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미 (56·경북 경주)

[한국농어민신문] 

콤바인 할부금 마련하기 위해
늦은 나이 뛰어든 골프장 일
폭탄처럼 날아드는 공 피하고
고객 방패삼아 패인 잔디 고쳐

하루 일당은 쌀 ‘반 가마’ 수준
팀당 두세시간 골프비는 ‘두 가마’
석양 등지고 혼자 모심는 남편
오늘 몇 가마의 쌀을 심었을까 

산등성이가 온통 잔디밭이다. 이렇게 넓디넓은 땅을 매양 놀리는 것이 농부로서는 아까운 생각이 든다. 곡식을 심어 가꾸고 싶다는 마음이 스멀거린다.

모판에 뿌린 벼가 싹을 틔우는 때였다. 골프장에서 일하는 친구로부터 급히 사람을 구한다는 전화에 마음이 쏠려버렸다. 한 달만 있으면 내야 하는 모며 콩이며 때를 맞춰 심어야 할 것이 수십 가지였다. 그런데도 내 마음은 산 위 골프장으로 향했다. 모심기는 이앙기가 할 것이라 일주일에 휴일이 두 번이나 들었으니 그날 거들겠노라 공약을 내세웠다.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거짓말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남편을 외면한 채 골프장 일을 시작했다.

남편과 나는 농부다. 벼농사를 짓고 소를 키운다. 둘이 해도 버거울 때가 많다. 특히 하늘이 심술을 부릴 때면 무릎이 꺾일 만큼 힘이 든다. 요즈음 하늘이 많이 이상해서다. 겨울에서 곧 여름으로 넘어가 찜통더위를 만들다가 건너뛴 봄을 찾겠다는 듯이 사월에 서릿발을 세우기도 한다. 식물이 움을 틔울 때는 나 몰라라 하며 한 방울의 비도 주지 않아 애를 태우다 내릴 때는 한꺼번에 쏟아 부어 둑을 터트리기 일쑤다. 가을에는 연일 비를 찔끔찔끔 흘려 걷이를 늦어지게 하는 하늘이 제정신이 아닌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날이 갈수록 점점 증세가 심해지니 문제다. 그래도 절대자에 지는 것이야 자존심 상할 일은 아니다. 계란이 바위에 부딪히면 깨지는 것이 당연한 이치인지라 체념하며 농사를 지었다.

농번기마다 도로에 넘치는 행락객을 봐도 놀다 가겠거니 하고 말았다. 논에 갈 때면 신호등을 무시하는 자동차로 불편하고 위험해 조금 짜증을 내긴 했다. 논바닥이나 도랑에서 발견되는 골프공의 출처가 궁금하긴 했어도 그건 나와 무관한 일이라 돌멩이와 다를 바 없었다. 말 그대로 저 위산에서 일어나는 일까지 내가 어찌 알 것이며 나와 하등의 관계도 없는 일이었다.
 

경북 경주에서 벼농사와 한우사육을 하는 김영미 씨는 내리막으로 곤두박질한 쌀값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농기계 할부금이라도 갚아보자는 심정으로 골프장 일을 시작했다.
경북 경주에서 벼농사와 한우사육을 하는 김영미 씨는 내리막으로 곤두박질한 쌀값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농기계 할부금이라도 갚아보자는 심정으로 골프장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세상은 무던한 농사꾼을 가만두지 않았다. 또 비료대가 올랐다. 세상 모든 물건값이 오르는데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가파르게 오른 건 농기계 값이다. 길어야 보름 잠깐 쓰는 기계가 일 년 내내 쓰는 고급자동차 값을 웃돈 지 오래다. 우리 집에는 이런 농기계가 여러 대다. 자랑처럼 늘어놓자면 트랙터가 두 대다. 바퀴 지름이 내 키만 하다. 논을 갈아엎고 짚을 걷어 들이기까지 필요한 기계들의 모체라 꼭 필요하다. 타작하는 콤바인은 물론이고 올해 바꾼 이앙기도 있다. 벼를 저장하거나 차에 실을 때 필요해 지게차도 구입했다. 농사라는 것이 배보다 배꼽이 큰 것이야 애저녁에 알고 있었지만 달리 뾰족한 수가 없다. 가을에 갚아야 할 대출금을 생각하면 헛농사 짓는다 싶을 때도 허다하다. 그래도 농사를 지으려면 어쩔 수가 없어 부지런을 떨며 살아내었다.

