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송남/ 농부, 전 담양한빛고교장 

[한국농어민신문] 

교직 퇴임 후 2년 째 농사를 짓고 있다. 여명이 걷히고 산 너머 태양이 얼굴을 내미는 순간, 그 황홀한 일출을 바라보며 일터로 향하는 발걸음은 늘 경쾌하다. 바쁜 직장생활로 잃어버렸던 자연을 노래하며, 가을걷이 막바지에서 누리는 기쁨은 실로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천하보다 귀한 인간의 생명과 어머니 같은 자연을 섬기는 참농부가 되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나의 일터를 ‘섬김농장’으로 이름 짓고,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유기농법을 통해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먹거리 자립을 추구하고 있다.

마을 대부분의 농가가 소득 위주의 환금작물을 재배하다보니 정작 농산물을 역구매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으며, 이제 자급자족하던 협동적 마을체제는 물 건너간 실정이다. 하긴 농촌을 희생양으로 한 수출 위주의 산업화 정책은 자치·자립 마을 공동체를 해체시키고 말았다. 수천년간 우리 삶을 지탱해온 농촌은 농업인구 4.7%, 식량자급률 22.3%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보이고 있으며, 인구소멸 위험에 처한 지역마저 전국 228개 시군구 중 105곳(46.1%)에 달하는데 대부분이 농촌지역이다.

농촌이 소멸하면 도시와 국가의 존립이 위태로울진대 이 중대한 문제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려는가? 우리 몸의 지체들이 제 기능을 다했을때 육체가 건강하듯 모세혈관과 같은 농촌은 건강사회를 유지하는 시금석이다. 실제로 서양이 주도해 온 근대 산업문명은 자본의 중앙독점화와 대량생산 체제를 근간으로 자원고갈, 생태환경 파괴, 실업문제, 빈민화 등 난제를 양산했을 뿐만 아니라 마을공동체와 토착문화를 파괴하고, 나아가 대다수 풀뿌리 민중에 대한 구조적인 착취 없이는 한시도 지탱할 수 없는 잔혹한 폭력으로 작용해왔다. 

그래서 간디는 이러한 산업주의를 ‘저주’로 보았고, 그것이 가져다주는 물질적 풍요를 기반으로 한 인류의 행복이란 허망한 약속에 지나지 않으며, 언젠가는 이런 형태의 서구문명은 종말을 고할 것이라고 했다. 영국 유학을 통해 이러한 근대문명의 허상을 꿰뚫어 보았던 간디는 인도내 70만 개의 지역공동체를 ‘마을 스와라지(자치공동체)’를 통해 ‘마을 공화국’으로 재건시키고자 꿈꾸었다. 그러한 마을 스와라지는 자발적인 협력의 기초 위에서 민초들이 자치적 통치를 가능하게 하고, 자급자족으로 생활의 필요를 해결하는 인간 중심의 소박한 마을 경제를 이루리라 믿었던 것이다.

이런 마을 중심의 자립경제 체제만이 ‘필요’에 의한 생산을 통해 자연과 생태계에 대한 착취를 방지할 것이며, 미친 듯한 생산과 소비경쟁으로 ‘욕망’의 바벨탑을 쌓고 있는 인류를 구하는 길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도 알고 보면 이렇게 무너져간 마을공동체와 생태환경 그리고 불평등한 사회구조 속에서 잉태된 ‘예견된’ 재앙이요, 묵시록적 ‘축복’이 아니었을까? 코로나는 생태적 위기를 반영하고 있지만 이를 불러온 인간정신의 위기를 경고하고 있다. 기후위기와 환경문제, 생물종 다양성 감소 등 세계 곳곳이 간디가 우려했던 위기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런 위기의 근본 원인이 근대문명 속에 내재된 수탈의 논리와 자본 중심의 상품경제로 자연파괴의 일상화 그리고 더불어 사는 자급자족적 공동체적 삶의 인식 붕괴에 있다.

이를 궁극적으로 해결하는 길은 민중들이 자연을 중심으로 자치자립할 수 있는 마을공동체를 복원하는 일이다. 즉, 고대 그리스나 오늘날 스위스처럼 독립적인 자치공동체를 재건, 전국 3500개 읍면동장 직선제 등 풀뿌리 민주주의를 정착시켜야 한다. 또한 농업과 공예 중심의 자립적인 마을경제 체제를 구축하여 기업이 독점하고 있는 생산수단을 민중의 손에 돌려줌으로써 민중이 경제의 주체가 되게 해야 한다.

그리하여 고질적인 실업문제를 해소하고, 양극화로 인한 경제적 불평등을 해결하며, 생태적 삶을 통해 지속가능한 미래를 열어나가야 할 것이다.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는 간디의 신념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할 시대적 소명에 희망의 메시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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