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우정수 기자] 

“여기서 차에 탈 수 있는 건 40% 정도밖에 안 될 겁니다.”

지난 7월 중순경 강원도 고랭지배추(여름배추) 생산 현장에서 만났던 산지유통인과 나눈 대화의 일부다. 고랭지배추 산지에선 배추가 도매시장으로 출하하는 것을 두고 흔히 ‘차에 탄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단순히 현장에서 사용하는 표현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여기에는 사실 여러 의미가 담겨 있다.

고랭지배추는 노지채소 중에서도 재배가 상당히 어려운 품목으로 꼽힌다. 여름철 기온이 상대적으로 낮은 해발 600m 이상 강원도 산악지대에서 주로 생산하는 고랭지배추는 산악지대 특성상 재배환경 자체가 열악하고, 무름병과 같은 각종 병해에 노출돼 있다. 또 태풍도 견뎌내야 하고 태풍이 지나간 후에는 고온과 싸워야 하는 게 고랭지 배추다. 멀쩡하던 배추가 하루, 이틀 사이 폭염을 견디지 못해 망가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몇 년 전부터는 ‘고랭지’라는 의미가 무색하게 온도계가 섭씨 35도 이상을 가리키는 날이 많아졌다는 게 고랭지배추 생산 농가들의 이야기다. 여기에 수십 년 동안 이어진 배추 농사로 인해 나타나는 연작피해도 재배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변수다.

산지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 농가나 산지유통인들이 재배하는 배추 밭에서 수확까지 무사히 이뤄지는 배추 양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배추가 도매시장으로 향하는 차량에 적재됐다는 것은 이 어려운 과정을 모두 이겨내고 출하 길에 오른다는 의미다. 그만큼 도매시장에 출하할 수 있는 상품성 있는 배추로 만들기까지가 어렵고 힘들다.

최근 들어 방송사부터 시작해 주요 일간지까지 배추가격에 대한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장마와 폭염으로 배추 도매가격이 두 배 이상 올라 서민들의 시름이 깊어졌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김치가 빠질 수 없는 한국사람 밥상에서 배추가격이 크게 올랐다는 것은 당연히 부담일 수밖에 없다. 다만, 보도 내용이 ‘급등한 가격’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 안타깝다.

특별한 외부 요인이 없다면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 도매시장 가격이 올랐다는 건 산지에서 차량에 태울 수 있는 배추가 부족해져서 일거다. 농가 입장에서 생각해 봤을 때 산지에서 전반적으로 배추가 나오지 않는 시기가 아니라면 태풍, 폭염, 각종 병해충 등으로 작황이 부진해져 손해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

언론 보도에선 가격 상승의 원인으로 하나같이 장마, 폭염으로 인한 농작물 피해를 언급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정작 피해 당사자인 농민들의 어려움을 이야기한 대목은 단 한 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농산물 가격이 오를 때마다 장바구니 물가 상승의 주범으로 내몰리고 있다. 농산물 가격 상승에 대해 보도할 때, 농민들의 속사정을 조금이라도 이야기해주길 바라는 건 너무 과한 친절함을 기대하는 것일까?

우정수 유통팀 기자 woojs@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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