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김관태 기자] 

2년 전 늦가을 콩 수확이 한창인 들녘을 찾았다. 그해 여름은 50일이 넘는 긴 장마로 콩이며 팥이며 수확량이 급감해 농가 피해가 심각했다. 깨는 쭉정이만 가득해 수확이란 말을 쓰기조차 무색한 상황이었다. 정부의 논타작물 재배사업에 힘입어 콩, 팥, 녹두 등 밭작물 농사규모를 늘려왔던 터라 농가에서 체감하는 피해 규모는 더욱 컸다. 무엇보다 수확량 감소로 원료 수급이 어려워진 식품업체들은 원재료를 속속 수입산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농가 불안감은 더 커졌다. 한 전문가는 이제 농민들이 ‘콩 농사를 좀 지어봐야겠다’고 생각하는 전환기였는데 안타깝다는 말을 전했다. 당시 취재기사에는 ‘콩·팥·녹두…갈림길에 선 밭작물’이란 제목이 걸렸다.

20여일 전 그때 알게 된 취재원이 신문사로 연락해 페루산 녹두가 들어와 밭농사를 다 망치게 생겼다는 얘길 전했다. 무슨 일인가 싶어 통계자료를 확인해 보니 페루산 녹두가 2020년 134톤에서 2021년 8561톤으로 63배나 급증해 있었다. 페루산이 들어오기 전까지 국내로 수입되는 녹두는 중국산과 미얀마산이 대부분이었으나, 이 두 국가의 수입물량을 합친 것보다 더욱 많은 양이 국내로 들어온 것이다. 무엇보다 페루산 녹두는 한·페루FTA로 관세 없이 국내로 들어오는데, 인근 국가의 녹두가 페루로 들어와 우회 수입된 것이라는 의혹도 일고 있다.

현장 반응은 어떤지, 관련 취재를 위해 녹두 재배 농가에 전화를 걸자 ‘속상해 죽겠다’는 말이 먼저 나왔다.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간 것 같다는 말과 함께 수확기 녹두 가격이 얼마나 더 떨어질지 걱정이 앞선다고 했다. 논타작물 재배사업 이후 전국을 돌며 녹두 재배기술을 보급하기도 했던 그이기에 충격은 더 컸다. ‘그 많은 페루산 녹두가 어디로 갔겠냐’며 페루산 녹두로 인해 국산 녹두 생산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2년 전 그는 녹두를 비롯해 밭작물 수확량이 급감하고 시세가 올라가니 식품업체들이 수입산으로 돌아서려 한다면서 녹두와 팥, 깨 등은 재해보험 대상 품목도 아니라 걱정이 크다는 말을 전한 바 있다. 수확량 급감으로 노심초사했던 그가 올해는 수입산 급증으로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이다.

밭작물 재배농가들은 농가 소득 면에서나 식량안보 측면에서도 밭작물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안정적인 생산기반 마련을 위한 중장기적 대책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이상기후와 함께 RCEP, CPTTP 등 메가FTA란 이름으로 농산물 시장개방 압력이 더 높아졌을 뿐 밭작물 재배농가들이 마음 놓고 농사지을 환경은 여전히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한 달여 뒤 지난여름 심은 녹두 2기작 수확이 시작된다. 우리나라 밭작물이 다시 갈림길에 섰다.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