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선 (한국농촌복지연구원 이사)

[한국농어민신문] 

우리나라 농업, 가족농이 주를 이루지만
가족 재생산 해체 속 ‘개인’에 주목해야
가족 아닌 사람들이 이룬 경영체도 육성을

농업을 진정으로 아끼고 농업의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하시는 김태연· 윤병선 두 분 학자님들의 열띤 논쟁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 두 분의 논쟁이 우리나라 농업의 중요한 정책적 과제와 방향을 제시하는 논쟁이어서 부디 생산적 결론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 두 분의 논쟁을 관심있게 지켜보는 한 사람으로서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혹은 여성농업인의 관점에서 고려해 주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보잘 것 없는 의견이지만 제 의견을 조심스레 적어본다.

우선 통계적 사실부터 확인할 필요가 있겠다. 여전히 우리나라 농업은 가족농이 주를 이루고 있다. 농지와 같은 주요 생산수단을 가족이 소유하고 노동력의 중심도 가족이며 주요한 의사결정의 주체도 가족이란 점에서 여전히 가족농이 우리나라 농업을 이끌어 가고 있다. 그런 점에서 가족농에 대한 성격 규정과는 무관하게 우리나라 농업을 이끌어갈 가족농을 어떻게 육성, 지원할 것인가가 농업정책의 핵심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농번기와 농한기를 가진 농업의 특성, 그리고 가족이라는 집단을 유지하기 위해 자기착취에 가까운 노동 투입으로 유지되는 농업의 특성을 고려해 볼 때 상당 기간 농업을 담당하는 주체도 역시 가족이 중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가족이란 무엇일까? 가족사회학에서는 가족을 결혼과 혈연으로 맺어진 집단이라고 말한다. 즉 결혼과 혈연(출산)이 가족을 유지하는 매커니즘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미 결혼과 출산문제에서 한국 사회 유지를 걱정할 정도로 적신호를 보이고 있다. 가족에 대한 헌신이나 충성심이 과거와 다르게 크지 않다는 것이 사회의 큰 변화이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현상도 아니다. 여성학계에서는 가족이란 제도가 미래에도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 결혼과 혈연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다양한 삶의 공동체들도 가족에 준하는 법적 지위를 부여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라는 논의들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적신호를 먼저 보낸 곳이 우리나라 농촌이다. 많은 여성들이 농촌으로 들어와 결혼하지 않으려 하고 그러니 출산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2020년 농림어업총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농가 중 1인 농가의 비율이 20만 7000호(전체 농가 중 20.0%)이며 이는 2015년 20만 1000호(전체 농가 중 18.5%)에 비해 늘어난 숫자이다. 2인 가구도 55만 8000호로 전체 농가의 53.9%를 차지하고 있다. 가족의 생애주기로 미루어 볼 때 2인 가구의 상당수는 조만간 1인 가구로 전환될 확률이 아주 높다. 이미 농촌에서는 가족의 재생산이 해체되고 있고 그 속도는 가속화될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가족은 가족 구성원 간의 위계와 서열을 가진다는 점에서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가진 사회집단이란 점이다, 농가의 여성, 후계자, 그리고 후계자의 배우자까지 모두 성과 세대로 구분되는 위계와 서열에 종속될 수밖에 없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사고가 농업정책의 기본이 되고 있다. 즉 가족원은 단지 가족의 일원으로서만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대우받고 있다. 경영체육성법에 따르면 경영체는 농업인과 법인으로 구성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경영체란 단위와 자연인인 농업인이 동일시되는 논리에 맞지 않는 법률이다. 또한 공동경영주를 농업인의 배우자로 한정하고 있어 경영체 내에서의 지위와 가족관계를 혼동하는 규정도 있다. 여전히 농가라는 경영체를 가족주의적 관점에서만 파악하는 전근대적 사고를 보여준다.

가족이란 집단의 권위로부터 벗어나려는 여성들이 많아질수록 가족 재생산은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고 농가의 재생산 역시 어려움에 처하게 될 것이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여성의 힘든 노동과 희생으로 유지되어 온 농업 때문에 가족농의 재생산이 어려워지는 역설에 처하게 된다.

이제는 ‘가족’이 아니라 ‘가족 안의 개인’에도 함께 주목할 때이다. 그리고 가족이 아닌 사람들로 이루어진 경영체도 적극적으로 육성할 때이다. 농가 안의 개인들에 대한 정책도 필요할 뿐만 아니라 가족으로 이루어진 법인도 육성하고 부부로 이루어진 법인의 설립도 고려해야 할 때이다. 그래서 가족원 모두 독립적 직업인으로서의 지위를 누림과 동시에 개별적 혹은 집단적 정책적 지원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가족의 재생산에만 의존하지 않는 경영체들을 육성해야 할 때라고 본다. 가족 경영체건 비가족 경영체건 일부는 기업적 형태를 띨 수도 있고 일부는 보다 소규모의 자영업적 성격을 띨 수도 있으며 생태적 삶의 가치를 실현하는 자급에 가까운 공동체일 수도 있다.

용어에 집착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가족과 기업은 원래 그 뿌리가 다른 것이다. 가족과 기업은 합쳐질 수도 있고 떨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족은 생산에서 분리되어 재생산의 기능을 맡는 것으로 분화되어 왔다. 이 둘이 하나로 여전히 결합되어 있는 것은 농업이란 산업의 특징 때문이지만 가족이 해체되어 가고 가족의 유대가 약화되어 가는 시대에는 가족이란 집단보다는 개인과 개인들로 구성된 경영체에 더 주목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정부는 다양한 근원을 가진 각 경영체의 성격에 맞도록 보다 세심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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