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아우르는 ‘사랑방’…마을에 활력 불어넣어

[한국농어민신문 조영규 기자] 

저녁을 곁들인 디너콘서트. 마령면 주민들이 모여 노래를 듣고 부르면서 화합하는 화합을 다지는 시간이다. 
저녁을 곁들인 디너콘서트. 마령면 주민들이 모여 노래를 듣고 부르면서 화합하는 화합을 다지는 시간이다. 

전북 진안군 마령면. 섬진강이 관통하는 이곳엔 마령평야가 있다. 산간지방임에도, 땅이 기름지고 비옥해 진안 일대의 가장 큰 곡창지대로 이름을 알렸다. 여기엔 산도 있다. 말의 귀 모양을 닮았다는 의미의 마이산이 마령면에 자리 잡고 있다. 들과 산이 있기에 마령면은 오래전부터 진안에서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농촌이 그렇듯 마령면도 쇠퇴 일로의 흐름을 막진 못했다. 예전의 명성을 찾아야겠다고 다짐한 마령면 주민들. 마령면이 ‘마령면 농촌중심지 활성화 사업’에 참여하게 된 이유다. 이 사업이 진행된 이후 마령면에 점차 대화와 함께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마령면엔 생기가 돌기 시작했고, 예전 마령면의 모습을 되찾아 가고 있다.
 

마령면 주민의 사랑방 ‘마령활력센터’주민 아우르고 핵심공간으로

 ‘마령면 농촌중심지 활성화 사업’을 통해 지어진 마령활력센터는 세대와 세대, 이웃과 이웃을 연결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마령면 농촌중심지 활성화 사업’을 통해 지어진 마령활력센터는 세대와 세대, 이웃과 이웃을 연결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마령면 평지리에 들어서면 2층 구조의 낯선 건물이 보인다. 마령활력센터다. 1층에는 공유카페와 북카페가 있다. 빵을 먹고, 차를 마시며, 책을 읽는다. 2층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는 커다란 방이 있고, 그 옆의 다락방은 아이들의 놀이터가 된지 오래다. 버스정류장과 인접해 있어 비가 올 때, 바람이 불 때, 햇볕이 따가울 때 1층 한쪽은 대기실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마령면 주민들은 이곳을 ‘사랑방’이라 부른다. ‘마령면 농촌중심지 활성화 사업’을 통해 만들어진 마령활력센터는 ‘마령면 농촌중심지 활성화 사업’의 주제인 ‘세대와 세대, 이웃과 이웃을 아우르고 연결하여 천년의 마령을 이어가다’를 실현하는 핵심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런 마령활력센터 운영은 마령주민협동조합이 맡고 있다. 농촌중심지 활성화 사업으로 조성된 마령활력센터의 지속가능한 운영을 위해 지난해 마령주민협동조합을 구성, 현재는 57명이 조합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마령주민협동조합은 ‘마령면 농촌중심지 활성화 사업’ 추진위원회가 해 온 일도 이어받아 수행하고 있다.

‘마령면 농촌중심지 활성화 사업’은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선도지구 시범사업 대상지로 선정, 2016년부터 2021년까지 6년간 총사업비 81억원을 지원받아 추진됐다. 이를 통해 마령면에는 마령활력센터뿐만 아니라 야외문화공간인 마령뜰과 매월 열리는 마령월장을 위한 마령장터 등 지역 경제 활성화 공간과 작은목욕탕, 버스정류장 같은 생활편의시설도 새로 지었다.

진안군은 “마령면 농촌중심지 활성화 사업으로 면 소재지의 문화·복지·교통서비스 기능이 향상돼 향후 마령면의 발전 가능성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시골 마을의 디너 콘서트명상·요리실습 등 프로그램으로 삶의 질도 높여

마령활력센터가 왜 ‘사랑방’으로 불리고 있을까.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곳이면서도, 마령면 주민들이 다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곳이기에 붙여진 별칭이다. 마령활력센터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각기 다른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6월 현재 치유명상, 제철요리 절기음식 실습반, 필라테스, 기타교실, 디저트베이킹, 판소리와 민요, 패브릭교실, 아로마테라피 1급 자격증반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프로그램들은 주기적으로 바뀐다. 지금도 프로그램을 개설해달라는 요청이 계속 들어오는 중이다. 대부분 프로그램 시작 시간이 저녁 6~7시다. 때문에, 마령면 주민들은 도시로 나가지 않고도, 내 집 근처에서 경제활동을 마친 후에도,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선택해 배울 수 있다. 서먹했던 현지 주민들과 귀농·귀촌인들이 가까워지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디너 콘서트’도 마령활력센터가 사랑방 역할을 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제철 농산물로 만든 저녁식사를 곁들인 콘서트를 정기적으로 열고 있다. 최근엔 전국노래자랑 진안군편 우수상 수상자를 초청했고, 이 자리에는 ‘마령 어딘가의 어떤 주민’의 노래도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콘서트장은 현지 주민들과 귀농·귀촌인들이 한 데 어울리며 서로에게 마음을 여는 기회가 된다.

김춘자 마령활력센터 사무장은 “센터에서 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디너콘서트에도 참석하면서 숨어있던 귀농·귀촌인들이 조금씩 외부로 나오게 되고, 그러면서 주민들과 함께하는 계기가 늘어나고 있다”면서 “동네 산책을 나오듯 이뤄지는 자연스러운 만남이 마령면에 새로운 활력을 주고 있다”고 뿌듯함을 내비쳤다. 말 그대로 마령활력센터는 마령면에 ‘활력’을 주는 구심점이 돼 가고 있다.
 

