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주량

[한국농어민신문] 

국민이 농업 특성·가치 제대로 이해하고
세대·경제·환경적 농업 지속가능성 확립
생산주의 아닌 다원주의 농업 정착돼야

전설적 투자자 짐 로저스는 농업은 21세기에 가장 유망한 산업이지만 인구증가와 이상기후로 식량 산업과 식량 전문가가 각광받는 불안정한 미래가 바짝 다가왔다고 했다. 요즘에는 농업이야 말로 선진국 산업이며 농업 선진국이 진정한 선진국이라는 말도 자주 회자된다. 다 맞는 말이고 의미가 있는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농업 선진국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정의될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필자가 생각하는 농업 선진국의 첫째 요건은 국민들이 농업의 특성과 가치에 대한 이해가 성숙된 나라이다. 당장 농업 선진국이라고 하면 반도체나 핸드폰처럼 농업 분야에서 많은 국부가 창출되는 나라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농업 생산은 국부의 중심이 될 수 없다. 오히려 농업이 국부의 중심이라면 산업 구조 고도화가 진행되지 않은 후진국에 불과하다. 농업 선진국에서 농업의 진정한 핵심가치는 국부 창출의 중심이 되기보다는 안정적인 생산기반을 유지해 국가 필요 식량의 적정 비중을 안정적으로 책임져 주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려면 국민들이 농업의 산업적 특성과 기반적 특성을 구별할 수 있고 국제 식량가격과 상관없이 국가 식량의 최소 1/4에서 1/3은 국내에서 생산하는 것이 가장 경제적인 선택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지지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에너지를 거의 전량 해외에 의존 하는 한국에서 농업마저 해외에만 의존하게 되면 글로벌 위기 상황에서 치르게 될 참혹한 대가에 대해서도 더 깊은 공감이 가능해야 하고, 농업 붕괴에 이어지는 농촌 붕괴가 국가전체와 도시경제에 얼마나 치명적인 부담을 주는지에 대해서도 다함께 인식할 필요가 있다. 조금 더 욕심을 내자면 한국의 농업과 농업 기술수준이 상당히 뛰어난 수준이라는 것도 더 많은 국민들이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

농업 선진국의 두 번째 요건은 농업의 지속가능성이 확립된 나라이다. 여기서 농업의 지속가능성은 세대적 지속가능성, 경제적 지속가능성, 환경적 지속가능성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세대를 이어 농업과 농촌을 맡아줄 후속세대가 길러져야 하고, 농업 생산만으로도 경제적 자립이 가능한 적절한 수의 농가를 확보해야 하며, 영농활동이 다음세대의 환경을 해하지 않는 상태가 정립돼야 국가적으로 농업적 지속가능성이 확립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상태는 한번 진입하면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 환경과 국제 정서의 변화에 따라 계속적인 조정이 필요한 동적 평형의 상태이기에 농업의 지속가능성 유지를 위해서는 부단한 투자와 노력이 동반돼야 한다.

세 번째 요건은 다원주의 농업이 정착된 나라이다. 20세기 이후 전 지구적인 식량 교역이 시작되고 지구상의 거의 모든 국가들이 개방형 식량시스템을 채택하면서 대부분의 나라에서 국가 농업의 진정한 가치는 생산주의에서 다원주의로 옮겨졌다. 농업을 생산주의로만 바라보면 농업을 산업으로서 채택할 수 있는 나라가 거의 사라질 정도이지만 다원주의로 바라보면 모든 국가의 농업은 귀하고 소중하다. 스위스가 적자구조인 농업을 왜 헌법으로 보장하는지, 싱가포르의 30by30 정책(2030년까지 식량자급률 30% 달성)과 UAE의 사막농업정책, 뉴욕의 도시농업과 독일의 치유농업이 국가의 미래 핵심정책이 되는 이유는 다원주의 농업에 대한 선진국들의 국가적 응답으로 보아야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한국이 농업 선진국이 되는 길은 농업으로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아니다. 농업은 축구 경기의 수비수처럼 공격수 산업들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도록 안전하게 지켜주고 도와주는 것이 우선적 임무이다. 축구경기에서 모든 선수가 골을 넣겠다고 하면 동네축구가 된다. 팀플레이와 조직력의 틀 안에서 수비수는 수비수다워야 A매치 경기가 되는 것처럼, 우리 농업에 대한 국민적 인식과 철학이 확고하고 서는 나라, 그런 농업 선진국을 기대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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