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인 소장(마을연구소 일소공도)

[한국농어민신문] 

‘누가 담당, 책임질 것인가’ 가장 중요
권한-책임 일치, 사람·조직 양성 배려
중간지원조직 설치하고 지정사업 제시를

작년 10월 19일 행정안전부가 인구감소지역을 지정하고, 올해 1월 1일자로 지방소멸대응기금이 도입되었다. 2월 9일 기금 배분기준이 고시되고, 공모형식으로 5월까지 사업신청서를 접수받아 평가했던 결과가 8월 16일 발표되었다. 올해부터 향후 10년간 매년 정부출연금 1조원을 재원으로 지원하고, 사업계획 평가를 거쳐 연간 64억원에서 120억원까지(2023년 이후 기준) 5단계로 차등 지원된다.

지난 8월 결과가 발표되었다 하지만, 지자체별 등급이나 사업내용은 여전히 공개되지 않은 상태다. 지자체별로 평균 7건 사업이 제출되고, 문화관광과 산업일자리 및 주거의 3개 분야가 전체 사업건수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사업신청서는 거의 예외 없이 컨설팅업체가 작성했던 것이 명확하다. 세부 사업별로 하드웨어 사업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어떤 참신한 사업이 제출되었는지 여전히 미공개 상태에 있는 셈이다. 국회 국정감사 자료를 통해 각 지자체별 평가등급과 사업제목 정도가 흘러나오고 있는 정도다.

하지만 사업지침 자체가 이미 생활인프라 구축에 집중하도록 되어 있고, 인건비 지출은 처음부터 제외대상으로 분류되었기에 하드웨어 시설 중심으로 기획되었으리라 충분히 예상된다. 또 ‘민관협치형 추진체계 구축’이 강조되지 않았기에 사업주체는 행정 직영 혹은 공기관대행 방식으로 대부분 집행될 것이다. 앞으로 세부사업 집행을 위해 연구용역이 추가로 발주되고, 컨설팅업체가 바빠질 것도 명확하다. 이런 흐름에서 볼 때 기존의 균형발전사업 방식의 시행착오를 또 반복할 것으로 우려된다.

작년 12월 말과 올해 1월 초에 걸쳐 급하게 추진된 서면자문에서 다음과 같은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제안한 바가 있다. 아쉽게도 거의 반영되지 못하였고, 지금이라도 제도개선 차원에서 다시 한 번 검토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무슨 사업을 할 것인가?”보다 기금 사업 자체를 "누가 담당하고 책임질 것인가?"가 가장 중요하다. 지방소멸의 원인 진단이나 해야 할 사업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같은 사업이라도 누가, 어떻게 추진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첫째, 지방재정공제회가 기금 제도를 관리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전문성 측면에서 정책을 책임질 수 있는 전담조직을 명확히 해야 한다. ‘권한과 책임’을 일치시켜야 정책의 책임성이 높아지는 것은 명확하고, 조합 사무국에 전문가 그룹이 상근으로 활동할 때 전문성과 책임성, 안정성이 확보된다. 지금처럼 지방행정연구원에 용역 형식으로 재위탁하게 되면 ‘권한과 책임’이 분산될 수밖에 없다. 주관기관이 평가결과와 시행과정을 정확하게 공개하고 시행착오도 직접 수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정책의 추진체계에 대해 훨씬 더 심도 깊은 검토가 필요하다. 위원회 설치 정도로는 정책 관리가 될 수 없고, 기존의 균형발전사업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기 어렵다. 지자체 행정의 전담부서와 행정협의회, 순환보직제 단점 보완 장치, 중간지원조직 설치 등 훨씬 더 강력한 민관협치형 추진체계가 작동되어야 한다. 이런 추진체계를 통해 시행착오를 수정하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지자체의 관련 사업과도 연계협력이 강화될 수 있다. 물론 광역과 중앙에도 이런 추진체계가 정비되어야 한다.

