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숙정(한국농촌사회학회 운영이사)

[한국농어민신문] 

여성농민 지위 확보·성평등 실천은
여성농민들만을 위한 것이 아닌
지속가능 농업·농촌 위한 해결 과제

“참세상 농민 세상 일구어 가는 우리는 땅의 사람 당당한 여성이다. 까만 얼굴 짧은 머리 굵은 손마디. 억센 가슴에 해방을 심는 세상의 어머니다.”

<여성농민가>의 한 구절이다. 8월에 열린 여성농민대회에 참석해 농민들을 만났다. 가슴에 훈장을 달지는 않았지만, ‘세상이 뭐라고 해도 자식치고 곡식치고 억센 땅에 씨를 뿌리며’ 땅을 지켜온 분들이다. 그런데 참석자 대부분이 예순을 넘긴 고령자들이었고, 지팡이를 짚거나 보행보조기를 끌고 온 분들도 있었다. 반면 20~30대는 눈을 씻고 봐도 찾기 힘들어 농촌의 고령화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인구 위기는 전체적인 사회문제지만 지역 수준에서 보면 수도권 과밀화와 지방 과소화라는 상반된 양상으로 나타난다. 우리나라 총인구는 꾸준히 증가하다 2020년에 이르러 처음으로 출생자가 사망자보다 적은 인구 데드크로스 현상을 겪었다. 반면, ‘지방’ 인구는 이미 오래전부터 감소해왔고 일부 지역은 이미 소멸 단계에 이르고 있다.

지방소멸은 곧 농촌소멸이다. 지난해 10월 행정안전부는 전국 89곳 시·군·구를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했다. 전체의 77.5%에 해당하는 군 단위 지역 69곳이 인구감소 지역으로 포함되었는데 사실상 이들 대부분이 농촌 지역이다. 또 올해 한국고용정보원에서 발표된 자료를 보면, 인구학적으로 소멸고위험지역으로 분류된 45개 기초지자체 중에서 44개 지역이 농어촌에 속한다. 즉 농촌은 인구지진의 진원지로서 농촌의 경제·사회는 뿌리째 흔들리는 충격을 받고 있다.

특히 농가 인구가 심각하게 줄어들고 있다. 지난 20년간 농촌인구의 비중은 13.3%에서 8.8%로 감소했으며 농가 인구 비중은 8.4%에서 4.46%로 더욱 가파르게 줄어들었다. 연령대별로 보면 65세 이상 인구는 거의 변동이 없이 유지되었지만 20~30대 청년층 인구는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그 결과 2020년 현재 농가 인구 중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율이 46.8%에 이르렀고, 20~30대는 전체의 10.2%에 불과하다. 농민 열 명이 있다면 그중 다섯 명은 65세 이상이고, 30대 이하는 단 한 명뿐인 셈이다.

농가 인구의 성별 격차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20~30대 청년층 중 남성은 12만9821명이지만 여성은 10만5761명으로 여성의 수가 훨씬 적다. 귀농인의 성별 격차 또한 크다. 귀농인 가운데 여성은 32.4%에 불과하며, 특히 30대 이하는 25%에 지나지 않는다. 특단의 조치가 없는 한, 한 세대만 지나면 여성농민은 박물관에서나 만날 수 있는 희귀한 존재가 될 거라는 말이 현실이 될 전망이다.

여성농민이 없는 농업·농촌을 생각할 수 있을까? 스마트팜, 대형 농기계가 여성 농민을 대신해 다양한 제철 먹거리를 생산하고 밥상을 차려낼 수 있을까? 전쟁과 기후 재난이 곡창지대를 휩쓰는 위기의 시대, 수입 먹거리에 우리의 생존을 맡길 수 없다는 것을 모두가 체감하고 있다. 이름도 없이 묵묵히 일하며 먹거리와 농촌공동체를 지켜온 여성농민이 없었다면 우리 사회는 지금처럼 풍요롭게 유지될 수 없었을 것이다.

농촌이 활기를 잃어가고 농업을 승계할 젊은이를 찾기 어려운 시기, 농민들은 누구보다 더 절박한 심정으로 승계농 육성을 바라고 있다. 그러나 누가 뭐라고 해도 꿋꿋하게 농촌을 지키며 살아온 여성농민들이라도 자식이 농사짓기를 바라는 마음을 내기는 쉽지 않다. 특히 딸이 농사짓기를 바라는 여성농민은 거의 없다. 그만큼 농민이 처한 현실이 각박하며, 특히 여성에게는 더욱 차별적이기 때문이다.

여성농민은 농민으로서 지위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단적인 예로 경영체 등록 제도상 공동경영주로 등록되어야 할 여성농민 중 10.7%만이 등록되어 있는데, 공동경영주로 등록하더라도 실질적 지위를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농지는 가장 기본적인 생산기반이지만 자신 이름으로 된 농지를 소유한 여성농민이 절반도 안된다. 2020년 녀름연구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배우자가 있는 여성농민의 35.9%, 비혼 여성농민의 28.6%만이 농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뿐 아니다. 사회 전반적으로 성평등의식이 높아졌지만 농촌의 성역할 고정 관념 변화는 더디기만 해 대부분의 여성농민이 농사일과 더불어 가사를 전담하고 있다.

여성농민은 우리 사회의 희망이며 후속세대 양성은 중요한 사회적 과제이다. 더 많은 젊은이들이 여성농민의 삶을 희망하며 농촌을 찾고, 당당한 생산자이자 농촌의 주인으로 살아갈 날이 오기를 꿈꾼다. 그러려면 먼저 농민 스스로 자식들에게 농사를 권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여성농민의 지위 향상과 성차별 개선은 승계농 육성에 있어서도 중요한 요인이다. 자신 명의의 농지를 소유하고, 경영주나 공동경영주로 등록되어 공적인 지위를 확보하고, 가사 전담과 같은 성역할로부터 자유로울수록 자녀에게 농업을 승계할 의지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즉 여성농민의 지위 확보와 성평등 실천은 여성농민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농업·농촌으로 나아가기 위해 꼭 해결해야 할 과제다.
 

<알림>
정숙정 한국농촌사회학회 운영이사가 이달부터 ‘농업마당’의 새로운 필진으로 합류합니다. 충북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과 사회학을 전공하고, 경북대학교에서 사회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정숙정 이사는 현재 경북 상주에 거주하며 농촌여성노인과 미등록이주노동자 등에 대한 관심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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