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고성진 기자] 

서울청과 8639억원, 중앙청과 8488억원, 동화청과 8358억원, 한국청과 7267억원, 대아청과 3395억원. 이 수치는 전국 최대 공영도매시장인 가락농수산물도매시장에 자리하고 있는 청과부류 도매시장법인이 2021년 기록한 거래금액이다. 10년 전은 어땠을까. 농수산물도매시장통계연보를 보면 2010년 법인별 거래금액은 서울청과 5883억원, 중앙청과 6112억원, 동화청과 5441억원, 한국청과 5929억원, 대아청과 3992억원이다.

법인들은 지난 10년 동안 외형적으로 괄목할만한 성장세를 보여줬다. 대내외 변동성이 극심한 코로나19 국면에서도 사상 최대의 거래실적을 거둬 결과적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2021년 당기순이익은 서울청과 66억원, 중앙청과 69억원, 동화청과 57억원, 한국청과 44억원, 대아청과 29억원 등 총 265억원이다.

지금 추세라면 거래실적 1조원을 넘는 법인이 탄생하는 것은 빠르면 2~3년 내로, 사실상 시간문제라고 보고 있다. 가락시장 청과부류의 2021년 거래실적은 4조7282억원. 2020년도 우리나라 농업생산액이 대략 52조원 정도인데, 이 가운데 축산업(약 20조원)과 쌀(8조4000억원) 등 양곡을 제외하면 가락시장 법인들의 거래실적은 결코 작은 비중이 아니다.

그렇다면 산지의 형편은 나아졌을까. 위탁수수료에 기반한 법인들의 양적 성장은 출하자의 좋은 경매가격과 관계가 있어서다. 하지만 가락시장의 몇몇 통계를 보면 도매법인들이 산지와 함께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산지 상황과 별개로 ‘독주’하는 모습으로 보이는 부분이 있다. 우선 거래물량이 줄거나 답보 상태라는 점. 가락시장 청과부류의 전체 거래물량은 2010년 215만톤→2021년 222만톤으로 큰 변동이 없다. 이를 두고 수집 기능을 맡고 있는 도매법인들의 역량 문제 등이 언급돼 왔다. 가락시장 출하자(조직) 숫자도 줄고 있다. 2010년 일반출하자 18만2371명에서 2021년 15만4125명으로 감소했다. ‘출하자 감소 속 거래실적 역대 최고’라는 부분은 소멸이 임박한 농촌 현실을 비춰볼 때 씁쓸함으로 다가온다.

이런 양상은 코로나19·국제 분쟁·이상기후 등 최근 복합적인 위기 국면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산지는 사상 초유의 인력난, 유류비·자재비·인건비 증가, 가뭄 등 악재로 신음하고 있다. 농산물 가격이 올라도 이런저런 비용을 빼면 경영 여건이 더 열악해졌다는 얘기들이 많다. 물가상승 주범으로 몰려 수입까지 걱정해야 할 처지다. 이와 반대로, 올 상반기 농산물 가격 상승에 힘입어 도매법인의 실적은 좋은 흐름을 띤 것으로 추측된다. 그럼에도 도매시장 내부에서는 하역비 협상, 행정 소송 등 어지러운 현안들이 진척 없이 맴돌고 있을 뿐, 산지의 심각성을 알리고 이를 지원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는 소식들은 많지 않다. 법인들의 사회적 책임과 공익적 역할이 더욱 분발되는 시점이다. 지금 시기를 놓쳐 산지의 어려움을 껴안지 못한다면, 눈앞으로 다가온 ‘거래실적 1조원’이라는 성과는 ‘금자탑’이 아닌 ‘오명’이 될 수도 있다.

고성진 유통팀 기자 kosj@agrinet.co.kr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