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천 춘천두레생협 전 이사장

[한국농어민신문] 

농민다운 건강함 허락하지 않는 시대
농민들 아등바등 대며 악다구니로 버텨
농민 편드는 사람으로 기꺼이 남을 것

당연히 마땅히 무조건 응당, 농민의 편에 서야 한다고 굳게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강원도 깊은 산골, 작디작은 교회로 갔던 첫 농활. 대도시 출신 스무살 청춘이 만난 농민들은 여린 풀도 닮았고 튼튼한 나무도 닮아 보였다. 이처럼 선하고 순박한 농민들을 하느님 뵙듯 여기는 것이야말로 참된 신앙이라고 믿었다. 그러니 농민의 편에 서는 것은 곧 하느님의 편에 서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서른 살 이후로는 쭉, 농민을 거든답시고 이런저런 일과 운동을 하면서 농판을 떠나지 않았다. 물론 대부분 성공적이지 못했지만, 덕분에 많은 농사꾼 선후배와 선생님들이 생겼고, 농사꾼의 생각과 일상을 더 가까이서 들여다보게 되었다. 땅의 사람으로서 농민은 상대적이더라도 천지자연을 닮은 자유로운 영혼의 존재임이 분명했다. 대지에 서서 비와 해를 받아들이는 농사는 그 어떤 일보다 영적이었고 수행에 가까웠다. 그러나 농민이 처한 엄혹한 현실은 결코 평화로운 일상을 꾸려가게 놔두지 않는다는 것 또한 목격했다.

대한민국 농민이 일구는 땅은 황토색보다 시뻘건 자본주의적 욕망이 깃든 땅이었다. 또한 농민은 자본주의적 생산·유통·소비 시스템에 완벽히 무력하게 포박되어 있었다. 농민이 자유로운 영혼의 존재였던 시대가 있기는 있었을까? 농민에게 자유란, 삶의 주인이 되는 자유가 아니라, 남들처럼 농사를 때려치울 자유뿐이었다. 만약 농민의 바탕색을 삼베 빛깔로 비유한다면,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불쾌한 악취를 풍기는 거무튀튀한 색으로 농민을 물들였다. 분노하다가 저항하다가 체념하다가, 이제 모든 농민의 영혼은 시들고 지치고 병들었다. 늘 아등바등 견뎌야 하고, 때로는 악다구니로 욕심을 부려 경쟁에서 버텨내야만 겨우 살아낼 수 있는 대한민국의 농민! 농민다운 건강함을 허락하지 않는 시대였기에, 농민을 하느님처럼 여기며 편들기에 회의가 들고 있었다.

그렇게 믿음을 잃어가던 십수년 전, 우연히 TV 토론을 보게 되었다. 절대로 잊을 수 없는 한 장면 한 마디가 있었으니, 패널로 나온 어떤 교수가 농민들의 ‘도덕적 해이’를 지적하며 비판하는 장면이었다. 충격을 받았고 분노가 일었다. 어찌 감히 교수 따위가 하느님 같은 농민에게 도덕성 운운할 수가 있단 말인가? 저런 헛소리를 들을 정도로 농민들이 궁색한 지경에 몰렸단 말인가? 충격은 더 이어졌다. 지인들에게 분하다고 얘기했으나 돌아오는 반응들은 시큰둥했다. 순수하고 정직한 농민이 남아 있겠느냐는 반응, 이미 농촌에는 편법과 탈법이 만연해 있지 않냐는 반응, 심지어는 농민들이 도시 사람들보다 더 영악하고 더 잘산다는 반응까지 있었다. 농민을 편드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 이후로 다짐했다. 나라도 항상 농민의 편을 들자는 다짐. 농민이 성스럽고 도덕적인 존재라서가 아니었다. 농업농촌의 실상을 알면 알수록 아름다움과 추함이 뒤섞인 농(農)의 편을 들기 힘들다. 농민의 이기적인 욕심까지 애써 편들 것도 없다. 그러나 세상 어딘가에는 농민의 편을 드는 농민 아닌 사람이 있어야 마땅하고, 바로 내가 그 사람이면 충분하다는, 이상한 고집과도 같은 것이었다. 또한 외로움과 고통에 지친 인간에 대한 예의이기 때문이었다.

농민의 편을 든다는 것. 추상적인 농민을 상정하고 편드는 것은 어쩌면 쉬운 일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존재의 편을 든다는 건 의외로 어려운 일이다. 만나면 행복해지는 농사꾼 최아무개의 편을 드는 거야 쉽다. 그렇지만 만나기 전부터 짜증 나는 욕심꾸러기 농사꾼 김아무개의 편도 드는 일은 어렵다. 농사꾼인지 사장님인지 경계가 흐릿한 박아무개의 편마저 들기란 정말 어렵다. 어렵지만 불가능하지 않은 까닭은, 우리 모두는 모자라고 흠 많은 사람이라서다. 사람은 사람을 미워하면서 이해하면서, 기꺼이 편들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집단의 경우는 어떤가? 농업인단체나 농협 같은 조직의 편을 드는 것 말인데, 참으로 부질없고 무의미한 짓이다. 농민을 편드는 것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농민은 도덕적으로 해이한 측면이 있더라도 사람이기에 부끄러워할 줄 안다. 부끄러움으로부터 의로움이 파생되고 확충되는 바, 사람은 의로움을 향한 실마리를 지닌 존재다. 그러나 집단과 조직은 문제가 달라진다. 대체로 농업인단체는 부끄러움을 모른다. 이익과 의로움 앞에서 주저 없이 이익을 선택하고, 그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여긴다.

나아가 이익을 위해서라면 크고 작은 권력과 결탁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물론 그 이익이 바로 농민의 이익 아니냐고 주장하겠지만, 나는 절대로 동의하지 않으며 당연히 편을 들 수가 없다. 농민은 견리사의(見利思義)의 의미를 성찰하는 존재지만, 성찰하는 조직은 만나볼 수가 없다. 농민의 편을 드는 사람이 갈수록 없어지는데도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 급기야 크고 낡고 딱딱한 조직이 농민의 편일 수 있는 것인지를 묻게 된다.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제 모든 물음을 뒤로 할 때다. 즐겁게 때로는 고통스럽게, 삼년 가까이 원고를 썼다. 앞으로도 농민의 편에 서겠다는 응원이자 다짐과 함께, 모두 안녕하시라는 인사로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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