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가족기업농도 기업농이고, 비가족기업농도 기업농인데, 규모화에 있어서는 가족기업농보다는 비가족기업농(흔히 말하는 ‘기업농’)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읽혀질 수도 있겠다는 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ㅣ윤병선 건국대 교수

경제학을 비롯한 사회과학은 ‘개념의 학문’이라고도 한다. 개념은 현실에 대한 반영이기에 현실의 변화를 담아내야 하지만, 더 나아가 미래에 대한 전망도 함께 담겨야 한다. 개념은 단순히 두뇌작업의 산물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고민과 미래에 대한 전망이 함께 어울어져 형성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서 현실을 바라보는 관점이라는 것이 크게 작용하게 되어서 사회과학에서는 개념과 관련한 논쟁이 심심찮게 전개되기도 한다.      

필자가 김태연 교수의 한국농어민신문 3월 14일자 칼럼을 보고, 이에 대한 이견을 칼럼을 통해서 밝혔던 것은 가뜩이나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는 농민들을 학자들의 논쟁 속으로까지 초대하고자 하는 의도는 전혀 아니었다. 다만, ‘가족농, 미래 농업의 주역일까?’라는 칼럼에서 가족농을 중소규모 농가로 치환하고, ‘이들(가족농)을 우리나라 농업 발전의 주역으로 설정하고 향후 산업적 발전에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하는 주장은 문제가 있다’라는 주장이나, ‘가족농이 농정의 보호 대상일 수는 있으나, (가족농을) 농업 발전의 미래로 상정하는 국가는 없다’라는 주장에 대하여 동의할 수 없었기에 이에 대한 의견을 3월 17일자 칼럼에 게재했다. 

그런데 김 교수는 5월 9일 자 농어민신문에 ‘우리나라 농가 대부분은 가족기업농이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게재했다. 필자의 3월 17일 자 칼럼에 대한 응답의 성격을 가지면서 부연 설명도 함께 단 친절한 글이었다. 김 교수는 “판매를 목적으로 생산하는 농가는 생산 규모가 작더라도 기업이 아닌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면서 “우리나라 농가 대부분은 가족기업농”이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의 3월과 5월 칼럼의 핵심 요지를 함께 정리하면, “미래 농업의 주역은 우리 농업의 다수를 차지하는 중소규모의 농가 - 이른바 가족농 - 일 수 없고(3월 칼럼)”, “우리나라 농가 대부분은 가족기업농(5월 칼럼)”이고, 따라서 가족농이든, 가족기업농이든 우리 농업의 미래 농업의 주역이 될 수 없다고 읽혀질 수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가족농이 한물간 개념이고, 가족기업농이라는 개념이 새롭게 논의되고 있다고 주장한 배경에 대해 의문이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의문의 실마리는 칼럼 두 개의 결론 부분을 통해서 유추해 볼 수 있다. ‘농업생산의 산업적 성장을 위해서 활동하는’(3월 칼럼) 대규모 농가는 ‘농산물의 효율적 생산을 추구하도록 함으로써 농산업발전과 식량안보에 기여하는 역할을 강화하도록 해야’(5월 칼럼)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수도 없이 들어왔던 규모화 농정, 생산주의 농정의 옹호 이외에 다른 무엇이 담아져 있는 것은 아닐까? 농에 대한 큰 애정을 가지고 있는 김교수가 그럴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지만, 대규모 농가도 절대로 편하지 않은, 오히려 더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는 상황에서 혹여 가족기업농이라는 개념을 끌어들인 것은 가족기업농도 기업농이고, 비가족기업농도 기업농인데, 규모화에 있어서는 가족기업농보다는 비가족기업농(흔히 말하는 ‘기업농’)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읽혀질 수도 있겠다는 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가족기업농은 어디에 방점이 두어져야 할까? 생산규모가 작더라도 생산물의 일부라도 판매하면 가족기업농일까? 농업에서 가족경영(가족기업)이 갖는 특성은 다원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농업생산의 역할, 농촌 지역사회와 맞물려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활동, 땅을 포함한 경영적 자산(생산수단)의 세대간 연결, 가족구성원이 노동력의 주요 원천이면서 의사결정의 주요 참여자라는 점 등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경영학에서 가족기업은 주로 소유권의 승계와 가족구성원의 의사결정권과 관련해서 논의되는 개념이지, 규모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점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규모화가 만능의 대책일까? 규모화 농정으로 일컬어지는 생산주의 농정의 결과로 농가의 살림이 나아졌고, 식량안보도 기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 농업소득이 농가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계속 낮아지고 있으며, 농업소득으로 가계비를 충족하려면 경지규모가 10ha 이상 되어야 한다. 상위 0.9%의 농가에 해당한다. 이런 참담한 상황에서 농민들은 - 가족농으로 불리든, 가족기업농으로 불리든 관계없이 - 자조적인 활동을 통해서 협동과 연대에 입각한 농업생산의 ‘규모의 경제’뿐만 아니라, 다각화를 통한 ‘범위의 경제’를 실현하는 다양한 사례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농업과 농촌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농가의 어떤 특정한 기능과 역할’을 규모의 크기에 따라 분리하는 농정 체계만으로는 위기의 극복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현실이 보여주고 있다. 통합적이고 융합적인 사고가 절실하다. 농가들이 농촌 공동체를 통해서 다양한 사회적 자본을 확보해 내고, 이 사회적 자본이 농가를 지원하는 선순환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시급한 정책방향이다. 갈라치기로 마음 상한 농민이 없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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