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숙정(한국농촌사회학회 운영이사)

[한국농어민신문] 

농촌 일용직 60% '미등록 이주노동자'
지역사회 유지에 꼭 필요한 존재
신분 관계없이 인권보장 장치 있어야

부지깽이도 덤벙이고 송장도 꿈지럭댄다는 수확철이다. 곶감 주산지인 우리 지역은 감이 풍년이다. 붉은 감이 주렁주렁 달려 가지가 휘어지니 보기에는 좋으나 속사정은 다르다. 감이 무르기 전에 따야 하는데 일손이 없어 거두지 못하는 것이다. 감나무를 바라보는 농민들 마음은 새카맣게 타고 있다.

농가 인구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경영주 평균 연령이 67세를 넘어섰다. 농가는 만성적인 인력난을 겪고 있으며, 그 대안으로 외국인 노동자 고용이 일반화되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조사(엄진영 외, 2021)에 따르면 작물재배업 농가의 65%가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했고, 이중 90% 이상이 미등록 노동자다. 논밭에서 만나는 일용직 노동자 10명 중 6명은 미등록 이주노동자인 셈이다. 이들은 기업농, 시설농과 같은 대규모 농가뿐 아니라 가족농, 소농, 고령농가의 논밭에서도 일한다. 우리의 식탁에 올라오는 먹거리 대부분이 이들의 손을 거쳤다고 봐도 지나치지 않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다양한 경로로 농가와 연결되고 있다. 지역 인력소개소에서 중개수수료를 받고 연결되거나, 농작업단 조직을 운영하는 브로커를 통해 연결되기도 한다. 다문화가정 이주민을 통해 알음알음 소개되기도 하고, 농가와 외국인 간 단골을 맺어 직접 소통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미등록 이주민으로만 구성된 농작업단도 생겨났다. 농업분야의 고질적 인력난과 비법적 상태에서 체류하는 이주노동자의 상황이 맞아떨어지면서 미등록 이주노동자 인력에 의존하는 농업 생산체계가 고착화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농촌에서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고용과 관련해 종종 농가와 이주노동자 간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농가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이 웃돈을 준다는 농장이 있으면 일하다가도 다른 농가로 가버려 적기에 일을 마치지 못해 농산물 품질이 떨어지는 등 손해가 크다고 호소한다. 일손이 대거 필요한 시기에 가중되는 인력난 속에 인력수급을 둘러싼 경쟁이 생기고, 자생적으로 생긴 중개조직에서 중개수수료를 떼어가기 때문에 인건비가 높아지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이에 농민들의 부담도 점점 커지고 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어려움도 많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농민에 따라서’ 다른 대우를 경험한다. 이주민의 자국 문화를 존중하고 인격적으로 대하면서 신뢰를 쌓는 농민들도 많지만 더러 폭언과 성희롱을 하고, 휴게시간을 충분히 제공하지 않고 다그치는 이들도 있으며, 종종 임금체불도 발생한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염려하는 가장 큰 문제는 일터에서 발생하는 사고다. 농작업은 추락, 미끄러짐과 같은 사고도 잦고, 농기계로 인한 사고 위험성이 크다. 기상청의 기록을 연신 갈아치우는 폭염과 혹한, 장마와 태풍을 견디며 야외노동을 하다 보니 건강을 해치는 일도 생긴다. 일부 비닐하우스 안의 온도는 초여름부터 40도가 넘게 올라간다. 이들은 그늘 한 점 없는 감자밭, 양파밭에서 한낮 더위를 피하지 못하고 일하다 열사병에 걸려 쓰러지기도 한다.

이들은 신분상 미등록 상태이기 때문에, 일터에서 쓰러지거나 다쳐도 국민건강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없어 치료비 부담이 매우 커진다. 현실에서는 큰 사고가 아니라면 병원에 가지 않고 넘기는 일이 대부분이다. 이주노동자를 위한 의료시설이 없고, 폭염과 홍수 같은 재난 시에도 안내를 받지 못하는 등 기초적인 사회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의존해 있는 농촌의 현실을 직시하고, 농업노동자로서 인권을 보호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외국인 없으면 농사 못 짓는다”는 농민들의 푸념 섞인 말은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비록 미등록 신분이지만 이들은 우리의 농촌 구석구석에서 먹거리를 생산하고, 농촌주민과 관계를 맺으며 지역사회를 유지하고 있다. 농촌에서는 이미 이주노동자들을 주민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이들은 농업생산뿐 아니라 공동화되는 지역사회를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미등록’이라는 신분과 관계없이 농촌을 유지하고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업노동자로서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이들이 폭염, 혹한 속에서도 인간으로서 존엄을 잃지 않고 건강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보건의료 지원은 물론 재난 대책을 마련하는 등 기본적인 사회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또 정서적으로는 품앗이, 놉의 정서를 간직하고 있어 고용-피고용 관계에 지켜야 할 권리에 익숙하지 않은 농민들이 ‘악덕 고용주’가 되지 않도록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교육을 제공함으로써 농민들의 인권 의식을 높여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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