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진흥청 인삼특작부장 김경미

[한국농어민신문] 

‘약방의 감초(甘草)’라는 말이 있다. 백과사전(다음)에는 ‘무슨 일이나 빠짐없이 끼임. 무슨 일에나 반드시 끼어야 할, 필요한 물건.’이라고 해설되어 있다. 감초는 거의 모든 한약 처방에 쓰였으며, 우리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식품, 화장품, 담배 등에도 쓰인다. '여기에도 감초가 들어갔어?' 할 정도로 생각보다 넓게 쓰이기 때문에, 마치 무슨 일에나 빠짐없이 끼어야 하는 것처럼 여겨진 것이다.

감초가 이렇게 넓게 쓰인 이유 중 하나는 여러 생약의 약효를 조화롭게 잘 어우러지게 도와주는 기능 때문이다. 동의보감에 의하면 감초에는 해독작용이 있어 다른 한약재에 있을 수 있는 독성을 완화한다. 열을 내리고 독을 푸는 작용인 사화해독(瀉火解毒)이다. 또 가래를 삭이고 기침을 멎게 하는 화담지해(化痰止咳), 비장을 강화시키고 위장을 편안하게 하는 보비화위(補脾和胃) 작용이 있다.

현대학적 관점에서 감초의 약리적 효능으로 보면 항알러지, 항염증, 항균, 항암 등에 작용하는 동시에 부신을 자극해 호르몬 분비를 촉진하고 신진대사를 활성화한다. 최근에는 전립선 비대증, 골관절염 개선, 대장염과 췌장염 억제, 폐 보호 효과 등을 신규로 확인하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고 있으며, 한약재 외에도 음료와 건강기능성식품, 반려동물 사료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가 사용한 감초는 재배가 쉽지 않았다. 감초는 중앙아시아 사막지역에 주로 분포하고 있어 재배보다는 무단 채취하여 수입되는 경우가 많았으나, 최근 해당 국가에서도 자원보호 정책이 강화되면서 수입가격이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부터 국산화를 위해 중국에서 종자를 수입하여 재배를 시도했지만, 장마철에 잎이 떨어지고 병이 발생하는 생리장해로 인하여 수량이 적고 유효한 약효성분이 낮아서 실제로 이용할 수가 없었다.

조선왕조실록 등에 의하면, 세종대왕 때부터 감초의 국내 재배를 명하였으나 실패하여 해당 관원이 처벌을 받았다는 기록도 있을 만큼 국가적 사안이었다. 국내에서는 자생하지 않고, 재배하더라도 안정적으로 생산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한약재로 사용하는 데 적합한 약효성분의 품질 관리도 어려웠다. 사실상 대부분 수입에만 의존하다 보니, 가격이 올라가도 속수무책이고 관련 산업의 성장도 한계가 있었다.

농촌진흥청에서는 2005년부터 감초자원을 수집하기 시작하여 2014년 재배에 적합하고 약효성분도 높은‘원감(元甘, 감초 중에 으뜸이라는 뜻)’이란 품종을 개발하였다. 600년 이상 묵은 숙제를 해결하는 쾌거였지만, 바로 사용이 어려웠다. 약방의 감초가 약방으로 갈 수 없는 것이었다. 약재로 사용하는 소재와 그 약효 기준은 대한민국약전(식품의약안전처)에 정해놓은 대로 따라야 하는데, 감초는 만주감초, 광과감초, 창과감초 등 3종만 기원종으로 등록되어 있어서 종간교잡을 통해 개발한 품종은 사용할 근거가 없기 때문이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농촌진흥청, 식품의약안전처, 국립생물자원관, 국립수목원 등이 협력체계를 구축하였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몽골, 중국(신장) 등 5개 지역에 대한 광범위한 탐사를 통해 종간 교잡종이 군락을 이루는 사례를 확인하였으며, 한의사와 농가, 산업체 등의 의견 수렴은 물론 한국과 중국, 일본 등 국내외 전문가 토론과 검토를 거쳤다.

이와 같은 노력으로 2022년 6월 중앙약사심의회(교수, 한의사, 약사관계 공무원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로서 대한민국약전의 재·개정을 심의하는 기구)에서 종간교잡 감초를 기원종에 추가하였고, 식약처에서 지난 11월 1일 약전에 교잡종 감초를 추가하는 개정안을 행정예고하였다. 별다른 이견이 없으면 2023년 3월 경에 등재가 완료될 예정이며, 비로소 개발된 감초 품종인 ‘원감’이 약방으로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감초 개발에 착수한 2005년으로부터 최소 18년 만의 결실이며, 세종대왕의 지시가 있은 뒤로 거의 600여년 이상이 걸렸다. 연구자의 열정과 관계부처의 적극적인 협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할 일이었다.

이는 단순히 감초 국산화의 길을 연 것만 아니라, 그동안 감초를 재배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농가는 새로운 소득원으로 재배의 길도 열린 것이다. 특히 원감은 국내에서 재배해온 만주감초보다 생산성과 약효 성분이 2배 이상으로 나타나, 품질 면에서도 우수하다. 감초는 한약재로도 쓰이지만, 추출물이 다양한 제품 생산에 활용되기 때문에 앞으로 관련 산업의 성장 가능성도 기대된다. 이제 국산화의 첫발을 떼어 종자 보급과 재배관리, 산업화 기술 개발과 원료공급체계 구축까지 숙제는 많지만, 시작이 반이라 하지 않던가. 농가와 지자체, 산업체가 힘을 모아 국민의 건강을 돕고 시장도 확대할 수 있도록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에서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 관심 가지고 지켜봐 주시기 바란다.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