이만만 하여도 괜찮겠다. 올해는 돈 들어갈 구멍이 줄을 섰다. 축사에 벽이 삭아 펄럭대는데 더 보고만 있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갑자기 어미 소까지 죽자 위기감이 들었다. 손해는 차지하고라도 말 못하는 짐승이 속병이 든 것을 알지 못하고 생명을 죽였다는 자책으로 괴로웠다. 어미젖 대신 고무젖꼭지를 잘 빠는 송아지가 대견하면서도 저걸 키워 어미한테 손해난 걸 보충해야지 하는 맘이 스멀거릴 때는 화가 났다. 생명을 생명으로 보지 못하는 이런 내가 싫어지면서 그간 살아온 날들이 뒤돌아 보였다. 생명을 키워내는 직업이라 자부했건만 사실 뒤집어보면 죽음으로 내몬 꼴이다. 그렇다고 일이 수월하냐면 그도 아니다. 몸이 아파도 짐승들 끼니는 챙겨야 한다.

논농사는 또 어떤가. 모를 심고 탈곡하는 작업은 뼈를 깎는다는 말과 동일하다. 겨울만 되면 병원 드나들기가 일상이 된 지 오래다. 도시친구가 고급승용차에 집 평수를 불려가는 것이 눈에 보일 때는 속에 화닥증이 난다. 더 답답한 것은 손을 놓으면 당장 살아갈 방법이 막막하다는 것이다. 평생을 일구며 산 터가 좁아 보이고 이유 없는 짜증이 자주 났다.

삶은 너무나 싱싱한 현실로 옥죄는데 아직 심지도 않은 모를 추수하려니 남은 시간이 아득하였다. 그보다 생명을 키우는 노동을 하고서도 내 손에 떨어질 이익이 작을 것이 뻔해 새삼 서글펐다. 남편은 가을쯤 아무래도 콤바인을 바꾸고 싶은 눈치다. 자꾸 아프다며 투덜대는 것을 고쳐가며 작년 탈곡을 마치긴 했다. 올 추수까지 견뎌줄 것 같지 않다. 또 “억” 소리 나는 돈을 마련해야 한다. 할부금이라도 갚아보자 마음먹고 돈 벌 구멍을 찾는 중이었다. 그런 차에 생긴 일자리였다. 어차피 농사짓던 아줌마라 흙을 만지는 바깥일 그깟 것은 겁이 나지 않았다. 팔팔한 젊은이들도 일자리가 모자란다는데 늦은 나이에 일하게 해준다는 것만으로 감사했다.

직접 본 적은 없어도 텔레비전에서 박세리에서 최경주, 박인비로 이어지는 중계방송을 간간이 보아왔다. 그린에서 시원하게 샷을 날리는 그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멋이 있었다. 내가 가꾼 잔디에서 국가대표가 나오고 LPGA에서 우승한다면 알던 모르던 뿌듯하리라. 세계에 나가 국위를 떨칠 선수들을 보조하는 보람 있는 일이라 스스로 뿌듯해하며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골프장 시스템은 생소했고 모르는 용어투성이였다. 캐디와 네 명의 손님이 팀을 짜 첫 홀에서 구 홀까지 돌면서 공을 친다는 것도 새삼스러울 지경이었다.

아차! 바로 옆에 공이 떨어졌다. 아슬아슬하였다. 움푹 팬 땅을 보니 맞았으면 심각한 상처를 입었으리라. 골프는 공을 깃발 가까이 떨어뜨려 홀컵 안에 들여보내야 이기는 경기다 보니 너나없이 한 타라도 줄이려 힘껏 날린다. 공을 헤아린다. 깃발 가까이 하나. 둘. 셋. 그린 바깥에 떨어진 것까지 합이 넷이다.

고객들이 바쁘게 다가온다. 캐디가 운전하는 카트에 세 명. 걸어서 잔디를 가로지르는 한 명. 그들의 꽁무니에는 벌써 다른 팀이 도착해 대기 중이다. 그린 안으로 들어온 고객들은 신중하게 공을 겨눈다. 홀컵으로 공이 들어가는 소리가 맑다. 아쉬운 탄성과 기쁨의 환호는 언제나 맞대결이다. 고객들은 다음 코스로 이동하고 나는 그린을 나왔다. 곧 대기하던 다음 팀이 치는 공이 날아온다. 네 개를 확인하면 그린으로 나간다. 공을 따라온 고객이 홀컵으로 공을 떨어뜨리기까지가 나의 시간이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고 빠져야 한다. 말 그대로 고객이 방패다.

“쨍” 소리가 나는 공은 포탄처럼 날아와 “퍽” 하며 잔디에 박힌다. 그렇게 떨어진 공은 여러 번 뜀을 뛰며 속도를 늦춘다. 공이 닿은 자리마다 잔디는 뭉개진다. 패이고 이겨진 상처를 도려내고 붙여 치료한다. 구멍은 계속 생겨난다. 눈치를 봐가며 한두 개 깁고 피했다가 또 들어가기를 반복하다 보니 옆으로 걷는 게가 된듯하다.

