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구정민 기자] 

지난달 13일 농민들은 속보로 전해진 소식에 망연자실했다. 쌀값 폭락 사태 이후 여야 정치권을 뜨겁게 달궜던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결국 대통령의 거부권에 이어 국회서도 최종 부결됐기 때문이다.

부결된 개정안은 쌀 수요대비 초과 생산량이 3~5% 이상이거나 쌀값이 평년 가격 대비 5~8% 이상 하락할 경우 쌀 초과 생산량을 정부가 의무 매입하자는 게 골자다. 이날 국회에서는 여야가 날선 신경전을 벌였고 항의와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정치권만의 얘기가 아니다. 지난해 내내 한 목소리로 쌀값 안정화를 위해 머리띠를 두르고 양곡관리법 개정을 함께 외쳐왔던 어제의 농민 동지들도 오늘의 남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정치인들 싸움에 애꿎은 농민만 희생되고 분열된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

사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쌀산업에 미칠 영향에 대해선 여러 견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을 ‘남는 쌀 강제 매수법’이라고 매도해 버리고 농업인과 농촌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안’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정부여당의 행태는 농민들을 더욱 분노하게 했다. 또한 양곡관리법이 농민들에게는 생존 과 직결되는 문제임에도 ‘밥 한공기 다 먹기’ 캠페인 등으로 해결하자는 가벼운 발상도 쉽사리 이해하기 어려웠다. 대다수 농민들도 같은 생각이지 않을까.

양곡관리법 개정 무산에 뿔난 농민들을 중심으로 양곡관리법 거부를 규탄하는 집회 등 단체행동이 이어지고 있다. 번번이 농민을 천시하고 외면해왔던 정권을 향한 거부운동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양곡관리법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첨예한 갈등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이제 양곡관리법 개정을 무산시킨 정부가 쌀값 안정화를 위해 어떤 묘수를 낼지 주목된다.

최근 농식품부 장관은 수확기 쌀 80kg 한 가마를 20만원으로 유지하겠다고 다시 한 번 못 박았다. 농업직불금도 5조원으로 확대하겠단다. 하지만 정작 쌀값은 지금도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허울 좋은 명분만 내세우지 말고 농민들이 납득할만한 구체적인 방안도 함께 내놓아야 할 것이다.

농업인 10명중 7명은 생산비 폭등과 농업소득 감소 등으로 농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말한다. 이러한 극한의 상황에 우리 농업인들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불안감이 앞선다. 오랜 세월 지켜온 생명 농업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위기감마저 든다. 지금이라도 여야가 대동단결해 농민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할 때다. 앞으로가 중요하다. 농업의 백년대계를 세워 농민이 살길을 제시하고, 떠나간 청년들이 꿈과 희망을 갖고 돌아올 수 있는 농업·농촌이 만들어지길 간절히 기대한다.

구정민 전북취재본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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