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고성진 기자] 

고서에 나온 꽃 얘기 중에 우리에게 비교적 잘 알려진 고사가 있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신라 선덕여왕의 모란꽃 얘기다. 당나라에서 모란꽃 그림과 모란꽃의 씨앗을 보냈는데, 선덕여왕이 벌과 나비가 날아들지 않은 꽃 그림을 보고 이 모란꽃이 향기가 없는 꽃이라고 추측했고 다음해 그 씨앗에서 핀 모란꽃이 향기가 없었다는 얘기다. 그림만 보고도 그 사물의 속성을 헤아리는 선덕여왕의 지혜로움을 나타낸 고사다.

최근 몇 년 전부터 향기 없는 꽃, ‘조화’에 대한 화훼업계의 문제의식이 크다. 관리가 힘든 생화를 대신해 재사용이 가능해 가격이 저렴하고 관리가 간편하다고 인식되는 조화 수요가 급증하고 있어서다. 축하·근조화환에 조화가 쓰이는 일들이 흔해진 데다 코로나19 시국에서 식물을 활용한 실내 인테리어(플랜테리어)가 인기를 끌면서 인테리어용 조화에 대한 관심도 높다. 생화 대신 조화가 차지하는 공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조화와 관련된 정보는 예상 외로 접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합성섬유, 플라스틱, 중금속이 함유돼 재활용이 어렵고, 소각·매립으로 처리해야 하며 처리 과정 시 인체에 유해한 성분이 발생한다는 사실은 소비자들이 잘 모른다. 조화의 주재료인 플라스틱은 중국 등에서 수입되고 있는데, 2020년 국내 플라스틱 조화 수입량은 2092톤에 달했다. 말이 ‘조화’일 뿐, 사실상 ‘플라스틱 덩어리’인 셈이다.

이렇다보니 환경과 인체에 유해한 성분이 들어있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한국소비자원이 시중에서 유통·판매 중인 조화 20종(인테리어용 10종, 헌화용 4종, 화환용 6종)에 대해 실시한 안전실태조사 결과, 5개 제품에서 허용 기준을 초과한 환경 유해물질 ‘단쇄염화파라핀’ 등이 검출됐다. 단쇄염화파라핀은 잔류성 유기오염물질로, 자연적으로 분해되지 않고 동식물 체내에 축적된다. 면역 체계 교란과 중추신경계 손상 등을 유발할 수 있으며,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에서 발암 가능 물질로 분류하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재사용 화환임에도 표시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마치 생화나 새로운 꽃을 사용하는 것처럼 속이는 수법, 원산지를 표시하지 않는 사례들이 예삿일이다. 복잡한 유통구조 덕에 단속이 쉽지 않다는 점을 악용한 위법 행위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정을 모르고 구매한 소비자들의 피해를 구제하는 가이드라인도 부재하다.

화훼 업계는 조화 사용이 국내에서 생산되는 꽃(생화) 소비 부진의 원인 중 하나라고 보고 있다. 국내산 절화 소비는 경조사용 화환, 꽃다발 등 선물용 및 행사용이 전체의 68%를 차지하는데, 청탁금지법 시행과 코로나 팬데믹 등으로 소비 위축이 장기화되는 흐름이고 기존 유지해왔던 수요도 조화로 대체되면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화훼업계가 조화 유통 등에 주목하는 이유다.

다행히도 김해와 부산 등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공원묘역에 조화 반입이 금지된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리고, 재사용 화환이 빈번한 축하·근조화환에 대해 원산지나 생화와 조화의 비율 등 관련 정보 표시를 의무화하는 법 개정도 추진 중이다. 우리 꽃 소비를 늘리기 위해 조화에 대한 정보를 소비자에 제대로 알리는 노력이 활짝 피어나는 ‘봄꽃’처럼 만개하길 바란다.

고성진 유통팀 기자 k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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