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김경욱 기자] 

1년 내내 호황이라면야 이보다 더 좋을 순 없겠지만 대부분의 업종은 ‘대목’이 있고, 대목을 잘 넘겼는지 여부는 한 해 농사의 성패를 가름 지을 정도로 중요하다. 

농업계를 보면 화훼업계는 어버이날 등이 있는 5월 가정의 달, 배추업계는 11월 중순에서 12월 중순까지 이어지는 김장철, 농자재업계는 입춘이 지나 땅이 풀리면서 본격적으로 농번기가 시작되는 춘삼월이 대목이다. 산업별로 보더라도 가전제품업계는 결혼식이 집중되는 봄과 가을철, 바닷가 민박집은 여름휴가 시즌, 회사 주변 호프집은 회식이 잦은 연말연시가 주요 대목으로 꼽힌다. 

축산업계 역시 그런 대목이 있다. 설과 추석이다. 지역이나 가정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차례상에 소·돼지·닭고기가 올라가고, 떡국 지단이나 전 등에 활용되는 계란 역시 설이 주요 소비 성수기다. 고기는 명절에 빼놓을 수 없는 선물 세트 구성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 설 대목장에 축산 농가는 대목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 식량 자급률을 사수하며 축산 농가를 보호해야 할 정부가 수입산을 앞세우며 축산 농가들의 대목을 빼앗고 있다. 정부는 치솟은 농가 생산비는 아랑곳없이 지난해 하반기 4대 축종의 할당(무)관세를 추진하더니, 연말을 틈타 슬그머니 닭고기는 3월 말, 돼지고기와 계란 가공품은 6월 말까지 할당관세를 연장했다. 축종 가릴 것 없이 지난해 축산물 수입 규모는 역대 최대치를 넘어서거나 육박했다. 특히 지난해 초 혈세를 투입해 폐기까지 했던 수입 계란에 대해선 올해 상반기 할당관세가 재추진되며 최근엔 스페인산 계란 121만 개를 정부가 직접 들여오기까지 했다. 

넘쳐나는 수입 물량과 경기 침체 등이 맞물리며 설 대목장이 무색하게 한우·한돈·계란 등 주요 축산물 가격은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가격표를 보기 무서울 정도로 급락하고 있는 한우는 물론 지난해 말 5000원대(kg·탕박 등외 제외)를 넘어섰던 돼지 경락가도 16일 현재 4700원까지 내려갔다. 달걀 역시 정부의 신선란 수입 발표와 할당관세 추진, 비축 물량 방출 등이 맞물리며 지난달 하순(12월 21~31일) 5069원(30개 특란 산지가격)에서 새해 들어 계속 떨어져 16일엔 4600원 선까지 하락했다. 설 대목을 잃은 축산 농가는 명절 후 매년 겪는 소비 침체기라는 최악의 상황까지 직면하게 된다. 

이제 봄의 길목이란 입춘이 다가온다. 하지만 정부와 수입산에 대목을 빼앗긴 축산 농가들의 봄은 유독 멀게만 느껴진다.

김경욱 축산팀 기자 kimk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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