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이평진 기자] 

재해보험 손해평가 매뉴얼상
사과는 수확 전 착과피해조사 후
보장률 결정 이뤄져 ‘농가 불만’

병든 과실 따낼 수도 없고
수개월 기다리다 수확량 뚝
“피해조사 서둘러야” 요구 빗발

경북 영주시 봉현면에서 사과농사를 하는 박 모씨는 지난 6월 우박피해를 입었다. 이에 7월초 농협을 통해 피해조사를 서둘러 달라는 요청을 했다. 장마가 계속되면서 탄저병이 발생했고 확산세가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험회사는 차일피일 피해조사를 미루더니 지난 8월10일이나 돼서야 조사를 마쳤다. 이로 인해 박 씨는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 탄저가 확산돼 홍로는 수확할 물량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우박에 맞으면 탄저가 금방 확산된다. 그래서 피해조사를 일찍 끝내면 병든 과실은 따내고 멀쩡한 과실을 수확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수확할 게 하나도 없다. 피해조사가 늦어져서 발생한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에 따르면 봉현면에서 우박피해를 입은 농가는 500호가 넘는다고 한다. 다른 농가들도 박 씨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한다. 이같은 문제는 홍로나 시나노골드처럼 탄저병에 취약한 품종에서 주로 나타나고 있다.

충북 충주시 동량면과 용탄동 등 우박피해가 컸던 곳에서도 농민들의 불만이 이어지고 있다. 동량면 손동리 강 모씨는 “우박피해가 났으면 빨리 피해조사를 하면 되는데 늦어지다 보니까 소독은 소독대로 하고 피해과를 따낼 수도 없고 답답한 상황”이라며 “농민들 불만이 엄청 크다”고 말했다.

충주지역은 우박 피해 조사가 지난 7일부터 시작됐다. 그나마 농가와 농협의 요청이 있었기에 앞당겨진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홍로의 경우 9월에나 피해조사가 시작됐을 것이라고 한다.

이같은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농작물재해보험 손해평가 매뉴얼 때문이다. 매뉴얼에 따르면 사과의 우박 피해는 ‘수확 전 착과피해조사’를 통해 보장률이 결정된다. 즉 수확을 바로 앞둔 시점의 착과피해조사를 통해 보험금 지급 규모가 결정되는 것이다. 이러다보니 우박피해가 6월이나 7월에 발생해도 피해조사는 수확 직전까지 미뤄지게 되는 것이다. 이 매뉴얼대로라면 홍로는 통상 9월, 시나노골드나 후지는 10월이나 돼야 피해조사를 하게 된다. 실제 피해조사를 마친 농가의 경우 홍로는 조사가 완료됐으나 후지는 조사를 하지 않았다. 이처럼 피해조사가 수확 직전에 실행되면서 농가는 병이 발생해도 과실을 따내지 못하고 마냥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 NH손해보험 담당자는 “우박피해 이후 일소나 태풍피해가 또 발생할 수 있다. 수확 전 착과피해조사를 하는 이유다. 조사를 일찍 끝내면 이후 발생하는 피해에 대해서는 보상이 되지 않는다”며 “현행 피해조사 방식은 농가가 다른 재해까지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올해는 우박피해가 워낙 컸고 탄저병 발생도 심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며 “상황을 고려해 농가 요청이 있을 경우 피해조사를 앞당기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충북원예농협 보험 담당자는 “우박피해는 피해율이나 정도를 발생 직후 바로 확인할 수 있다”며 “착과 피해조사를 앞당기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주=이평진 기자 leep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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