토종, 그리고 어머니 밥상 ‘토종씨앗’ 보급, 요리법 알려지역경제 활성화 계획도

사진 왼쪽은 ‘마령면 농촌중심지 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토종씨앗 수집. 이렇게 수집된 토종씨앗은 총 146점에 이른다. 오른쪽은 토종씨앗 기록집으로 토종씨앗과 함께 마령면 어머니들이 제철 농산물 요리비법도 담겨있다. 
사진 왼쪽은 ‘마령면 농촌중심지 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토종씨앗 수집. 이렇게 수집된 토종씨앗은 총 146점에 이른다. 오른쪽은 토종씨앗 기록집으로 토종씨앗과 함께 마령면 어머니들이 제철 농산물 요리비법도 담겨있다. 

“이미 없어졌다고 알려졌던 부엉다리콩이 청국장이 되어 나타났고, 대를 이어온 무는 나물과 부침개로 선을 보였습니다. 마령에서 더러 심어 먹었던 뿌리갓은 어느 마을 누구네가 심었다더라 소문만 남은 줄 알았더니 옆 마을 아주머니가 해마다 씨를 받아 겉절이로 담그고 있었습니다.”

‘마령면 농촌중심지 활성화 사업’ 추진위원회의 정환오 추진위원장이 ‘토종으로 만나는 시골어머니의 건강한 밥상과 정겨운 이야기’의 서문에 쓴 문구다. ‘마령면 농촌중심지 활성화 사업’을 통해 마령면의 자원들을 기록으로 남기는 ‘기록담기 프로젝트’를 추진했는데, 그 일환이 ‘토종씨앗’이다. 토종씨앗을 기록한 기록집 세 개 중 하나가 앞선 ‘토종으로 만나는 시골어머니의 건강한 밥상과 정겨운 이야기’다. 토종씨앗은 우리나라의 풍토에 맞는 ‘건강한 먹거리’의 시작이다. 기후변화가 심화하고 있는 현실에서 토종씨앗은 식량안보를 담보하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추진위원회가 토종씨앗에 공을 들인 것도 이 때문이다. 마령면 부녀회를 중심으로 일일이 발품을 팔아 조사해 모은 마령면 토종씨앗은 총 36작물 67품종 146점이다.
 

마령면에서 수집한 토종씨앗의 하나인 부엉다리콩. 올해 이 콩으로 두부를 만들어 마령면 주민들이 맛보도록 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마령면에서 수집한 토종씨앗의 하나인 부엉다리콩. 올해 이 콩으로 두부를 만들어 마령면 주민들이 맛보도록 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 중 부엉다리콩을 예로 들면, 부엉다리콩은 예전부터 맛이 좋아 장에 팔러나가면 상인들이 서로 사려고 잡아당겨 ‘보자기가 찢어지는 콩’이라고도 불린 것으로 알려졌다. 부엉다리콩은 콩맛이 절대적으로 맛을 좌우하는 청국장이나 두부로 만들어먹곤 했다. 마령활력센터는 올해부터 부엉다리콩으로 두부를 만들 계획을 갖고 있다. ‘우리 지역의 좋은 먹거리는 우리 지역사람들이 먼저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우선 마령면 주민들에게 판매한다는 구상이다.

추진위원회에선 토종씨앗을 모으는 것을 넘어 토종씨앗을 보급하고, 마령면 어머니들만의 토종씨앗으로 키운 제철 농산물 요리법을 알려 토종씨앗을 지역 경제 활성화의 초석으로 삼겠다는 의지도 엿보였다.
 

“마을활력센터, 주민 삶의 일부 됐으면 합니다”

마령활력센터는 공간적으로도 ‘차별’을 없애려 애썼다. 휠체어 사용자를 위해 카페 입구의 문턱을 낮췄고, 시선이 낮은 화장실 사용자를 고려해 경사형 거울을 설치했으며, 세면대 높이도 줄였다. 또 주출입구 정면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마령뜰 주변에 단차를 없애,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도 편하게 센터를 오갈 수 있도록 한 점도 눈에 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마령활력센터를 포함한 ‘마령면 농촌중심지 활성화 사업’은 2022년 제2회 서울 유니버설디자인 대상에서 환경조성 공공부문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서울 유니버설디자인 대상은 시민 누구나 차별받지 않고 이용 가능한 도시환경을 조성하자는 취지에서 서울특별시가 제정한 상으로, 환경조성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으로 나눠 시상하는데, 한국농어촌공사가 진안군과 함께 ‘마령면 농촌중심지 활성화 사업’을 공동 출품한 결과, 환경조성 공공부문 대상을 받았다. 이 때 심사위원들은 ‘농촌 지역사회를 활성화하고자 고령자, 장애인, 어린이를 포함한 모든 주민이 함께 이웃으로서 보편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주민들의 지속적인 협력을 수행했다’고 평가했다.

마령활력센터가 설립됐을 당시부터 살림을 도맡아 온 김춘자 사무장이 생각하는 마령활력센터의 미래는 어떨까.

김춘자 사무장

“마령활력센터가 마령면 주민들의 삶의 일부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굳이 센터가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아이들이 뒷마당에서 싱싱카를 타기도 하고, 할머니들이 물 한잔 마시면서 쉬기도 하고, 중고등학생들은 소파에 누웠다가 시험공부를 하기도 하고, 이렇게 스스럼없이 내 삶의 하나로 이용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센터에 새참을 부탁하면 앉은뱅이밀로 만든 빵을 직접 나눠주기도 할 거고요. 활력이라는 게 큰 게 아닙니다. 서로 오가고, 서로 얼굴을 익히게 되고, 그렇게 되면 아는 사람끼리 모여 생기를 만들고, 생기를 통해 삶에 힘이 생기면 그게 활력이지 않을까요?”

조영규 기자 choyk@agrinet.co.kr

관련기사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