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기후위기로 인한 심각한 식량위기가 언제 닥쳐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리고 이미 상황이 닥치면 때는 늦는다. 지금 당장이라도 국가정책의 최우선순위를 농업, 농촌, 농민에 맞춰도 모자랄 판이다.  

ㅣ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폭우 등 이상기후로 인해 농민들의 시름이 깊다. 이번 집중호우로 인해서만, 여의도 면적 122배에 달하는 농지 3만 5000ha 이상이 침수와 낙과 피해를 입었을 정도이다. 게다가 산사태와 산불 등의 재해도 날로 심각해져가고 있다. 그로 인한 피해도 농ㆍ산촌에 집중되고 있다.

이는 대한민국만이 겪는 문제가 아니다. 전세계가 날로 심각해지는 이상기후를 겪고 있다. 폭염, 폭우, 대형산불 등을 겪는 나라가 한둘이 아니다. 이런 이상기후는 당연히 농업에도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이런 이상기후가 앞으로 더 심해질 것이다. 지금 당장 인류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대폭 줄인다고 해도, 지구의 온실가스 농도는 일정 수준까지 더 올라갈 수밖에 없다. 이미 배출된 온실가스량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상황을 보면,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2년 에너지연소와 산업공정에서 발생한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은 368억톤을 넘어서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전년 대비 0.9% 증가했다. 유엔 차원에서는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45%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인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지만,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표현을 옮기면, ‘지옥으로 가는 고속도로에서 가속페달을 밟고 있는’ 형국이다.

그런데 세계인구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2022년 80억명을 돌파했다. 대한민국은 낮은 출산율을 보이고 있지만, 지구의 다른 곳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유엔에 따르면 세계인구는 2037년 90억명을 돌파할 것이라고 한다.

기후위기로 인한 이상기후가 심각해질수록 농업생산의 불안정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인구는 증가하니, 당연히 중ㆍ장기적으로 세계 식량 수급의 불안정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전쟁과 분쟁까지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러시아는 최근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 거점인 오데사 항구에 공습을 가했다. 그러자 국제 밀 선물 시세가 8% 이상 급등했다. 문제는 현재의 국제정세로 볼 때, 이런 전쟁과 분쟁이 앞으로 더 잦아지고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정도 상황이면, 정부 전체가 나서서 식량주권이든 식량안보든 걱정하고 대책을 수립해도 모자랄 지경이다. 곡물자급률이 20.9%, 식량자급률이 44.4%(2021년기준)에 불과한 국가에서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그런데 정부나 정치권에서 그런 논의는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노력하고 있다고 변명할지 모르겠다. 작년 12월에도 정부는 ‘중장기 식량안보 강화방안’을 발표하면서 2027년까지 식량자급률을 55.5%로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은 탁상공론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에도 정부는 숱하게 식량자급률과 곡물자급률을 올리겠다고 발표해왔지만, 자급률은 계속 하락해 왔기 때문이다. 이런 추세를 반전시키려면 범정부적으로 획기적인 의지를 모아서 정책을 세워도 모자랄 판이다. 지금의 상황은 단지 농림축산식품부만의 의지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정책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식량자급률과 곡물자급률을 올리려면, 농지부터 보전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계속 개발사업을 벌이고 있고, 그로 인해 농지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 정부는 150만㏊ 수준의 농지면적을 유지하도록 노력한다고 하지만, 과연 그것조차 가능할지 의문이다. 연평균 1.2%씩 줄어들어 왔던 농지면적 감소폭을 획기적으로 줄이려면, 농지보전을 국가의 최우선 목표로 해도 모자랄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산업단지 등 개발사업을 계속 발표하고 있다.

농민들은 이상기후로 농사짓기가 점점 힘들어진다고 호소하는데, 농민들의 소득을 보장할 수 있는 대책은 미약하기 짝이 없다. 농산물의 최저가격을 보장하고, 이상기후로 인한 농업피해를 국가가 책임지는 등의 획기적인 대책이 필요한 상황인데, 그런 얘기는 정부 내부에서 들리지 않는다.

문제는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지금의 상황을 보면, 기후위기로 인한 심각한 식량위기가 언제 닥쳐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리고 이미 상황이 닥치면 때는 늦는다. 국민의 생존이 달린 문제를 놓고 ‘소 잃고 나서 외양간 고치면 된다’는 식의 발상을 해서는 안 된다. 지금 당장이라도 국가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농업, 농촌, 농민에 맞춰도 모자랄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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