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김경욱 기자] 

육계업계엔 병아리 입식 물량을 늘리라면서 무관세로 수입 닭고기 8만2500톤을 들여오겠다는 정부. 고소득 작물인 참깨를 논에도 재배하라면서 한중 FTA 체결로 중국산 참깨를 매년 2만4000톤씩 들여오는 것도 모자라 저율관세할당(TRQ) 수입 물량도 6만7000톤까지 증량한 정부. 경기 북부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생하자 농가엔 2년 넘게 재사육을 금지하고 바다 건너 제주까지 방역시설을 강제하면서 유럽은 지역만 다르면 ASF 발생국도 돼지고기 수입이 가능토록 행정예고한 정부. 

정부의 농업 홀대가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지만, 농가들은 최근의 ‘이율배반’적인 정부 행보가 유독 더 아리게 다가온다. 올 들어 사룟값과 비룟값, 기름값 등 오르지 않은 게 없고, 가뭄과 인력난도 더해지며 현장에 악재가 쌓이고 농민들의 슬픔(悲)과 근심(愁)도 늘어나고 있다. 더욱이 자신(농민)들을 대변해야 할 농림축산식품부가 이런 정책을 주도했다는 대목에서 농가의 비수(悲愁)는 비수(匕首)로 바뀐다. 특히 역대 어느 정부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었던 수입산 소·돼지·닭고기·분유 4대 축종에 대한 일괄적인 할당관세를 단행, 무관세라는 기습 공격을 당한 축산 농가들은 자신들의 비수를 꽂기 위해 8월 11일 오후 1시 서울역에 집결, 대통령실이 있는 용산 삼각지역 파출소 앞까지 행진한다. 

지금이 어느 시기인가. 1년 중 가장 덥다는 8월 초순이다. 지금 농촌 현장에선 새벽 4~5시에 일어나 오전 10~11시까지 일하고, 무더위를 피해 오후 5시 이후부터 해가 질 때까지 다시 일한다. 자신의 본업도 못 할 시간대인 오후 1시~4시 농가들은 휴식을 반납한 채 정부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러 상경한다. 왜 농사일도 못하는 그 시간에 농가들은 아스팔트 위에서 시간을 허비하고 뙤약볕 아래서 땀을 흘려야 하나. 농번기 여름휴가라는 단어도 사치인 농가들만 유독 물가 대책의 희생양이 되어야 하나. 

그렇지 않아도 올 하반기 농가에 적신호가 속속 감지되고 있다. 무엇보다 올해는 추석이 9월 10일로, 상당히 이르다. 이는 최대 성수기인 추석 대목이 짧다는 것과 많은 농축산물이 대목 이후 출하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매년 추석 이후 농축산물 소비 위축이 극심한데, 올해는 그런 기간이 더 길게 갈 수밖에 없다. 이 시점에 정부가 주도하는 할당관세와 TRQ 수입 물량 상당수가 시장에 풀리게 된다.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 등 인위적인 정부의 정책 개입으로 피해를 입은 계층에 다양한 지원을 해왔다. 이는 물론 국가의 ‘책무’이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국가에 의한 ‘폭력’이다. 그렇다면 올 하반기 정부가 추진하는 할당관세나 TRQ 증량 품목 중 국내산 가격이 침체된 품목이 발생하면 정부는 책무를 다할 것인가. 농사일도 못 할 시간에 거리로 나온 농가에 정부는 답을 해야 한다.

김경욱 축산팀 기자 kimk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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