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천안 박세연 청년농업인

[한국농어민신문 주현주 기자]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던 박세연 씨는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시면서 성환읍에서 배 농사를 짓게 됐다. 어렸을 때부터 농사일을 보고 자란 그는 과수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던 박세연 씨는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시면서 성환읍에서 배 농사를 짓게 됐다. 어렸을 때부터 농사일을 보고 자란 그는 과수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2012년 돌아가신 아버지 이어
직장 퇴사하고 배 농사 시작

1년 순수익 1700만원 남짓
사무직 겸업하며 생활비 충당

지역 개발로 농민 하나 둘 떠나 
추억·기쁨 서린 이곳 지키고 파

청년들이 농사짓게 된 계기는 청년들의 생김새만큼이나 각양각색이다. 농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고 농촌으로 간 청년들도 있고, ‘억대 농부’ 등 유명한 성공사례를 듣고 과감하게 농업으로 진로를 정하기도 했다. 답답한 도시의 삶보다는 농촌에서의 특별한 삶을 꿈꾸며 농사짓게 된 청년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 같은 이유는 조금 특별한 계기로 농업에 들어오게 된 청년들의 이야기다. 조금 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이유로는 부모님이 연로해 도와줄 일손이 필요했거나, 부모님이 갑작스럽게 돌아가시면서 아무도 일을 맡을 사람이 없어서였다. 이처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청년들이 농촌으로 오기도 한다. 충남 천안시 성환읍에서 배 농사를 짓고 있는 청년농업인 박세연 씨도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사연’의 주인공이다.

박세연 씨의 부모님은 대대로 성환읍에서 낙농업에 종사했다. 그러다 1980년대 후반 세연 씨가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부터 그의 아버지는 낙농업을 접고 배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2남 2녀 중 차녀인 세연 씨는 축산학과에 진학했고, 졸업 후 국립축산과학연구소에서 일하며 축산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천적을 생산하는 모 농업회사에 다니던 세연 씨가 돌연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짓게 된 계기는 지난 2012년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시면서부터다.

“아버지가 당뇨 합병증으로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부모님이 함께하던 과수원을 어머니가 혼자서 도맡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는데, 평소 무릎이 안 좋던 어머니로서는 혼자서 3000평 규모의 과수원을 감당하는 게 무리였어요. 방법은 두 가지였는데, 과수원을 팔던지 가족 중 누군가가 나서야 했어요. 당시에 형제들 중에서 당장 과수원 일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저밖에 없었고, 어렸을 때부터 농사짓는 걸 보고 자랐기 때문에 저는 과수원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대략 알고 있었어요. 결국 고민 끝에 제가 직장을 퇴사하고 배 농사를 짓게 됐죠.”

국내 배 주산지 중 하나인 천안시 성환읍은 1909년부터 배를 재배했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역사와 전통이 깊다. 과즙이 가득하고 당도가 높은 것으로 유명한 성환 배의 대표 품종은 ‘신고’이지만, 최근에는 ‘신화’, ‘조이스킨', '그린시스' 등 다양한 품종이 재배되고 있다. 성환읍에선 배 수출도 일찍부터 시작해 1986년 국내에서 최초로 미국에 배를 수출했으며, 수출단지도 조성돼 있다.

성환배의 명성만큼이나 5~6년 전까지만 해도 세연 씨 주변에는 부모님의 과수원을 이어서 하려는 후계농들이 여럿 있었다. 그러나 최근 성환읍이 개발지역에 포함되면서 지역 곳곳에 공장과 물류센터가 들어서기 시작했고, 배 농사를 짓는 면적은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성환읍이 더 이상 농업지역이 아니고 개발지역에 포함되다 보니까 시골이라는 느낌이 안 들 정도로 공장들이 많이 들어서고 있어요. 부모님과 함께 과수원을 하던 주변 친구들도 타지역의 농지를 찾아 하나둘 떠나갔죠. 우리 농장 바로 아래에도 농지를 밀고 반도체 공장이 세워졌는데, 부지만 약 5000평이 넘어요. 언젠가는 이 동네에서 과수원 자리는 전부 공장들이 차지하고, ‘성환 배’의 명성도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올해는 세연 씨가 배 농사를 지은 지 햇수로 10년이 되는 해다. 세연 씨는 지난 2019년 어머니로부터 1000평의 과수원을 임대해 경영체를 독립해 농장 이름을 ‘배짱농부’로 새롭게 바꾸고, 수확한 배는 전량 천안배원예농협유통센터를 통해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다.

지난해 세연 씨의 농장 매출액은 2400만원. 이중에서 자재비 700만원을 제외하면 과수원의 순수익은 연간 약 1700만원~1800만원 정도다. 그는 농사만으로 생계를 이어가기가 어려워 인근 농업회사법인에서 사무직 일도 겸업하고 있다.

“농사라는 게 일 년 내내 일하는 게 아니고, 농번기와 농한기가 있잖아요. 수익도 농산물을 출하하고 대금을 받아야 생기는 거니까 농사만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요. 제 인건비도 12개월로 계산해보면 겨우 최저생계비 수준 정도죠. 그래서 겸직을 알아볼 수밖에 없었어요.”

인터뷰를 하는 중간중간에도 흙과 시멘트를 싣고 다니는 덤프트럭이 지나가는 걸 보면서 세연 씨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도 세연 씨가 이곳에서 과수원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뭘까.

“솔직히 말하면 농사는 한 해 한 해 갈수록 더 힘겹고 어려운 일이 더해지고 있어요. 이 지역은 원래 저온 피해가 심하지 않았는데, 지난 2020년 냉해로 수확할 배가 하나도 없을 지경이었어요.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제가 계속 농사를 짓는 건, 성환읍은 제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자 부모님이 힘들게 가꿔온 가족들의 터전이기 때문이에요. 이곳에서 농사지으면서 아끼고 가꿔가며 더 좋은 곳으로 발전시키고 싶어요.”

주현주 기자 jooh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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