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우리는 축산하러 갑니다
<하> 부여 양돈농가 이성배 제일농장 대표

[한국농어민신문 김경욱 기자] 

30여 년간 양돈업을 해온 이성배 제일농장 대표의 이력서엔 희노애락이 다 담겨 있다. 이제 그는 이 이력을 토대로 새로운 터전인 부여에서 제2의 양돈업 인생을 열어가려 한다. 부채에 급증한 이자와 생산비 등 감내해야 할 것이 많지만 돼지 키우기 좋은 날이 올 것이란 희망의 끈도 놓지 않고 있다. 
30여 년간 양돈업을 해온 이성배 제일농장 대표의 이력서엔 희로애락이 다 담겨 있다. 이제 그는 이 이력을 토대로 새로운 터전인 부여에서 제2의 양돈업 인생을 열어가려 한다. 부채에 급증한 이자와 생산비 등 감내해야 할 것이 많지만 돼지 키우기 좋은 날이 올 것이란 희망의 끈도 놓지 않고 있다. 

“그래도 양돈업을 계속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난 11일 충남 부여군 석성면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성배 제일농장 대표(69)는 인터뷰 말미에 ‘기력이 허락하는 한 양돈업을 계속하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다만 ‘그래도’란 접속부사에서 짐작할 수 있듯 지난 몇 년간 그가 겪은 일련의 일들은 한 농민이 짊어지기엔 너무 큰 시련들이었다. 1989년부터 시작해 30여 년간 전북 익산에서 양돈업을 하다, 지난해 4월 정든 터전을 떠나 부여에 새로운 둥지를 튼 이 대표의 ‘그래도 이전 이야기’를 들어봤다.
 

각종 규제에 민원성 고발만 9차례30여 년 일군 터전 떠나 

이성배 대표는 전남 고흥에서 전북 익산으로 거처를 옮긴 1989년부터 본격적인 양돈 이력을 써 내려갔다. 당시 익산시 왕궁면 일대는 전북 최대 규모의 축산단지가 조성돼 있어서 양돈 농가들이 돼지 키우기엔 최적의 조건이었다. 이 대표는 그곳에서 축사 2동에 300마리 돼지로 양돈업을 시작해, 10년 남짓 지난 2000년대 초반엔 3000마리로 10배 이상 사육 규모를 늘려 지난해 4월까지 유지해왔다.

이 대표는 “고흥에서 돼지를 비롯해 여러 가축을 조금씩 키우며 다른 농사도 짓는 복합 영농을 하다, 본격적으로 양돈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알아본 곳이 익산으로 당시 익산은 축산업에 대한 지자체 관심이 컸고 축산 농가도 많아 양돈하기에 적합한 지역이었다”며 “처음 2동에서 시작하다, 1동씩 축사를 확장, 12동 축사에 3000마리까지 돼지 사육 규모를 늘렸다”고 전했다. 그는 “규모를 조금씩 늘려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물론 구제역 등 어려움도 있었지만 30년 넘게 돼지 키우며 자식들 의대, 약대 공부시키고 스스로는 전문적인 직업을 지녔다는 자부심도 컸다”고 회상했다.

그러다 2010년대 들어 정부와 지자체가 ‘악취 민원 해결’이란 미명하에 왕궁면 축산단지 일대 매입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 미허가 축사 적법화란 제도가 시행됐고 분뇨처리 등에 대한 각종 규제까지 더해져 이 대표를 비롯한 많은 농장이 이 일대를 떠났다.

이 대표는 “왕궁면 일대 양돈 농가가 처음엔 300여명에서 100명 정도로 줄더니 이제 남은 농가가 많지 않다. 정부와 지자체에서 각종 규제를 들이대니 도저히 견딜 수가 없고 민원성 고발만 9번을 당해 정부에 양돈장을 매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수십억 부채 안고 불안한 출발“양돈장 구축에 40억 투입된 셈”

이성배 대표가 구 축사를 매입해 울타리 설치 등 새롭게 리모델링한 양돈장 시설을 외부에서 설명해주고 있다. 
이성배 대표가 구 축사를 매입해 울타리 설치 등 새롭게 리모델링한 양돈장 시설을 외부에서 설명해주고 있다. 

이성배 대표는 지난해 4월까지 3000마리 규모의 양돈장을 운영했고, 이후 부여 석성면의 구 축사를 매입해 리모델링을 거쳐 11월부터 돼지를 입식하며 현재 2600여 마리의 돼지를 키우고 있다. 익산에서와 같은 규모인 3000마리 정도의 돼지를 키울 수 있는 부지를 매입했기에 익산과 부여 양돈장 면적은 비슷했다. 하지만 그는 익산 양돈장을 매각하고, 부여 부지를 매입하는 과정에 상당한 부채를 떠안아야 했다. 그 사이에 14억원과 32억원이란 간극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익산 부지는 축사를 계속할 수 없는 곳이었고, 정부와 계약을 맺은 2010년대 중반 단가로 계약을 맺다 보니 14억원에 팔 수밖에 없었다”며 “반면 축산업 진입이 까다롭기에 새롭게 양돈장을 매입하기 위해선 큰 금액을 내야 했다. 10년 전보다 양돈장 매입 가격이 두 배 이상 뛰어 32억원에 양돈 부지를 매입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2곳의 금융권으로부터 16억원과 17억원의 대출을 받아 부지 구매 자금 32억원에 이전비 1억원까지 33억원을 들여 양돈장을 이전했다”며 “여기에 울타리 설치 등 8대 방역시설을 비롯해 양돈장을 리모델링하는데 6억5000만원이 들어가 부여에 양돈장을 새로이 구축하는 데 40억원 가까운 비용이 투입된 셈”이라고 설명했다.
 

