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두영 대한산란계협회장

[한국농어민신문 김경욱 기자] 

야생조류가 한반도에 집중적으로 상륙하기 직전인 지난해 늦가을, 산란계 농가들은 어느 때보다 두려움을 크게 느꼈다. 유럽발 사상 최악의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발생 소식과 함께 이 지역 AI 매개체였던 야생 조류가 한반도에 집중적으로 들어올 것이란 관측이 전해졌기 때문. 실제 환경부와 국립생물자원관은 지난해 11월 11~13일 3일간 조사한 결과 2021년보다 21만 마리 늘어난 143만 마리의 철새가 국내에 상륙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북서풍의 강도가 세지던 이때 AI 집중 발생 우려 지역인 서해안 벨트의 산란계 농가들은 양계장 주변 논밭으로 향했다. 자신들의 돈과 시간을 투입, 경종 농가들의 논과 밭을 대신 갈아줬다. 경종 농가에도 도움이 되는 이 일은 AI 방역에 매진하기 위한 농가들의 한 선택지이자, 이번 겨울 농가들이 AI 방역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을 쏟아부었는지를 느끼게 해주는 단적인 사례였다.

 

논·밭 갈아 엎으며 확산 차단전세계 대란 속 국내 계란값 안정 이뤄

안두영 대한산란계협회장은 지난 1일 사단법인 승격 이후 처음으로 충북 청주시 오송읍 대한산란계협회 사무실에서 진행한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산란계 농가들이 지난 늦가을 논밭에 로터리 친 일화를 꺼냈다. 산란계 농가들이 얼마나 힘들게 AI 방역에 매진했고, 또 그 결과물이 나오고 있는지를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AI를 막기 위한 농가들의 사투는 처절할 정도입니다. 서해안 벨트 농가들이 왜 자신들의 돈과 시간을 들여 논과 밭을 갈아엎었을까요. 겨울에 강은 얼어 논과 밭에 이삭이 있으면 야생조류들이 먹이를 찾기 위해 논과 밭을 집중적으로 찾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AI 확산 우려가 커지기 때문입니다. 정말 현장의 산란계 농가들은 AI 방역을 위해 한순간도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고 있습니다. 돈과 시간을 투자한 농가들의 노력에 대한 결과가 올해 현재 작년 대비 AI 발생 빈도를 60% 이하로 낮췄습니다. 미국과 유럽은 물론 이웃 일본에서도 AI가 급속도로 확산돼 큰 피해를 봤지만 우리는 그 반대의 길을 걸었습니다.”

농가들의 노력은 자연스레 계란 시장 안정으로 돌아왔다. 외국의 경우 달걀 한 판에 2만원을 웃도는 가격이 형성되며 계란 구입 횟수를 제한하는 나라들도 생겨났을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계란 대란’을 겪었고, 이는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한판에 6000~7000원 정도의 안정적인 계란 가격을 유지했고, 계란 수급도 원활히 돌아갔다. 그런 농가에 정부가 돌을 던져 계란 가격을 급락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안두영 회장의 주장이다.
 

정부 수입정책에 ‘노력 물거품’1개당 가격 생산비도 못미쳐

“대다수 생산자들이 모르게 진행된 국내산 계란 비축과 물량 방출에다 연이은 계란 수입은 계란 시장 안정의 일등 공신인 생산자들을 칭찬해도 모자랄 정부가 농가에 돌멩이까지 던진 행위입니다. 계란 가격이 떨어질 때 푼 비축 물량과 수입 계란은 국내산 계란 시장을 혼탁하게 했고, 결국 계란 가격을 급격히 떨어뜨렸습니다. 사룟값과 유류비 등 생산비가 치솟은 데다 방역을 위한 추가적인 시설 투자비용과 시간까지 들인 농가를 정부는 극단까지 몰고 간 것입니다.”

실제 정부의 계란 수입 정책이 발표되고 비축 물량 방출도 이뤄지며 1월 말 현재 계란 산지가격은 왕·특·대·중·소 중 상위 기준인 특란 기준으로도 30개 1판당 4366원으로 12월 말 대비 698원(-13.8%)이 떨어졌다. 농가들이 분석하는 계란 1개당 생산비 162원은커녕 통계청 통계로 추정되는 생산비 136~148원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수입 추진 전 의견 수렴 없고 몇몇 선별·유통업체 특혜 문제도

농가들은 이번 정부 정책의 진행 과정에 대한 문제도 제기하고 있다. ‘투명성’이 결여됐고, 결국 몇몇 업체에만 특혜를 줬다는 주장이다. 

“수매 비축과 수입은 정부 예산, 다시 말하면 국민 혈세가 들어가는 사업입니다. 당연히 수매나 수입 정책을 추진하기 전에 생산자들과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농장 현장 상황은 어떤지, 관측기관에서의 수급 예측은 또 어떻게 분석됐는지 등을 면밀히 검토해야 하는데, 우리는 비축과 수입이 된다는 것을 전혀 몰랐습니다. 결국 몇몇 선별·유통업체에만 특혜를 줬고, 이들은 계란을 헐값에 시장에 내보내 지금은 물론 앞으로의 계란 시장까지 혼탁하게 만들었습니다. 무엇보다 농가나 정상적으로 유통하는 상인들은 헐값에 나가는 비축 물량으로 인해 거래처를 잃기까지 했습니다.”

이제는 농가들이 정부에 ‘정책 실기’에 대한 책임 소재를 따져 묻고 있다. 다시는 이런 그릇된 정책이 반복돼선 안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안두영 회장 역시 같은 목소리를 냈다.

“지금 우리 협회는 올해 들어 계속된 계란 가격 폭락과 생산자 경영 악화를 방지하기 위해 생산량 15% 감축 캠페인까지 전개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농가만 피해를 볼 수는 없습니다. 1판에 2만원 넘어가는 계란을 혈세를 투입해 5000원에 공급하는 건, 더욱이 지난해 폐기까지 했던 수입 계란을 다시 들여오는 건 농가는 물론 국민 모두를 무시하는 정책이었습니다. 오히려 전 세계적인 계란 공급 부족 속에 대한민국 계란은 수입이 아닌 수출에 신경 써야 할 때입니다. 이에 정부, 특히 계란 주무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에 이번 그릇된 정책에 대한 엄중한 책임을 묻고, 앞으로는 농가와 소통 속에 산지와 시장 상황을 보며 사후 영향까지도 꼼꼼히 따지는 계란 수급과 가격 정책을 펴줄 것을 정식으로 요구합니다.”

김경욱 기자 kimk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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