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김관태 기자] 

요 며칠 새 알게 된 얘기인데 예전 어른들은 비가 많이 내리거나 장마가 지면 김치나 밑반찬을 만들었다고 한다. 비가 그치면 대체로 김치나 밑반찬 재료로 쓰이는 채소 값이 오른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렇지 않아도 물가만큼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문제가 없는 요즘, 값이 비싸지기 전에 미리미리 반찬을 준비해 놓았다는 ‘생활 꿀팁’과 같은 얘기가 귀에 쏙 들어 왔다.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3%를 기록했고 외환위기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하니, 물가 문제는 모두에게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나타내는 기준인 소비자물가지수는 식료품, 주택임대료, 교통비, 통신비 같은 소비자와 관련이 깊은 품목 460개에 대한 가격을 조사해 지수화한 것으로, 통계청에서 매월 발표하고 있다.

1년에 한 번이지만 통계청에서 발표하는 지표 중엔 농가교역조건지수라는 것도 있다. 농가가 생산해 판매하는 농산물과 농가에서 구입하는 농자재 등의 물품 가격을 따져 농가 채산성을 파악하기 위한 지수다. 여기엔 농가 경영활동에 투입된 421개 품목의 가격지수를 나타내는 농가구입가격지수가 포함돼 있다. 농민 입장에서 보면 농가구입가격지수는 소비자물가지수인 셈이다.

통계청이 올해 발표한 2021년 농가구입가격을 보면 사료비와 영농자재비는 지난해보다 각각 11.2%, 10.0% 올랐고, 노무비는 8.9%, 비료비는 7.5%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영농광열비는 무려 24.7%나 상승했다. 농가판매가격지수, 다시 말해 농산물 판매 가격도 올라 농가교역조건지수는 지난해보다 나아진 것으로 나타났지만, 이는 농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 농산물 가격이 올랐다 해도 생산량이 줄었다면 농가 채산성이 나아졌다고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올해 마늘 농사를 지은 농가들만 봐도 그렇다. 마늘값이 kg에 5000원 이상이면 숫자상으로 지난해보다 나은 가격이지만 생육기 가뭄으로 수확량이 많게는 20% 가량 줄어든 농가들은 이 가격으론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고 목소릴 높인다. 이마저도 최근 정부의 TRQ 물량 도입 소식에 5000원 아래로 마늘 값이 떨어진 게 농가가 겪는 현실이다.

국민들에게 농축수산물은 없어서는 안 될 필수재로 적절한 수급관리는 필요하지만, 정부 정책의 모든 초점이 ‘물가 안정’에만 맞춰져 농가 경영 안정 대책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또 IMF 이후 24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며 소비자물가지수의 변동 폭에 정부와 언론 모두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이, 정작 물가 안정의 희생양이 된 농민들 목소리는 찾아보기 힘들다. 농촌 현장에서 ‘농산물 값 오른다는 얘기만 하지 인건비와 농자재 값 오르는 건 생각 안 한다’며 분통을 터뜨리는 이유다. 물가 관리에만 신경을 쏟고 있는 정부를 향해 농가들은 자신들의 어려움을 어떻게 증명해야 하는지 막막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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