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김경욱 기자] 

겨울철 야생 조류와 멧돼지에 의한 가축전염병 확산 속에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발생 농가’라는 말이 자주 들린다. 한 농장에서 전염병 바이러스가 검출, 확진되면 정부 부처 보도자료로 ‘모 지역 축산 농가에서 AI나 ASF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발표되고, ‘모 지역 발생 농가’로 시작하는 가축전염병에 대한 언론 보도를 통해 확진 소식이 국민들에게 전파된다. 

AI나 ASF가 발생한 곳이기에 발생 농가란 말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발생’보다 먼저 상기해야 할 단어가 있다. ‘피해’라는 두 글자다. 발생 이전에 해당 농가는 가축전염병 ‘피해 농가’다. 

가축전염병 확산에 따른 최대 피해자인 돼지·닭·오리 농가들은 누구보다 방역에 매진한다. 최대한 방역시설을 강화하고 지인들을 만나는 것도 멀리한다. 많은 가축전염병 피해 농가들이 이전에 구제역이나 AI, ASF 등에 따른 정부의 과도한 살처분 정책으로 애지중지 키운 가축들을 땅에 묻은 아픔을 겪었기에 가축전염병의 무서움을 누구보다 잘 알며 방역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막지 못하는 멧돼지·조류가 매개체가 된 전염병 확산 추세는 농가로서도 불가항력적인 면이 있다. 더욱이 농가도 사람인지라 100% 완벽 방역이라는 건 사실상 존재할 수 없고 실수도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가축전염병 ‘발생 농가’라는 말과 함께 이 모든 게 뒤로 밀리고 있다. 제대로 된 역학 조사 결과 발표는 뒷전인 채 전염병 발생 원인을 농장 안에서만 찾으려 한다. 실례로 2019년 9월 첫 발생한 ASF에 대한 역학조사 결과는 2년 6개월이 지난 2022년 3월 말에나 발표됐다.

앞으론 발생 농가를 질타하기에 앞서, 질병 발생 원인을 농장에서 찾기 이전에 가축전염병이 왜 확산되고 있는지, 확산을 저지할 방안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 당연히 발생 농가에 앞서 피해 농가인 축산 농가들에 대한 지원책도 과감히 확대하고, 과도한 규제는 농장의 방역시설 강화에 맞춰 개선 방향을 검토해 나가야 한다. 

돌아보면 인체 전염병인 코로나19의 국내 발생 초기 사회적 거리두기 등 방역 규제 조치는 상당히 강하게 전개됐다. 3년 가까이 지난 현재도 코로나19는 진행형이다. 아니 코로나19 발생 초기보다 현재 코로나19 확진자는 더 많이 발생한다. 하지만 자영업자 등의 ‘피해’가 확산되고 방역 규제에 따른 국민들의 피로감도 상당해지자 정부는 규제를 풀어가며 이에 따른 대응을 해가고 있다. 

2000년대 이후 수시로 창궐하는 AI와 3년 넘게 위기 경보 심각단계가 풀리지 않으며 200km가량 떨어진 곳에서 발생해도 돼지 반·출입에 제약을 받는 ASF와 관련해 해당 농가들이 받는 피로와 위압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이제 발생 농가 이전에 피해 축산 농가들을 다시 한번 보며, 국민 주식이기도 한 돼지·닭고기를 생산하는 이들에 대한 과감한 지원 대책이 병행돼야 한다. 자신들의 사유재산이자 피땀으로 키운 가축을 땅에 묻고 싶어 하는 농가는 없다.

김경욱 축산팀 기자 kimk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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