“딱” 둔탁한 쇳소리가 들린다. 소리만으로도 무섭다. 이번 공은 제대로 맞았나 보다. 환호성이 산을 들썩인다. 진행이 빠른 것으로 짐작건대 힘 좋은 남자들의 조합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 눈에는 잔디에 뚫린 구멍만이 보인다. 멍이 든 잔디를 덜어내고 이리저리 당겨 짜집기했다. 사람들의 발소리가 공을 따라온다. 그들의 생김새며 하는 말들은 나와는 관계없다. 그들은 골프장의 고객이지만 나에게는 방패일 뿐이다. 공을 따라 그들은 움직이고 나는 고객의 꽁무니를 따라 그린으로 들어갔다 빠지기를 거듭한다. 태양이 정수리에 꽂힌다. 덥다. 오월인데도 너무 덥다. 덮어쓴 차양 모자와 마스크, 안전모 속에서 땀이 내를 이뤄 등을 타고 흐른다. 일보다 더위에 지쳐 지레 나자빠지겠다. 

본격적인 모심기가 시작되었다. 남편의 얼굴은 금세 새카매졌다. 고된 것이 뻔히 보이는데도 일은 거들지 못하겠다. 연장근무까지 한 날은 너무 피곤해서 내 밥은커녕 남편 저녁도 못 챙기고 곯아떨어졌다. 둘 다 일을 줄여야 하는 나이인데 더 늘였더니 이건 숫제 고통이었다. 그래도 시작했으니 버텼다. 몸 힘든 게 낫지, 마음고생만 할까! 겨울 베짱이 꼴은 나지 말아야지. 남편도 모만 다 심으면 숨을 돌리겠거니 하며 질끈 눈을 감았다.
 

농부에게는 정해진 휴일이 없다. 누가 쉬라거나 일하라고 닦달하지 않는다. 스스로 알아서 하게끔 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논농사는 봄가을 한 달씩은 엉덩이를 땅에 붙이고 밥을 먹을 새가 없고 잠도 서너 시간을 이어 자지 못한다. 날이 밝기 전에 물꼬를 살피고 준비를 마쳐야 낮에 모를 심을 수 있다. 그래도 모내기와 추수를 하는 시기를 빼면 다른 날은 짬이 생긴다. 그래서 나는 당당하게 농부의 삶이 자유롭다고 말하곤 했다. 사실 노동에 대한 합당한 소득이 따른다면 이보다 자율적인 직업이 있을까 싶다.

내리막으로 곤두박질한 쌀값은 오를 기미도 없이 요지부동이다. 올라도 시원찮은 판에 내리다니 이게 말이 되는가. 공산품이나 서비스료는 연일 오르는데 쌀은 거꾸로다. 그러다 조금만 오르면 농산물이 무슨 물가상승에 큰 주범이나 되는 듯이 언론은 떠든다. 마트에 쟁여진 쌀 포대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위기감을 유발할 때마다 수입 농산물이 시장을 점령하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손해는 고스란히 농민이 감수해야 할 몫이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먹지 않고도 사는 신선을 닮아 간다.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이 감소하는 걸 보면 무얼 먹고 사는지 궁금해진다. 농지는 자꾸 좁아지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생산한 쌀은 남아돈단다. 그래프까지 그려 보여주며 수치를 말하는데 반박할 말이 없다. 영농교육마다 일차산업인 곡식을 생산하기보다 특용작물을 개발하란다. 6차산업 시스템을 활용하랄 때는 속에서 불뚝 주먹이 쥐어진다. 부지런하다고 다 잘사는 세상은 아닌가 보다. 농부가 농산물 생산에만 전력을 다하는 그런 세상은 요원한 것일까?

맛있는 음식은 행복을 부른다. 행복을 생산하는 농부들은 서럽다. 농민들의 배를 졸라매 쌓은 부가 언제까지 행복할 것인가 묻고 싶다. 더 문제는 날이 갈수록 사라지는 농민들의 자존감이다. 지원금이란 명목으로 농민의 목에 올가미를 채워 끌려 하는 행정에 화가 난다. 그러면서도 사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자존심 따위를 챙길 여유가 없다. 해마다 반복되는 상황에 그만 농사를 접고 싶은 마음이 자꾸 생긴다.

