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진흥청 인삼특작부장 김경미

[한국농어민신문] 

농업의 가장 중요한 출발점은 토양
농사짓되 자연과 더불어 사는 지혜 발휘
토양-식물 협업으로 기상이변 대응 모색

지난 7~8월 서울을 비롯 충청·강원지역 등에 쏟아진 폭우로 집은 물론 논과 밭이 물에 잠기고 인명사고도 발생했다. 기상청 관측 이래 엄청난 폭우였다고 한다. 올해 비가 오기 전에는 오랜 가뭄으로 곳곳이 몸살을 앓았다. 이처럼 장기간 지속된 가뭄 뒤에 오는 폭우가 오히려 홍수피해를 발생시킬 수 있다고 하면서, 기상학자 로버트 톰슨(Robert Thompson)은 마른 잔디와 촉촉한 잔디 위에 같은 양의 물이 든 컵을 거꾸로 놓아 물이 흡수되는 시간을 비교하였다. 그 결과 적절한 수분이 있는 촉촉한 잔디밭에서는 약 15초 만에 토양으로 물이 흡수되었으며, 평년처럼 비가 내린 경우는 1분 만에 물이 토양에 흡수되었지만, 바짝 마른 잔디의 경우 4분 이상 경과해도 물이 토양에 잘 흡수되지 않는 모습을 영상으로 보여주었다(뉴스펭귄, 2022.8.16.).

이와 같은 현상의 원인으로는 첫째, 토양의 특성이나 구조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가뭄으로 말랐을 때는 토양이 더 단단해지면서 물이 침투하기 곤란한 경우가 발생한다. 둘째로는 흙에서는 물의 이동이 매우 중요한데, 대공극과 소공극(작은 구멍이나 빈틈)이 잘 연결되어 있다면 물의 이동이 자유롭고, 흡수(토양으로의 침투)도 잘되고 배출(대기로의 증발과 증산)도 잘되게 된다. 가뭄이 오래되면 이런 연결(물길)이 교란되거나 형성되기 어려워져서 물 흡수도 어렵게 된다. 또 균열된 지면의 틈 사이로 물이 갑자기 몰려들어가면 토양의 무게가 급증하여 무너짐이 증가한다. 즉 토양유실이나 산사태 등으로 이어지기 쉽다. 그러므로 평소에 토양의 공극, 즉 물길을 관리해주는 것이 중요한데 어떻게 관리할 수 있을까?

토양유실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는 내리는 비(비의 양, 강도, 속도), 토양(토양의 종류, 토양입자 분포, 토양층위의 특징), 경사(논·밭·산의 기울기, 즉 경사도를 구분한 경사 등급), 식생 피복(재배작물과 지표면 관리 방식), 보전관리방법(등고선 재배, 볏짚 등 부산물로 지표 피복 등)의 5가지가 있다. 그중 식생 피복이라 함은 물(내리는 비)이 토양의 표면을 직접 타격하게 되면 흙이 부서지고 흩어질 수 있기 때문에 작물이나 잡초 등의 식물이 있을 경우 물이 토양에 미치는 충격을 완화하는 쿠션 역할을 하게 된다. 잡초도 일정 부분은 토양 유실 방지에 기여하는 것이다. 이러한 잡초의 특성에 착안하여 청옥산 육백마지기 정상에 올라가면 ‘잡초 공덕비’가 있다. 그 내용 중에는 ‘흙을 품고 보듬어 …’라는 표현이 있다. 흙의 유실을 줄여주는 식생 피복의 기능을 설명한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은 먹고 살기 위해 농사를 지어야 한다. 그러므로 농사를 짓되,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사는 지혜도 발휘해야 하는 것이다. 농촌진흥청에서는 경사도가 2%, 7%, 13%, 15% 등 여러 가지 기울기에 따라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면서 흙의 유실을 예방하면서도 토양이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는 방안을 연구 중이다. 이미 자연은 토양과 식물의 협업을 통하여 가뭄과 폭우라는 기상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농업 역시 작물을 건강하게 키우되 흙이 함께 건강해질 수 있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아서 실천해야 한다.

농촌진흥청의 연구에 따르면, 등고선을 이은 모양으로 경작하게 되면 세로로 경작하는 것보다 토양유실량은 50% 저감할 수 있으며, 경사 길이의 20~25m마다 폭 1~1.5m로 초생대를 조성하면 토양 유출을 10~50% 저감시킬 뿐만 아니라 유출수에 포함된 오염물질의 자연정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한다. 또 경사도가 7% 이상인 농경지에 볏짚 등 농업부산물로 지표를 피복하면 집중호우 시 빗물에 의한 지표면의 토양(표토) 교란이 줄어들어 유출수는 30~60% 저감하고, 농사를 짓지 않는 휴한기에 호밀 등 녹비작물을 피복하면 토양유실이 경감되면서 녹비의 토양환원 처리로 유기물 투입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그래서 이와 같은 토양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뜨거운 여름 땡볕 아래서 기꺼이 흙을 만지고 조사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 8월 18일, 안성에서는 한국토양비료학회와 농촌진흥청 공동으로 제8회 토양조사 경진대회가 열렸다. 대학생 또는 대학원생 약 100여 명이 깊이 150㎝로 파내려간 땅의 단면을 보고, 토양의 종류와 특성, 형성과정에 대하여 측정하고 답을 찾았다. 몇몇은 모여서 토론을 하고(단체전), 몇몇은 각자(개인전) 땅 위에 주저앉아 흙이 묻거나 땀이 옷을 다 적시거나 개의치 않고 오로지 흙을 만져보고 냄새를 맡고 색을 비교하면서 답을 찾기 위해 구슬땀을 흘린다. 토양조사경진대회 우승자는 4년마다 열리는 세계토양조사대회에 출전할 자격이 주어진다. 지난 7월에 영국에서 열린 세계토양조사에 참가한 우리나라는 종합순위 4위를 차지했다.

에어컨 나오는 실내에 있기도 무더운 여름, 이번 대회 우승자인 정영재(전주)씨는 “친구들이 흙투성이라고 놀려도 전 너무 좋아요. 그동안 간척지, 적토, 객토한 토양들을 봤지만, 150㎝ 깊이로 토양의 단면을 본 것은 처음이었고, 직접 단면을 보니까 배울 게 많고 더욱 분발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되었어요. 토양은 중요하잖아요. 농업이라는 기초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 토양이고, 토양의 염 농도나 유기물 함량 등이 농업의 성패에 영향을 미치니까요. 세계토양대회에 가게 되면 우리나라 토양연구의 전문성과 높은 수준을 적극 알릴 겁니다.” 

어느 분야나 그렇겠지만, 토양 역시 오랜 세월 그 속살을 파보고, 들여다보고, 만져보고, 냄새 맡아보고 하지 않으면 알기 어렵다. 특히 토양연구는 흙의 물리성, 화학성, 생물상 외에도 그 위에 재배하는 작물의 특성과 생육과정을 알아야만 하는 융복합 전문영역이다. 모든 연구와 학문이 로봇을 향해 갈 때 땅속 깊이 파묻혀서 땀 흘리는 오늘의 젊은이들이, 내일의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자연의 섭리, 즉 흙과 빗물과 작물의 콜라보레이션(협업)의 소중한 이치를 확산하는 메신저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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