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고성진 기자] 

미국 금리 인상의 여파로 국제금값이 2년 반 만에 최저가라는데, 배추에 붙은 ‘금’은 이와 달리 좀처럼 떨어질 기색을 보이지 않고 있다. ‘금배추’ 얘기다. ‘금배추’ 언론보도는 김장철(11월)을 석 달이나 앞둔 8월부터 일찌감치 요란스럽게 ‘변죽’을 울려댔다.

고랭지배추 주산지의 생산량이 급감하면서 빚어진 사태다. 이렇다보니 김치제조업체들의 사정도 하나같이 원재료 확보에 어려움을 호소하며 애를 태우고 있다. 김치업체 관계자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이들의 진단이 ‘금배추’ 사태의 현상 이면을 잘 헤아리고 있다고 느껴져서다. 물가 안정 명목의 ‘금배추’ 때리기 보도가 판을 치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배추와 김치 속재료 가격이 폭등한 건 30년 만의 처음 있는 일이다.” (A업체 관계자)

“매년 이 시기에 배추와 속재료 가격이 오르긴 했지만, 가격 등폭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평년 대비 기본 3배에서 최대 5배 오른 상황이다. 정말 심각하다.” (B업체 관계자)

김치 제조업계에서 수십 년간 몸을 담아왔던 이들에게도 올해가 손꼽을 정도로 힘든 해라는 데 큰 이견이 없다. 주목할 점은 ‘금배추’만의 문제를 넘어 김치 부재료 등 농산물 전반에 걸친 가격 폭등 흐름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엽적이고 일시적인 공급 부족 현상이 아니라 코로나와 이상기후 등 거대 악재와 맞물리면서, 농산물 전반에 걸친 생산 기반 붕괴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근본적인 문제인식인 것이다.

한 김치업체 관계자의 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농산물 가격 상승은 기후요인도 있지만, 농촌의 고령화로 인한 생산 인구 감소와 경작 면적 감소가 제일 큰 영향을 끼쳤다. 농산물 가격은 매년 상승폭이 커질 것이다. 이제 농산물을 싸게 먹는 시대는 끝난 것 같다.”

지속 가능한 영농 기반을 조성하겠다는 정책 구호는 정부 업무보고나 정당 선거 공약집에만 등장하는 ‘정치적 수사’로 변질되고 있다는 비판이 산지에서 나온 지 좀 됐다. 산지를 외면하고 농산물 가격 관리에 초점을 둔 정책은 악순환을 낳고 있다. 인건비와 원자재 등 생산비가 터무니없이 오르니, 생산자들이 돈(수익)이 되는 작목으로 쏠리거나 품목을 전환하는 추세가 심화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자칫 공급 과잉으로 흘러 가격 폭락을 감수해야 하지만, 가격 폭락 대책은 수십 년 동안 흔치 않았다. 앞선 8월 말 강원도 태백과 강릉 등 고랭지배추 주산지에서 만난 농가들은 “가격이 오르면 수백억 원씩 대형마트에 할인쿠폰을 지원해준다거나 수입을 한다든가 난리를 치는데, 가격이 떨어지면 아무런 대책이 나오지 않는다”고 힐난했다. 

이상기후도 먼 얘기가 아니다. 농촌진흥청은 이대로 기온 상승이 이어진다면, 2090년 태백에서 고랭지 배추 재배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실제 태백 고랭지배추 재배면적은 2017년 1000ha 정도 됐는데, 2022년 600ha대로 5년 사이 40%나 급감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시간은 많이 남지 않았다. 단기 물가관리보다 중장기 차원에서 지속적인 생산 기반을 어떻게 조성할 것인지 로드맵을 짜는, 정책 기조의 전환이 요구된다. 

사족을 덧붙인다면, 올해 배추 가격이 유난히 비싸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는 지난해 낮은 시세와 대비해 기저 효과에 따른 ‘착시’도 일부 작용한 측면이 있다. 9월 말 현재 배추 가격은 지난해보다 2배 정도 높은 것은 맞지만, 2021년은 50여 일간 계속된 장마로 배추 산지가 초토화된 앞선 2020년 여파가 미쳤던 시기였다. 2020년 생산 기반이 무너지자 배추 가격은 치솟았고, 이 때문에 2021년 배추 재배를 크게 늘린 덕에 배추 가격이 반토막 났는데, 당시 정부는 어떤 대책도 내놓지 않았다. 

고성진 유통팀 기자 k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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