월 말 이전에는 도매시세까지 낮아 생산비도 건지기 힘들었던 출하자 입장에선 가격 상승기가 손해를 만회할 기회였다. 하지만 생각보다 도매시세가 빨리 꺾이면서 손실을 보전할 수 있는 기간이 줄었다. 정선의 배추 농가는 “너무 과한 가격이 아니라면 일정 수준에는 정부 개입 없이 시장에 맡겨 둬야 한다”며 “그동안 폭염에 배추가 많이 망가져 5톤 차량 두 차 출하해야 할 배추밭에서 한 차밖에 출하하지 못했는데, 정부가 이렇게 무분별하게 배추를 방출하면 농민들은 더는 배추 농사를 이어갈 수 없게 된다”고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 문제라는 이야기도 들려오고 있다. 강원도 강릉, 정선 등 고랭지배추 주산지 생산량의 절반 이상이 추석 성수기인 8월 말과 9월 상·중순에 맞춰 있어 8월 말부터 출하량이 크게 늘어나는데, 현 소비 분위기로는 공급 과잉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강릉농협 관계자는 “본격적인 추석 성수기 물량 출하를 앞두고 시장 분위기가 좋지 않아 걱정”이라며 “정부가 부족한 배추 공급 문제 해결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성수기 물량 해소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당부했다.

우정수·고성진 기자 woojs@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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