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김경욱 기자] 

홍천식 고추장 삼겹살 주재료가 스페인산? 8월 첫 주말을 앞둔 금요일 오후였던 지난 5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 축산 매대에 홍천식 고추장 삼겹살 등 다양한 돼지고기 상품이 진열돼 있다. 그런데 이 홍천식 고추장 삼겹살 상품의 돼지고기 원료는 스페인산으로, EU산 축산물 지역화가 진행되면 이런 풍경이 더 자주 목격될 것으로 보인다. 
홍천식 고추장 삼겹살 주재료가 스페인산? 8월 첫 주말을 앞둔 금요일 오후였던 지난 5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 축산 매대에 홍천식 고추장 삼겹살 등 다양한 돼지고기 상품이 진열돼 있다. 그런데 이 홍천식 고추장 삼겹살 상품의 돼지고기 원료는 스페인산으로, EU산 축산물 지역화가 진행되면 이런 풍경이 더 자주 목격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유럽연합(EU) 소속 국가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과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HPAI)가 발생해도 비 발생 지역 돼지·닭고기는 수입할 수 있도록 ‘지역화’를 추진, 논란이 일고 있다. 이미 4대 축종의 수입산 할당관세(무관세)로 정부에 대한 원성이 높아진 축산 농가들은 지역화까지 더해, 정부가 ‘수입산에만 지나치게 관대한 조치를 하고 있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무엇보다 농식품부는 의견수렴(행정예고) 후 바로 지역화를 시행할 방침이라 논란은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수입위생조건 개정안’ 21일까지 행정예고 후 22~23일 지역화 시행

ASF·고병원성AI 발생해도
수출국 내 청정지역 축산물
국내 수입 가능토록 허용

농림축산식품부는 EU산 동물·축산물 수입위생조건 고시 일부개정안을 21일까지 행정 예고한다고 지난 1일 밝혔다. 농식품부는 행정 예고 직후 22일이나 23일 확정고시를 통해 바로 지역화를 시행할 방침이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이번 개정에선 EU 수출국에서 ASF나 HPAI가 발생할 경우, 발생 지역만 가금·가금제품과 돼지·돈육제품 수입을 중단토록 했다. 해당 전염병이 발생했더라도 수출국이 방역 조치 사항을 이행했다면 수출국 내 청정(비 발생) 지역에서 유래한 제품은 국내 수입이 가능토록 한 것이다. 

농식품부는 이번 고시 개정과 관련, 그간 EU 역내 수출국에 대한 수입위험평가를 해 왔으며 국제 기준과 국내외 사례를 고려할 때 청정지역 생산 축산물을 통한 가축질병 유입 위험이 극히 낮은 수준으로 평가됐다고 밝혔다. 또 세계동물보건기구(WOAH) 규약 등을 토대로 전문가 자문을 거쳐 수입위생조건 개정안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수입산에만 관대, 비판 목소리 대두

하지만 지역화 추진에 축산 농가들은 반발하고 있다. 특히 국내 주요 돼지고기 수입국이었다가 현재 ASF 발생으로 수입이 금지된 독일산 돼지고기 수입 재개가 이뤄질 수 있는 양돈업계에선 국내와 비교되는 정부의 차별적인 정책에 대한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대한한돈협회는 4일 정부의 수입위생조건 완화 조치로 인해 가뜩이나 해외 유입 가축전염병 피해를 극심하게 받는 국내 현실을 감안할 때 국경 방역 경계가 느슨해지고, 해외 발 ASF의 국내 유입 위험성이 높아져 축산업계 피해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현재 FTA 체결로 무관세가 진행되고 있는 유럽산은 물론 다른 국가로 돼지고기 시장이 넓어질 수 있다는 문제도 제기했다. 이번 개정으로 ASF 발생국이자 주요 돼지고기 수입국이었던 독일에서 생산된 돼지고기 수입이 허용되고, 더 나아가 EU 이외 다른 국가에서도 EU와 동등한 조건으로 수입 허용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축산농가들은 ASF를 대하는 정부의 이중 잣대도 지적한다. 정부가 그동안 국내 ASF 상황에서 보인 상황 인식이나 대처와는 상이한 행보를 보인다는 설명. 정부는 2019년 9월 국내에서 ASF가 첫 발생한 뒤 2년 가까이 ASF가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돼지 재사육을 금지하고, 최근까지도 과도한 방역조치와 8대 방역시설 전국 의무화 확대 등을 통해 농가에만 엄격한 방역 잣대를 세웠다. 하지만 이번 조치에서 보듯 ASF 발생국에 대해선 지나치게 관대한 조처를 하고 있어, 농가들은 같은 질병에 대한 정부의 모순적인 태도를 지적하고 있다. 

한돈협회는 “지난 수년간 한돈농가들은 ASF 발생 지역은 물론 비 발생 지역까지 정부의 과도한 방역 규제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이번 고시 개정안을 보면 정부가 대한민국 국경방역을 포기하는 것으로 보일 만큼 변화가 커, 정부의 ASF 방역에 대한 입장이 한돈농가에만 가혹할 정도로 엄격하고 유럽엔 지나치게 관대해 같은 정부인지 의심스럽다”고 밝혔다. 

한편 가금업계에서도 원종계나 산란종계 등 종계 수입이 유럽 쪽에서 다수 이뤄지고 있기에 지역화가 종계 수급에는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유럽산 닭고기가 호시탐탐 국내 시장을 노리고 있어 지역화에 대한 파장이 커질 수 있을 것으로 우려한다. 실제 주한핀란드무역대표부는 지난 6월 핀란드 친환경 프리미엄 닭고기 국내 론칭 간담회를 진행하며 국내에 첫 닭고기 물량을 보냈고, AI로 수입이 중단됐던 덴마크산 닭고기나 2017년 국내 첫 수입된 스페인산 달걀 등도 이번 지역화 조치로 인해 국내 빗장이 언제든 열릴 수 있는 상황이다.

수입위생조건 고시 행정예고와 관련 농식품부 관계자는 “21일 행정예고가 마무리되면 농식품부 고시여서 확정고시 후 바로 시행할 예정이다. 22일이나 23일 확정고시 될 것 같다”며 “어떤 의견이 오느냐에 따라 검토해 답변하겠지만 현재로선 개정 절차는 마무리 돼 바로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경욱 기자 kimk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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