셋째, 10년간 장기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예산이므로 ‘사람과 조직’ 양성에 더 많은 배려가 필요하다. 지금의 지방소멸 문제는 예산 부족 탓이 아니라 “누가 지역사회를 책임질 것인가?” 측면에서 ‘끼와 열정’이 넘치는 사람·조직에게 주도권이 없기 때문이다. 행정의 순환보직제 문제에 대한 보완장치가 명확하게 있어야 하고, 중간지원조직을 반드시 설치(균형발전사업과도 연계)하고 적절한 인건비 조치를 해야 한다. “일은 사람이 한다”고 항상 주장하면서 인건비 대책 자체가 없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넷째, 지자체가 검토해야 할 다양한 사업 중에서 지정(필수)사업 분야를 예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방소멸 대응 사업의 방향은 현장에서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예를 들어, 면소재지 공공임대주택 건설, 작은 거점의 문화복지 통합센터 설치, 면 단위 사회적일자리 제공과 사회적경제조직 육성, 행정리 마을공동체 기금 지원 등이다. 작은 학교 살리기 차원에서 이들 사업을 서로 연계하면 인구 유입 효과가 훨씬 크다. 적어도 지원하는 하한선 액수는 지정사업 분야로 신청하도록 하고, 추가로 신청하는 상한선 액수 부분은 자유롭게 지자체 특성을 반영하도록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분야를 너무 넓혀놓으면 결국 ‘용역사 작품’이 될 우려가 높기 때문이다. 광역지원계정의 지정사업 분야로는 현장활동가와 공무원의 민관협치 역량을 키우는 정책연수원 설치를 검토해볼 수 있다.

다섯째, 군청소재지 읍과 일반 면을 구분하여 접근해야 한다. 지금 농촌의 읍소재지는 면 인구를 흡수하는 ‘빨대효과’가 심각하다. 면이 인구댐 역할을 하도록 국민최저한 관점에서 기초생활서비스가 안정되게 제공되어야 한다. 면에 거주하면서 농촌문제 해결에 노력하려는 ‘사람과 조직’의 의견에 더 귀 기울여야 한다. 읍소재지나 관광지 개발에 투자에 집중되면 면은 더 빨리 붕괴할 수 있다. 지자체 내부의 불균등 발전을 해소할 수 있도록 투자해야 한다. 기초 지자체 사이의 연계는 그 다음 과제일 뿐이다.

여섯째, 중앙정부 차원의 컨설팅단 방식보다 전담조직으로 중간지원조직(통합형) 설치가 더욱 효율적이다. 지금 상황에서 컨설팅을 하게 되면 매번 바뀌는 사람들과 만나기 쉽다. 더구나 전문가라는 분들 사이의 합의는 더더욱 없다. 지방소멸 대응의 해법으로 제시하는 언어가 때로는 폭력적이라 할 정도로 쉽게 진단하고 재단한다. 농촌에 살면서 책임지는 ‘사람과 조직’이 명확하게 준비되어 있어야 외부 컨설팅도 효과가 있다. 농촌 ‘면’ 단위마다 실천조직으로 주민자치회나 사회적협동조합이 존재하고 시행착오를 수정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제공한다면 인구감소 문제는 의외로 빨리 해결될 수 있다.

내년 1월부터 ‘인구감소지역 지원 특별법’ 시행령이 시행된다. 5개년 계획인 인구감소지역대응기본계획을 수립해야 하고, 인구감소지역 지원 특례제도도 도입될 예정이다. 이를 계기로 앞에서 제안한 여러 방향이 다시 검토되고, 오히려 지방소멸을 촉진하는 기금이 되지 않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이를 위해 기존의 지역발전투자협약과 지역특구, 농촌협약, 자치분권 등의 제도와 연계하여 부처간 칸막이를 뛰어넘는 추진체계가 지자체마다 구축되어야 한다. 지방소멸대응기금사업을 잘 설계한다면 향후 10년간 농촌발전의 중요한 재원이 될 수 있다. 이런 희망을 확산시키는 방향의 ‘판도라 상자’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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