올해도 어김없이 봄 가뭄이 들었다. 잔디가 목이 마른다는 신호를 보낸다. 갑자기 땅속에서 스프링클러가 쓱 올라왔다. 쫙 뿌려지는 물이 시원한 분수를 연상시켰다. 햇살에 부딪히는 물 알갱이가 만드는 무지개는 색이 선명하다. 순간 텃밭이 떠올랐다. 밭에 심어놓고 돌보지 못한 상추와 고추가 시들어가는 중이었다. 밭뿐 아니라 논도 사정이 다를 바 없다. 우리 논에 모는 거미줄처럼 갈라지는 논바닥에 갇혀 발을 내리지 못하고 타들어 가는 중이다. 남편 혼자서는 모를 심는 것만으로도 벅차 물싸움까지 할 여력이 없는 것 같았다. 며칠 새 남편의 볼은 저수지보다 더 움푹 패야 버렸다. 그렇지만 그런 남편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멀리서 공이 날아온다. 하필 내가 피한 나무에 와 맞았다. 맞은 데 또 맞은 나무는 껍질이 까져 허연 맨살이 드러났다. 여차하면 나도 저리될 뻔했다. 고객이 사과한다.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날아갔다며 다치지 않았나 묻는다. 걱정하는 한마디 말에 꽈배기 같아지려던 마음이 풀린다.

가족 팀을 보는 건 즐겁다. 엄마 아버지와 아들딸이 어울린 조합은 연신 화기애애하다. 경제적 여유에 취미까지 같다는 게 참 좋아 보인다. 형제자매가 묶인 팀은 은근히 긴장감이 돈다. 잘 치라는 덕담 속에 살짝 스민 우월감이 보인다. 친구끼리 왔다면 야살스럽다. 공을 치는 것인지 농담을 치는 것인지 모를 만큼 떠들썩해 나무에 앉았던 까치가 도망을 간다. 성패를 가르는 경기일 때는 날이 섰다. 옆에서 조금만 소리를 내어도 이마를 찡그리고 세모눈을 뜬다. 이런 때는 멀찍이 떨어져 있는 게 상책이다. 간혹 안면이 있는 사람을 만날 때도 있다. 얼굴을 가렸으니 알아볼 리는 없어도 고개를 푹 숙이고 피한다. 도둑질이나 못된 짓을 하다 들킨 것도 아닌데 말이다.

떨어지는 공만 위험한 것은 아니다. 구르는 공의 위력 또한 그에 만만치 않다. 날아오는 공을 보면 어디쯤 떨어지겠다는 감이 잡히던 어느 날, 자만심이 화를 불렀다. 저만치에 떨어지는 공을 보고 그린 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툭툭 잔 구르기로 속도를 줄이던 공이 방향을 틀어 복사뼈를 맞추었다. 늦춰진 속도였기 망정이지 큰 상처를 입을 뻔했다. 공에 맞은 발목은 금세 부어올랐다. 병원에 갈 만큼은 아닌 듯 해 참았다. 무엇보다 창피했다. 다친 발목은 퍼렇게 멍이 들어 체중이 실릴 때마다 욱신거리더니 절뚝거려졌다. 남편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걱정하는 소리야 당연지사지만 힘든 사람 더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서다.

김영미 씨가 골프장에서 받는 하루 일당은 쌀 반 가마. "맛있는 음식은 행복을 부르지만 행복을 생산하는 농부들은 서럽다'라고 말하는 그는 농사를 접고 싶은 마음이 자꾸 생긴다.
김영미 씨가 골프장에서 받는 하루 일당은 쌀 반 가마. "맛있는 음식은 행복을 부르지만 행복을 생산하는 농부들은 서럽다'라고 말하는 그는 농사를 접고 싶은 마음이 자꾸 생긴다.

이즈음 남편과는 한집에 살 뿐 견우와 직녀 같은 처지였다. 아픈 발목만큼이나 마음이 삐걱댔다. 그만둘까? 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린다. 하루 쌀이 반 가마인데 이틀이면 온전히 한 가마다. 한 달이면 쌀이 열 가마가 넘는다. 일 년 수입이 백석지기가 된다. 밑천 없이 여자 몸으로 백석을 번다는 건 결코 작은 벌이가 아니다. 그래 참자. 참아보자.

또 공이 날아온다. 한 팀은 네 명씩이다. 팀당 쌀을 두 가마가량 내어야 한단다. 작금 우리나라 사람은 일 년에 쌀 반 가마를 먹지 못한다. 그렇다면 저 사람들은 일 년 치 양식을 두세 시간 만에 날리는 거네. 저 고객들이 내는 쌀에서 내 품은 얼마만 한 비중일까? 한 되? 설마 한 홉은 아니겠지?

석양을 등지고 모를 심는 남편이 보인다. 혼자 하려니 늦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대충하면 될 것을, 우직하고 꾀 없기는 전국 제일이다. 그런데 남편은 오늘 몇 가마의 쌀을 심었을까? 나는 날마다 꼬박꼬박 반 가마씩을 쟁이는데…

다친 발목은 쉬이 낫지 않았다. 결국 석 달을 넘기지 못하고 골프장 일을 그만두었다. 그래서 나는 부자는 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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