금리 인상 속 대출이자 늘고 생산비 치솟았는데 돈가 안 받쳐줘

지난해 익산을 떠나 부여로 이전하며 발생한 부채 이외에도 이 대표가 떠안아야 할 것들이 부지기수로 늘어났다. 금리 인상 속에 예상했던 대출 이자금보다 내야 할 이자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사룟값과 유류대, 전기세 등 각종 생산비도 치솟았다. 올해 2월 부여 양돈장에서 첫 출하가 이뤄졌기에, 지난해 4월 익산 양돈장을 매각한 뒤 계속해서 늘어나는 적자를 오롯이 홀로 감당해야 했다.

이 대표는 “애초 월 1000만원의 이자를 예상했지만 금리 인상으로 현재 1700만가량의 대출 이자를 내야 한다. 이와 함께 사룟값은 상승한 데다 전기세도 전 양돈장보다 2배 더 내고 있고 분뇨 처리비, 직원 급여 등 부대비용도 크게 늘어났다”며 “반면 돼지는 11월에 입식해 2월 첫 출하가 진행됐기에 수익은 형편없어 계속해서 비용 지출만 늘어났다”고 밝혔다.

여기에 돈가도 받쳐주지 않아 그의 시련은 계속되고 있다.
이 대표는 “부채가 하나도 없다면야 돼지 가격이 5000원(kg당)만 유지돼도 수지타산이 맞겠지만 양돈 농가치고 부채가 없는 농장이 어디 있겠느냐”며 “우리 농장 같은 경우엔 돼지 가격이 5500원은 나와야 농장 운영이 그나마 안정적으로 가능하지만 현재 5000원 내외의 가격이 유지되고 있어 막막할 따름”이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정부에 대한 서운함도 드러냈다.
그는 “정부가 축산에 대해선 각종 규제를 들이대면서 생산비 상승에 맞는 돈가가 유지돼야 함에도 무분별하게 축산물을 수입해 우리를 코너로만 몰고 있다”며 “국민들의 돼지고기 소비는 지속해서 늘어나며 대표 먹거리가 돼 있는데 정부 정책은 이와 반대로 가는 것 같아 아쉽고 안타까움이 크다”고 전했다.
 

노후 대비·자식 학비 위해 ‘그래도 계속’규제-진흥 균형 맞춰지길

양돈장 운영에 녹록지 않은 상황이 펼쳐지고 있지만, 이성배 대표는 ‘그래도 양돈업을 계속 할 거고 또 계속 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많다’고 강조한다.

이 대표는 “100세 시대라고 앞으로 노후도 대비해야 하고 의사 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자식 학비도 대야 한다”며 “무엇보다 익산에서 부여로 이사 오며 몇 달간 돼지를 키우지 못했는데, 몇 개월이지만 이 기간 무기력했다. 돼지를 키우는 게 나에겐 직업이기도 했지만, 재미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무엇보다 돼지고기는 서민들의 대표적인 먹거리이자 국민 주식이지 않느냐”며 “이런 중요한 산업인 양돈업을 하고 있다는 자긍심과 자부심도 컸고, 한 번 포기하면 다시금 양돈업을 할 수 없을 것이란 막막함도 양돈업을 계속하게 하는 동력이 됐다”고 덧붙였다.

양돈 관련 정책 전환 목소리도 냈다. 무엇보다 규제와 진흥이란 양 축의 균형이 맞춰지길 바라고 있다.

이 대표는 “정부에서도 나름대로 고충이 없지는 않겠지만 양돈 농가들은 적정 시세라도 유지돼야 한다. 무엇보다 돈가 평균 기준을 (생산비 상승 이전인) 예년 시점과만 비교해 무리하게 수입을 하거나 가격을 낮추려고만 하면 안 된다”며 “더욱이 정부가 분석하는 생산비 기준도 현장에서 느끼는 것과 차이가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8대 방역시설이나 관련 규제도 정부에선 50% 보조를 해준다고 해도 돌려 보면 농가들은 50%를 지출해야 하는 것으로 이에 대한 지원책이라도 마련돼 있으면 모르겠지만 부채를 떠안고 사는 농가가 목돈을 계속해서 마련해야 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며 “지속 가능한 양돈업은 식량안보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하기에 정부에서 양돈 현장을 바라보며 정책을 펴주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규제한 만큼 농가들이 버티고 살아갈 방안은 마련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30년 이상 돼지를 키운 선배 양돈인으로서 현재 양돈업을 하는 후배들은 물론 후에 돼지 키울 예비 양돈인들에게 당부의 말도 전했다. 이는 ‘그래도 이후’ 양돈업을 해야 하는 자신에 대한 다짐이기도 했다.

이 대표는 “익산에서 농가들을 볼 때도, 여기 와서 지부(대한한돈협회 부여지부) 회원들을 만날 때도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보다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자긍심만은 무너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양돈 농가가 힘을 내 좋은 돼지를 키워 대한민국이 양돈 선진국이 됐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김경욱 기자 kimk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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