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고성진 기자] 

“올 여름, 최악 애그플레이션 닥친다.” 자극적인 헤드라인, 올해 6월 6일 국내 대형 경제지의 1면 기사 제목이다. 한 주가 시작하는 월요일, 사실상 ‘작심’하고 내보낸 의도가 역력하다. 국내 농산물 가격 상승이 물가 전반을 끌어올리는 ‘애그플레이션’의 공포를 부각시켰다.

이 기사의 관련 기사는 “시금치 62%·배추 43% 올랐는데...농산물 대란,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제목이 달렸는데, 내용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4%를 기록하며 14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지만 “‘물가 폭풍’은 아직 끝이 아닌 시작”이라는 것이다. 기사는 정부의 농산물 비축 대책이 미봉책이라고 지적하면서도, 정부의 시장 개입은 농산물 공급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마무리했다. 비축 등 공급 조절 말고, 소비 영역에 초점을 맞추라는 얘기다.

소비 촉진을 유도하라는데, ‘최악 애그플레이션’을 운운하면 소비 심리는 얼어붙고 가격 변화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는 분위기로 굳어진다. 도대체 어쩌란 것인가.

‘농산물 가격 폭등’ 현상은 공포 심리를 자극하면서 실제보다 부풀려졌고, 가뭄 등에 따른 공급량 부족과 비료값 상승 등 생산비 역대 최대라는 진단은 상대적으로 부각되지 않았다. 게다가 처방은 엉뚱한 곳에서 찾았다. “유통 대기업들이 물량 확보에 ‘긴장모드’”라며 “예상보다 물량을 확보하지 못하면 매출 타격은 불가피하다”는 걱정이 너무 앞섰던 탓일까. 생산기반 안정과 농가 소득보전, 농산물 자급률 제고 등 농산물 공급산지가 무너지고 있는 것에 대한 대책은 찾아볼 수 없었다.

봄철 가뭄 영향과 무더위로 공급량이 줄어드는 여름철을 앞두고 일부 언론은 ‘애그플레이션’ 공포를 사람들의 뇌리 속에 각인시켰다. 고물가에 대한 불안 심리가 유독 컸던 올해 이런 보도는 어느 때보다 들끓었다. 여러 변수를 복합적으로 고려하지 않고 단순 농산물 가격에 초점을 맞춘 보도가 넘쳐났다.

반면 수입 농산물·식품·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한 ‘애그플레이션’ 촉발 변수에 대해 비중 있는 분석은 많지 않았다. 수입 농산물로 대체하려는 정부 정책이나 움직임에 대한 경계나 비판의식도 눈에 띄지 않았다.

우려가 많았던 여름철을 지난 지금, 최악의 ‘애그플레이션’은 어디쯤에 있는 걸까. 이런 가운데 11월 들어 가을배추 도매가격이 평년 가격은 물론 생산원가 아래로 추락했다. 김장할 때 쓰이는 배추가 가을배추라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름철 고랭지배추 작황이 좋지 못할 때부터 ‘김장대란’ 보도가 쏟아졌다.

올 겨울에 출하되는 겨울배추의 가격 전망도 좋지 못한 편이다. 농산물 공급이 달리는 겨울철, 그나마 생산 농민들의 소득품목인 겨울배추의 가격 하락세가 장기화할 조짐은 올 겨울 산지의 ‘보릿고개’가 닥칠지 모른다는 얘기인데, 이를 걱정하는 언론은 많지 않다. 이렇게 팍팍한 살림살이에 지쳐 농민이 농업을 포기하게 되면, 일부 언론이 입버릇처럼 얘기하는 ‘최악 애그플레이션’ 공포는 ‘마침내’ 현실화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고성진 유통팀 기자 k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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