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광 전남 무안군 현경면장

[한국농어민신문] 

‘한 어깨에 두 지게 못 진다’라는 말이 있다. 지난달 27일 저녁 식사시간 무렵부터 자정까지 퍼부은 국지성 호우 피해에 대한 응급 복구도 끝내지 못하고 있는데, 얼마나 많은 비가 또 내릴는지! 이런 메시지에 지레 놀란 노인네들의 성화에 전화기에 불이 난다.

글쎄다. 이런 전화만 받고 민원을 접수하는 직원이 따로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 갈수록 왜소화된 일선 행정조직 내에 재난 대응과 토목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은 많아야 두 명이다.

재해 잦은데 직원 턱없이 부족

자연재해가 잦은 여름철이면 사나흘에 한 번꼴로 비상근무를 해야 하고, 기상특보라도 발효되면 사무실 책상 위에 머리를 눕힌 채 쪽잠을 청하는 모습을 보면 퇴근길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조금만 더 힘내자면서 축 늘어뜨린 어깨를 다독거려 시뻘건 황토가 덮친 들판을 헤집고 다니다 보면 이런 고충이나 속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민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만 높이더라는 것이다.

하소연을 쫓아 현장에 나가보면 허탈감에 빠질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이녁 논밭에 토사가 밀려와 농경지가 매몰되고, 빗물에 유실이 되었으면 자기 재산이니 스스로 알아서 대책을 세워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물론, 나는 이리 야박하거나 매몰차지 못해 이런 말을 차마 내뱉질 못한다.

그러면서 얘기를 듣다 보니 참으로 가관이다. 그렇지만, 답은 하나이다. 어떻게 하겠다는 말을 해주고 되돌아서 나오는데 연락이 온다. “누구누구 되시죠? 어디 어디에 사시는 분이 우리 부모님이신데, 오늘 우리 집에 다녀가셨다고요?” 이렇게 객지에 나가 있는 자식들까지 동원해서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듯 닦달을 하는 것이다. 

사실 폭우나 태풍 뒤끝 말목이나 PP마대 등 수방자재를 가지러 온 사람을 보질 못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지방자치제 시행 이전에는 자연재해가 있고 나면 그래도 울력도 하고, 더 큰 피해에 대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재해 뒤끝 이런 일들은 오롯이 행정의 몫이 되었다.

대부분이 노인…관이 복구 나서야

며칠 전, 내 또래의 남성 한 분이 사무실로 찾아왔다. 모친이 혼자 사는 집 뒤 담벼락에 덮친 토사와 대문 앞에 밀려온 황토와 마사는 (면사무소에서) 걷어내 줬는데, 마당 안으로 흘러든 흙더미와 남새밭을 덮고 있는 토사는 그대로 있다는 노인네의 성화에 어렵게 시간을 내서 (서울에서) 내려와 삽자루를 들었는데 흙이 굳어서 삽날이 들어가질 않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미니포크레인이라도 동원해 혼자 사시는 노인네의 걱정거리를 해소해 줬으면 하는 것이다. 이게 뭔 소린가? 하면서 얘기를 듣고 보니 무리는 아니었다. 위쪽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 잘못이지! 그 분이 잘못한 것이 아니니까. 그래, 장마 기간이고 큰비가 올 거라는 것을 알았으면 어느 정도 대비는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농사를 짓는 위치에서 이녁 논밭의 흙들이 빗물에 씻겨 내려가 남에게 피해를 줄 것 같다 싶으면 최소한의 조치는 취해야 하고, 피해를 줬다면 도의적인 책임은 다해야 한데도 그렇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런 모습이 불쾌해서 찾아왔다는 것이다.

행정을 하는 사람으로서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농촌인구의 노령화로 60~70대 노인들이 농촌 인구의 대부분이다. 응급복구이건 항구복구이건 피해에 대해서는 관(행정)에서 나서 복구를 하고, 사유시설이라면 소요된 비용을 부담하게 하면 어떨까?

귀책 가려 원인자에 비용 청구를

또 위쪽의 농경지를 경작하는 사람이 자기 책임을 다하지 못해 흘러내린 토사로 인해 아랫쪽에 있는 농경지나 가옥에 피해를 줬다면 우선 복구를 하고 귀책 정도를 가려서 원인자에게 비용을 청구하게 하자는 것이다.

요즘 장비를 임차해서 응급복구 작업을 하고 있지만, 그 끝이 보이질 않는다. 그러면서 15~16년 전 황토와 마사가 대부분인 이 지역의 밭 토양의 침식과 유실방지를 위해 했던 고민을 다시 한다.

농지의 대구획화와 농기계의 대형화로 농작업의 효율성만을 추구한 나머지 없애버린 논 밭둑을 다시 살리고, 제초제 사용을 근절토록 하는 등 해야 할 일이 많다. 그러면서 느끼는 것은 금년 장마는 참 비가 많다는 것이다. ‘극한호우’라는 단어 하나가 새로 만들어졌으니 말이다.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